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대구·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지역 내 전개과정을 검토해보고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유추해보고자 하였다.
선행작업으로 우선 통·공시적 범위를 설정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무덤 내 부장유물 가운데 가장 보편화 된 적색마연호·마제석검·마제석촉에 대한 형식분류와 이들의 조합관계를 통해 일정한 시간대(청동기시대 전기 후반 / 중기 전반 / 중기 후반 / 후기)를 구성하였으며, 또한 산·수계와 같은 자연 지리적 요소와 지역 내 무덤의 분포양상을 함께 검토하여 모두 5개의 소지역권을 설정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역 내 무덤의 구조적인 변화양상과 함께 단계별 전개과정을 통해 청동기시대 사회발전에 따른 지역사회 변화의 일면을 관찰해보고자 하였다.
검토결과, 지역 내 무덤(군)은 자연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군집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중심무덤과 주변무덤의 배치 및 구조에 따라 차별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각 속성들 중 묘역의 규모(대형→소형>중형>대형), 매장주체부의 위치(지하→지하·지상), 개석 의 형태(단차개석→다중개석), 관·곽의 축조방식(단일석재사용→석재혼용), 시상의 형태(단판석→다판·할 석), 유물의 부장(다종→일종부장, 적색마연호 : 관내 모두→관내 단벽 / 석검 : 관내 모두→관내 중앙, 관내 부장多→관외부장多)에 있어서 일정한 변화의 흐름을 확인하였다.
다만 변화의 방향이 시간성을 바탕으로한 일률적인 모습이 아니라 지역 내 사회 발전에 따라 집단(지역) 나름의 다양한 수용 및 정착과정으로 인해 각기 다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송국리 문화를 매개로 한 집단과 울산·경주·포항을 중심으로 한 검단리 문화를 경험한 집단의 지역 내 정착 과정은 이들 서로 간의 문화가 다양한 환경 및 사회적 요인을 바탕으로 한 선별적 필요성에 따라 수 용되면서 경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송국리형 묘역+검단리형 장법과 같은 형태의 결합형 구조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각 집단 상호간의 노력이 다양하게 유지·발전하면서 보다 점진적인 형태로 사회통합의 과정을 이루고 있다.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은 지석묘, 석관묘, 석곽묘, 주구묘, 토광묘, 묘역지석묘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하지만 남한지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청동기시대 조기, 즉 돌대문토기단계에 속하는 무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조사된 취락 내 주거지 숫자에 비해 무덤 조사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입지는 대부분 낮은 구릉에 입지하며, 일부 충적대지에서 확인되는데, 동시대 취락의 입지 경향과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동지역 양양 송전리에서 발견된 토광묘 1기는 사구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입지는 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의 가장 이른 단계에 등장하는 무덤은 토광묘이다. 영동지역 양양 송전리 토광묘, 울산 굴화리 토광묘에서는 삼각만입촉, 유혈구이단병식석검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전기 중엽에 편년된다. 반면 포항 삼정리 토광묘에서는 단도마연토기와 방추차, 울산 모듈화산업단지에서는 이단병식석검과 일단경촉이 출토되어 전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석관묘는 동해안지역에서 가장 많이 조사된 무덤이다. 토광묘와 비슷한 전기 중엽에 등장하여 원형점토 대토기 단계인 청동기시대 후기 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된다. 석관묘는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인 청동기시대 후기에 이르면 점차 소형화되며, 석관의 형태도 정연하지 못하다. 송현리 B유적을 포함한 영동지역의 석관묘와 포항 학천리 석관묘가 이 시기의 무덤에 해당하며, 유물은 마제석검, 석착, 검파두식 등이 출토된다. 석곽묘는 경주지역 문산리 유적에서만 확인된다. 유물은 일단병식 석검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중기 후반으로 편년된다. 주구묘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된다. 세장(장)방형 주구묘는 전기 후엽으로, 방형은 전기 후엽~중기후엽으로 편년된다. 울산지역 주구묘는 장방형에서 방형으로 변화하고, 매장주체부는 토광(목관)의 구조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지석묘는 동해안지역에서 제일 많이 분포하고 있는 무덤이지만 실제 발굴조사된 지석묘가 적어 정확한 시기설정이 어려운 상황이나, 동해안지역에 지석묘가 도입되어 축조되던 시점은 타 지역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해안지역의 지석묘는 많은 수가 조사되지 않았지만 묘역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독립적 분포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축조규모나 형태 등으로 보아 자체적인 발전양상은 미비하고,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점토대토기 단계까지 존속하다가 소멸해 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경주와 울산지역에서 묘역지석묘가 확인되고 있어 경남지방 묘역지석묘와의 비교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울산 산하동유적과 경주 어일리 유적 등 해안에 인접해 위치한 유적을 중심으로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 주구형 유구에 대한 성격규명도 좀 더 자료증가를 기다리며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논문은 김해 율하리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중심으로 시신 매장방법에 관해 검토한 것이다. 유적은 주거+저장+분묘+의례공간으로 구성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이중 무덤은 총 10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종류는 지석묘(개석식 묘역지석묘, 개석식 지석묘), 석관묘(상형석관묘, 석축석관묘), 목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이며, 여기에 채용된 매장주체부의 종류도 상형석관, 석축석관, 石+木棺, 목관, 옹관, 토광 등이다. 특히 지석묘의 매장주체부는 석축석관이 주를 이루지만 옹관을 제외한 모든 형식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것은 지석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상석이나 묘역을 통해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내부적 속성인 매장주체부는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石+木棺이 사용된 무덤은 최근에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데, 목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매장주체부에 수용된 결과라 생각된다. 따라서 목관묘와 토광묘도 다른 묘제들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조성되었던 무덤형식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단위 유적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지만 확인된 무덤의 수가 많고, 다양한 묘제들과 매장주체부가 복합적으로 출토되기 때문에 한국 청동기시대 무덤 매장방법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 perspective representation and its effect that appeared in the tombs and mural paintings of koguryo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inside structure of the tombs is likely to show the deepness effect, placing each function in the front and both sides centering around the mane pillars and creating the boundaries and the spaces that have various visibility between the inside and outside spaces of the structure just like a traditional Korean house shows. In addition, The deepness effect is emphasized by suggesting that the spaces are countinued with a storage attached behind the main house or by forming the level and deployment in a narrow space like the scene that a large array is looked out from the main house. Second, The deepness effect is expressed by making the form of ceiling turn to a vertical space of an ascending image, constructing it just as the lotus lamp ceiling of a wooden architecture or drawing it just like the imaginary heavenly world with the sun the moon and mythical fairies and animals spread in it. Thried, The perspective effect is disclosed by drawing the mural pictures in an equally set bird's-eye view without regard to the disfance proportion according to the conceptual visualization which is not a visual penetration, adopting the multiple view points and moving view points that are moving around as an important manner of seeing. Fourth, The deepness effect is emphasized through the scene of changing spaces when they are looked out far or looked into depending on a viewpoint of the daily life by forming the fromes of paintings that we made up with actual pillars, Du Gong, crossbeams or that are painted in most tombs. Fifth, The rich spatial senses are reflected by originating the characters of the three directions, level, deployment and ascending. An example which can support the conclusion of this study can be given here. that is, the construction ground plan of a dwelling house of a nobleman at the end of Koguryo as a remain which was excavated at Dongdae Ja in Jip 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