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반(半)독재·반(半)민주정권으로 정의될 수 있는 노태우정부 시 기(1988~1993)에 만들어진 한국불교영화들을 개관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 였다. 노태우정권은 엄격하게 검열을 실시하였던 이전의 독재정권들과 표현 의 자유를 상당히 보장한 후대의 민주정권들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노태우정권 기간 동안 몇 명의 영화감독들은 그 전에 비해 발전된 영화제작 과 촬영기술을 이용하여 수준 높은 불교영화들을 만들었고, 그 결과 임권택 감독과 배용균 감독이 만든 불교영화들은 국제적으로도 큰 찬사를 받았다. 영화감독들은 노태우정권 하에서 그들이 만든 영화들을 통해 정치·사회 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상당히 자유스럽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조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불교계의 압력 으로 인해 불교승단과 종교적 이슈들을 자유스럽고 비판적으로 다룰 수 없었 다. 보수적인 불교도들은 영화제작자들이 한국 불교를 비판적이고 부정적으 로 다루는 영화들을 만들 수 없도록 사전 검열을 엄격히 실시하였고, 그러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없도록 법적·물리적으로 적극 막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태우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불교영화들을 검토해 본 결과, 본 저자들은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심지어 불교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 는 매우 어려운 대화, 비유, 이야기, 이미지, 전문용어 들을 그 불교영화들에 서, 특히 선불교영화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함세덕(1915~1950)의 희곡 <동승>을 기초로 윤용규 (b. 1913) 가 감독하여 1949년 출시한 영화 <마음의 고향>은 최초의 한국 불교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전기조차 없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산사의 생활 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인 고아 출신의 동자승 도성은 우리 조상들 이 살아온 전통적 방식으로 계속 산사에서 살아야 할지 아니면 귀부인의 양 자로서 근대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서울에서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 황에 직면한다. 이로써 본 영화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처한 다양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의 한국전통과 불교를 주인공인 도성과 몇 명의 주요 등장인 물들을 통해서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의 한국인들은 급변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불확실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본 저자들은 고아, 향수, 근대성, 모성, 그리고 업과 같은 여러 가지 모티브들을 채용하여 본 영 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영화는 한국인들이 근대 산업화 사회에 참여하면서 한국전통을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불교를 소개하고 있고, <동승>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이 내재해 있는 모성(불교/전통문화)을 드러내고 있다. 본 저자들은 윤용규가 감독하여 1949년도에 출시한 <마음의 고향>을 2002년도 에 리메이크하여 출시한 주경중(b. 1959)의 <동승>과 비교 분석하여 논문의 결론을 맺었다.
본 역자들은 현장(602~664)의『보살계본』(T.24.1501.1110b2~ 1115c22)을 최초로 영역하였다. 현장의『보살계본』은 담무참(385~443)의『보살계본』(T.24.1500. 1107a2~1110a24)과 더불어 유식계 보살계본들을 대표한다. 현장의『보살계본』과 다르게 담무참의『보살계본』은 몇 차례 온라 인의 형태로, 그리고 한 차례 출판본 형태로 영역되었다.1) 담무참은 본인이 한역한『보살지지경』10권을 저본으로 하여 본인의 보살계본 을, 그리고 현장은 본인이 한역한『유가사지론』100권을 토대로 하여 본인의 보살계본을 직접 만들었다. 비록 그 두 보살계본의 내용은 대동소이할지라도, 담무참의『보살 계본』은 4중계와 41경계로, 그리고 현장의『보살계본』은 4중계와 45 경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 두 종류의 보살계본은 출가의 포살과 수계 의식에 사용된 구족계 바라제목차를 모방하여 만들어졌고 출가와 재 가의 포살과 수계의식에 사용되었다. 비록 현장의『보살계』본문은 목차와 계목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본 역자들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목차와 계목을 본 영역에서 괄호 속에 삽입하였다.
본 역자들은 당대의 대번역가인 현장(602-664) 의 보살계갈마문과 정매(생몰연대 미상)의 보살계갈마(문)서를 최초로 영역하였다. 비록 현장이 장안의 대자은사에서 649년 본 갈마문을 원전에서 직접 한역 하였다고 하지만, 본인이 한역한 유가사지론을 요약 정리하여 본 갈 마문과 더불어 계본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 장은 629년(또는 627년)에서 645년까지 중앙아시아와 인도로 구법 행각을 한 후, 유식 관련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교경전들을 한역하였다. 동아시아 불교도들은 두 종류의 보살계본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는 중국 위작인 범망경의 보살계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 도불교에서 유래한 유식 보살계본이다. 유식 보살계본으로는 담무참 (385-433)의 계본과 현장의 계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담무참은 동일 한 텍스트에 보살계 갈마문과 목록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현장은 보살계 갈마문과 보살계 목록을 각각 다른 텍스트에 포함하고 있다. 비록 범망경의 영역은 몇 가지 존재하지만, 현장의 보살계 갈마문 과 보살계 목록의 영역은 전무하다. 담무참과 현장의 유식 보살계본 은 모두 유가사지론 본지분 보살지 제15 계품에 근거하고 있고, 담무 참의 계본은 몇 차례 영역되었지만 현장의 계본은 한 번도 영역되지 않았다. 현장의 갈마문은 동일한 텍스트의 전반부에 나오고 계본은 동일한 텍스트의 후반부에 나올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만 언제, 그리 고 왜 갈마문과 계본이 분리되어 각각 다른 텍스트로 대정장에 수록 되었는지 추가적인 학문적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문이 갈마문 이전에 수록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대정장에는 서문이 갈마문 뒤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 역자들은 갈마문과 서 문의 순서를 바꿔 영역하였다. 대정장에서 서문이 갈마문 뒤에 언제, 그리고 왜 수록되었는지 추가적인 학문적 연구가 역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