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형토기(角形土器)는 동체가 팽만하고 좁은 저부를 가진 기형을 중심으로 팽이와 흡사한 형태적 특징을 보인다.‘각형(角形)’이란 토기 명칭은 기형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남한 내 무문토기의 명칭이 대표 출토지를 중심으로 부여된 점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명칭 차이는 남한 내 주요 토기가 아니란 인식에 따라 통일된 명칭을 부여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본고는 최근 경기 서북부지역에서 각형토기의 출토에 주목하면서 이 지역의 무문토기 출토양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 하에 기존 각형토기를 남한의 토기문화유형과 같이 대표적 출토지를 바탕으로‘신흥동식 토기’라 명명한다. 지역 내 전반적인 문화유형 양상을 규명하고자 경기 서북부지역 중 강화, 김포, 검단의 무문토기시 대 취락 현황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김포와 검단은 역삼동문화유형권이며, 김포에서 흔암리식토기의 출토는 부재(不在)에 가까운 점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지역 내 각 토기의 출토 현황, 각 형식별 토기가 단독으로 출토된 주거지 사례 등을 살펴본 결과 지역마다 출토양상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유형을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토기의 계통성을 확인하고자 토기의 명목형·연속형 속성을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명목형 속성은 토기 구연부 문양을 중심으로 Ⅰ식 토기문 양(이중구연+사선 조합)과 Ⅱ식 토기문양(흔암리식토기)으로 구분된다. Ⅰ식 토기문양은 대동강유역 에서 출토된 신흥동식 토기문양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세분하고, Ⅱ식 토기문양은 이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 문양을 중심으로 세분하였다. 연속형 속성은 이중구연의 길이, 이중구연 두께, 사선길이, 이중 구연 접합부 두께를 중심으로 계측이 가능한 토기 71점을 검토하였다. 경기 서북부지역은 남한 내 북쪽에 위치하며 서해안을 따라 다양한 유입 경로를 갖기에 북한과의 관계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시 무문토기문화가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한 경로의 이주 및 유입으로 인한 혼재된 문화양상을 지녔을 것으로 본다.
본고는 무문토기문화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기준과 유사도에 따라 농담(濃淡)이 있고, 무문토 기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적 범위가 시간에 따라 변동하는 유동성을 띤 것이었음을 밝히는 것이 목 적이다. 특히 한반도 무문토기형성과 전개에 무관하지 않은 중국동북지역까지를 공간적 범위로 삼아, 한반도 조·전기의 무문토기문화를 농담(濃淡)에 따라 크게 4개 무문토기문화권으로 설정하였다. 4개 문화권은 한반도 남부 무문토기의 특징이 압축된 남부 무문토기문화권, 무문토기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지속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압록강중상류(전기에는 청천강유역)까지의 1차 무문토기문화 권, 직간접적으로 무문토기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동반도 남단에서 요동산지에 이르는 2차 무문토기문화권, 무문토기의 기본 구성요소를 공유하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3차 무문토기문화권으로 나뉜다. 특히 1차 무문토기문화권과 3차 무문토기문화권은 시기에 따라 축소 또는 확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광의의 의미로 무문토기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적 범위는 요하유역의 고대산문화까지이고,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질수록 한반도 남부 무문토기와의 유사도가 높아진다. 이처럼 무문토기문 화권에 농담이 있고, 시기에 따라 문화권이 변동하는 요인으로는 집단 간의 교류, 이주 등의 사건도 중요하지만, 청동기시대 동안에 한반도 각지와 중국동북지역 각지 간에 형성되었던 개별적인 지역관계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 논문은 남강유역 출토품을 대상으로 무문토기시대편평편인석부의 기능과 용도를 밝히고자 한것이다. 즉 마제석부의 연구 가운데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편평편인석부를 중심으로 석부류 전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무문토기시대 목재가공기술을 추론하고자 하였다. 