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89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출판된 서회의 단행본(book, booklet, tract)의 목록을 새롭게 고증하고, 각 도서의 내용을 일별하면서 초기 출판 경향을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기존에 밝혀진 19권의 도서 외에 본 논문을 통해 9권의 도서가 추가적으로 밝혀졌는데, 첫 10년간 발행된 도서들 28권 가운데 20권은 초보적인 기독교의 이해 수준의 교리서와 전도문서였으며, 그보다 한 걸음 나아가 신학 저서로 이해될 수 있는 도서는 4권, 소설이나 사전 등 교양서도 4권 정도 되었다. 또한 1890년부터 출간된 도서들 가운데 첫 14권은 모두 중국의 선교사들이 발행한 도서를 저본으로 삼고 있었으며, 1900년까지의 총 28권 가운데 2/3를 차지하는 17권이 중국어 도서를 저본으로 삼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이것은 초기 10년 동안 서회 출판의 주요 전략이 중국에서 교인들에게 수년간 인정받고 널리 읽힌 도서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으로서, 이로써 한국 선교사들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서적의 번역 출판을 통해 중국의 기독교 용어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한국 개신교의 초기 출판은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 역사가 가장 깊은 중국의 출판물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 뿐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일본 출판계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력은 한반도에서 서서히 약화되어 갔으며, 「구미 → 중국 → 일본 → 한국」이라는 근대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 구조가 「구미 + 일본 → 한국」이라는 도식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는 「구미 → 한국」이라는 구조로 재편 되면서, 나름의 주체적 기독교 출판의 역량 확보를 도모해가게 된다.
일제하 한국 기독교 출판은 그러한 한계들과 미숙함 속에서도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창출신학이 움트는 모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감당했으며, 해방 이후 현대 한국교회의 역동적인 신학담론과 저술들이 출판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A major history textbook for high schools, A Modern History of Korea for High School (Seoul: Kumsung Publishing House, 2007) described that Protestantism in Korea supported Japanese invasion to Korea. The text book has been used for many years by more than 50% high schools in South Korea. The argument of this book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might influence over high school students who think that the text book should always be correct. However, Protestantism in Korea was not the supporter of the Japan Empire in the turn-of-twentieth century Asia. In reality, Korea Protestantism had been appeared by Korean people as defender of Korean people against Japanese power. At that time Korea protestantism had been closely related to America which send their missionaries to Korea and helped its modernization. When Japan tried to put Korea in her power, King KoJong sent his envoy to the president Roosevelt of USA for help to maintain his independence. In reality, Japan government had considered Korean Protestantism as big obstacle for its rule over Korea. Japan had always be afraid of Korean Christianity and spied over it. Japanese army in 1911 arrested 105 important Christian leaders to destroy Korean churches. Also, in the last years of Japan imperialism, Japan governor-general of Korea expelled American missionaries from Korean peninsular to disconnect Korean Christian relationship with America. Finally, missionaries tried to maintain the principle of separ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in Korea. They did not involve in political matter either on Korean nationalism or Japanese imperialism. This attitude of missionaries could not be satisfied with Japanese as well as Korean. However, they thought that their original mission in Korea is evangelization, but not independent movement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