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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양식기법이 보급되어 어가의 양식이 활발해진 감태 (Ecklonia cava Kjellman)는 향후 다양한 품종개발이 예상되고, 이들의 구분을 위한 신품종 심사기준 (특성조사요 령) 작성과 기초자료가 되는 자연 개체군의 변이 폭과 지역적 형태 변이에 관한 연구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본 연구는 감태 양식 개체군과 국내 연안 16개소에서 채집한 자연개체군의 형태를 비교하고, 주요 형태 형질의 특성과 변이 폭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감태의 품종 구분에 적합한 형질은 1차엽과 2차엽, 줄기에 대한 주요 형태와 특 징에 관한 14개 측정 형질과 4개 비율 형질, 총 18개 특성을 선정하였다. 군집 분석에서 전체 19개 개체군 중, 자연 개체군인 장길 (E4), 소록 (S7)은 동일 지역 개체군들과 유의한 차이를 보였고, 동해와 남해의 나머지 자연 개체군은 양식 2년생인 수유 (Q6, Q8, Q10)를 포함한 2개 집단으로 구분되었고, 제주의 3개 개체군은 별도의 집단을 이루어 지역적으로 구분되었다. 주성분 분석에서도 군집 분석에서 집단을 이룬 동해와 남해 개체군을 중심으로 양식 개체군은 중앙에 모여 나타났고, 장길 (E4), 소록 (S7)과 제주 개체군들은 주성분 1 (PC1)과 주성분 2 (PC2)에 연관된 2 차엽 지수, 줄기의 길이와 직경, 줄기 길이/1차엽 길이, 1차엽 길이와 너비, 2차엽 수, 2차엽 길이와 너비의 형질에 의해 각 축에 따라 구분되어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로 본 연구에서 조사한 18개 형질은 각 해역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이는 개체군 구분을 위한 기준으로 유용성이 확인되었으 며, 감태의 각 지역 개체군은 향후 신품종 개발 후보 종으로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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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조세핀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姜婦人, 姜慕仁)선교사는 1897년에서 1920년까지 한국여성들을 위해 선교에 헌신했던 미국 남감리회 여성해외선교부(Woman’s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의 선교사다. 1898년 배화여자대학의 전신인 ‘배화학당’을 설립하였다. 본고는 캠벨 선교사의 교육선교사상과 교육사업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캠벨의 교육선교사상은 내한하자마자 쓴 첫 보고 서 서두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이 복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이 세상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 먼 지구의 구석진 곳에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신실한지요? 어둠속에 머물고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나는 이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의 축복이요 특권입니다.(J. P. Campbell, "Communication from Mrs. Campbell," the korea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1897), 15). 캠벨의 교육선교사상에 따른 선교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 교회를 위한 여성 지도자를 배출할 학교 설립, 또 하나는 전도사업을 통해 특히 여성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한말 일제기 기독교계 여학교는 역사·문화·전통·풍속의 기반 위에 서 있는 ‘한국적 여성’, 초월적 영성을 가진 ‘기독교적 여성’,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민족적 여성’이라는 세 가지의 주된 과제를 가지고 교육해야하는 과업을 안고 있었다. 배화의 교육을 담당했던 캠벨과 선교사들 및 교사들은 교육 과정 속에서 위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교육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캠벨의 그리스도적인 인류애를 품고 조선 땅으로 왔다. “소외된 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따라 혼신(渾身)으로 선교사라는 ‘도구’ 가 되어 조선의 여성을 끝까지 사랑하며, 대접하며 살다가 1920년 11월 12일 68세를 일기로, 사랑하는 한국 땅에서 별세했다.
        3.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한국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장소였던 장시(market)가 구한 말 초기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을 밝히고, 장시가 복음의 장소로 변화하는 과정을 탐색하려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선교사 윌리엄 블레어(William Blair)는 복음 전도지로서 “장터는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장소이며, 복음을 전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5세 기 중엽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조선 전역에 확산된 서울 뿐 아니 라 지방 포구를 중심으로 상품 유통의 중요한 발달을 가져왔다. 장시는 조 선 사회의 경제적 활성화를 견인하였을 뿐 아니라 신문물, 신문화의 전파 통로이기도 하였고, 이를 통해 사회 변혁을 이끄는 기능도 하였다. 초기 입국 선교사들은 이러한 장시의 특성을 파악하고 복음 전파의 중 심지로 적극 활용하였다. 로스는 국제 무역 장시였던 만주의 ‘고려문’에서 조선의 상인들을 만나 기독교를 전하고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국경 무역장 시인 의주를 통해 한반도에 복음이 들어오는 데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도 한국의 풍토와 민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장시를 방문하였고, 19세기 말에는 개항지의 확대와 더불 어 전국 장터에 속속들이 선교 거점이 마련되었다.이처럼 장시는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 민족과 만나 어우러져 숨쉬기 시작한 토대는 바로 조선 시대 소통의 장이었던 장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