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고전기 아테네 도기에 대한 미술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관점과 접근 방법이 ‘도기화’의 조형 양식과 주제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장 가치와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문 화적 맥락 탐구로 전환되어 온 양상을 고찰한다. 20세기 초 존 D. 비즐리와 에드몬드 포티 에가 시작한 자료 집체 작업으로부터 고전기 그리스 세계에서 아테네산 적회식 도기의 시장 가격, 유통과 소비 양상, 도공과 도기화가의 제조 공방의 운영 양상 등에 대한 동시대 쟁점 들은 고대 그리스 회화 장식도기 연구에서 미술사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대한 기초 자료의 필요성이 어떻게 증대되었는지 보여준다.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를 기반으로 문명을 꽃피웠던 시기인 고전기(9~14세기)에 도서부 동남아시아 왕조를 중심으로 밀교에 기초한 관음신앙이 확대되었다. 이는 이 시기에 조성된 다량의 다비 관음보살상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늘날 태국 최남부에 위치한 끄라 지협 (Isthmus of Kra)에서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말레이반도, 수마트라섬, 자바섬에 위치한 왕조에서 다비관음상 조성이 성행하였고, 12세기부터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도 그 영향력이 간취된다. 이처럼 9세기 이후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 다비관음상이 다량 제작된 연원은 인도 팔라 왕조와의 교류를 통해 수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슈리비자야 왕조와 중부 자바 일대를 중심으로 성립된 샤일랜드라 왕조는 문헌적 근거뿐 아니라, 조각에서도 팔라 왕조와의 교류상을 살필 수 있다. 밀교의 성행과 함께 팔라 시대의 관음상은 존명과 도상 특징이 구체화된 반면, 도서부 동남아시아 왕조의 관음보살상은 힌두적 요소와의 융합과 현지의 특색에 맞춘 변용된 도상들이 발견된다. 특히 본고는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 조성된 4비관음보살상 가운데 명문을 통해 “로카나타”라는 존명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에 주목하였다. 흥미롭게도 로카나타라는 관음의 별칭은 팔라 시대의 밀교 의궤집과 조각의 명문 등에서도 확인된다. 본 연구에서는 의궤의 기록과 달리 명문이 확인되는 조각이 매우 다양한 도상으로 조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인도 의 로카나타 조각과 동남아시아의 로카나타 조각에도 도상적인 차이가 발견된다. 이를 통해 본고는 로카나타라는 존명이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밀교의 다양한 형상의 관음보살을 지칭 하는 광의(廣意)의 명칭으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신화적 장면을 그린 고전기의 아티카 지역의 도기화 가운데 대부분의 인물들이 고전기 양식으로 표현된 것과 달리 신상만이 아르카익 양식으로 묘사된 사례들을 선별하여 이러한 도상학적 현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아티카 지역의 고전기 도기화에서 의도적으로 아르카익 양식을 차용한 것은 양식적인 대조를 통하여 아르카익 양식의 신상이 고전기 양식으로 표현된 신화적 인물들 보다 더 예스러운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었다. 이들 고전기에 아티카의 도기화가들이 상대적 시간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고전적 규범’으로 아르카익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고전기 미술에서 아르카익 양식이 지닌 시각적 역사성이 당대의 미술가들과 관람자들에게 공유되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