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종주국이 자리잡고, 국교 이외의 종교가 행하는 선교활동과 개종이 국법으로 금해져 있는 상황에 서 로마가톨릭교회의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표명하는 대화 를 통한 선교를 신학적,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이들이 제시하는 종교·문화·가난한 이들과의 삼중 대화는 이들 안에 활동하 시는 성령의 활동을 전제한다. 여기서 대화는 선교의 수단이 아니라 교회 자신도 대화를 통해 성장하는 계기로 제시된다. 그 바탕에는 인간의 지성으로 모두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상정하는 자세가 놓여있다. 이러한 대화적 선교는 타종교와 문화가 그리스도교를 예비하 는 단계이며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을 구원 메시지 선포의 중심점 에 정위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FABC는 삶의 현장에서 대화로 시작되고 실천에서 깊게 어우러진 만남에서 이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가르침에 담긴 구원을 체험하도록 초대한다. 그 초대에서 아시아인들이 영적으로, 윤리적이며 지성적으로, 그리고 사회정치적 으로 구원을 경험할 때 교회를 통해 활동하시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교회로 들어온다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서 마태오 리치까지 30여 년 간 중국은 강력한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으나, 중국선교를 향한 교회의 노력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시절, 일본 선교의 물꼬를 튼 포르투갈 국적의 예수회 선교사들과 상선이 중심이 되어 중국진출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아시아선교의 베이스캠프 가 고아에서 마카오로 옮겨올 수 있었다. 그 후 필리핀을 통해 스페인이 중국선교에 참여하였고, 예수회, 아우구스티누스회, 그리고 작은 형제 회의 선교 방식의 차이를 통해 당시 순찰사로 있던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는 새로운 선교정책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발리냐노의 지휘 하에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중국진출이 가능 하게 되었고, 과거 남미 선교에서 주어졌던 ‘선교관할권’(Padronado) 에서 벗어나 선교의 자율성이 확보되고, ‘적응주의 선교정책’이 수립되 었다. 근대 선교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는 동시에 동· 서방 문명의 교류까지 가능하게 된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비 해서 그들의 선교가 여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의도적으로 개신교회가 ‘성서의 종교’ 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성서를 보 급하는 일에 노력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부의 가톨릭교회와의 차별화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초기에는 ‘선교보호권’(宣敎保 護權)을 중심으로, 1622년부터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및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및 중국선교를 수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자발적 선교회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또는 강력한 교회중심체제로부터 벗어나 선교를 수행하였다. 일부의 현 상이나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선점한 중국에서 그리고 당시 직접적 복 음전도의 자유가 없던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최선의 전략은 성서원 문으로부터의 성서번역과 보급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자신들 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모리슨의 번역본을 시작으로 첫 100여년동안 8개의 다른 중국어번역본을 출판한 개신교의 열정이 그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립되는 성서판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회의 불일치성은 오늘날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