먼저 도끼와 자귀, 끌을 구분하였는데, 자루에 직각으로 착장되어 목재를 깎고 다듬는 데 편리한 편인석부를 가리켜‘자귀’로 정의하고 편평편인석부가 이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남강유역에서 출토된 무문토기시대 편평편인석부를 형식분류하고 편년하였다. 이에 시기별 추이를 나타내는 몇 가지 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평면형태에 있어서는 방형→장방형, 인부에 있어서는 호인→직인으로의 방향성이인정되었다. 이는 목재 가공 시 인부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착장력을 향상시켜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암혼펠스로의 집중도 같은 맥락이다. 수량의 증가와 크기의 소형화는 작업 목적에 따른 자귀의 기능 분화, 미세가공기술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또한 현대 목공구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편평편인석부의 각 형식별 용도를 유추하였다. 대부분 크기와 형태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도구와 유사한 점이 확인되었는데, 그 중 평면 방형(Ⅰ류)의 편평편인석부는 오늘날의 대패와 같이 목재를 얇게 깎아내는 기능을 하였을 것이나 착병법에 있어서는 오히려 자귀와 유사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외에도 목병의 출토사례와 석부의 크기를 바탕으로 대ㆍ중ㆍ소자귀를 구분하였고, 크기가 매우 작은 것과 인부의 폭이 2.5㎝ 내외로 좁은 편평편인석부(Ⅲ류)는 각각 ‘一’자형, ‘ㄱ’자형 자루에 묶여 오늘날의 끌 또는 끌자귀와 같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마지막으로 이상에서 정리한 내용을 종합하여 무문토기시대 목재가공기술에 대해 추론해보았다.이에 무문토기시대에는 목재가공수준에 따라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이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고,특히 도구에 있어서는 각기 형식변화를 거쳐 기능이 극대화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본고는 湖西地域의 前期주거지에서 출토된 무문토기 문양을 대상으로 편년한 것이다. 우선 여러문양의 분포권을 살펴본 후 차령산맥 이남과 이북으로 지역권을 설정하였으며, 문양의 세분류를 바탕으로 屬性配列法을 통해 편년하였다. 무문토기 문양 중 이중구연문은 이중구연의 점토대 幅과 융기정도에 따라 세분하였으며, 단사선문, 거치문, X자문 등은 시문위치에 따라 세분하였다. 그리고 공렬문과 돌류문은 시문방향에 따라 구분하였다. 속성배열법에 따른 결과 차령산맥 이남지역은 8단계로, 차령산맥 이북지역은 10단계로 편년되었다. 이 편년결과를 검증하기 위해서 문양변천의 형식학적 해석, 주거지 형식과 공반유물상 그리고 C14 연대와도 부합되는지 검토하였으며, 좋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령산맥 이남지역과 이북지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류의 흔적은 적은편이다. 차령산맥 구조곡에 위치한 천안 운전리유적에서 차령산맥 이남지역의 5단계가 이북지역의 4·5단계에 병행한다는 유물상을 확인하였다. 차령산맥 이남지역에서는 상마석계이중구연ㆍ횡대구획문과 같은 외래계문양이 이른시기부터 확인됨으로써 중국동북지방의 선진문물을 끊임없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편년한 한 단계의 시간폭을 C14연대에 따른다면 대략 30~50년 정도로서 1~2세대의 시간폭에 해당하며, 이를 통하여 동시기의 시간성을 확보하여 취락고고학을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지역 무문토기의 편년은 돌대문토기를 표지로 한 早期의 설정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미사리·옥방 5지구유적 등과 같이 돌대문토기만을 반출하는 주거지가 조기의 표지적인 유적이며, 옥방 5지구·수가리유적의 연대측정 결과를 근거로 조기를 신석기시대 말기와 병행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突帶文土器외에도 二重口緣土器등 조기에 다양한 토기가 병존했을 가능성을 염두해 둔 견해가 있다. 미사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서는 조기의 유물조합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옥방5지구와 동일하거나 더 높은 연대측정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신석기말기까지 조기를 올려보기는 어렵다. 무문토기시대 조기는 돌대문토기·이중구연토기의 주류속에 鋸齒文土器·孔列文土器·橫帶區劃文土器등이 병존하였으며, 신석기시대 말기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무문토기시대 전기는 2000년대 이후 역삼동식토기·가락동식토기·흔암리식토기가 병존하는 것으로 논의가 정립되었으나, 최근 複合文에서 단순문으로의 변화, 즉 가락동식토기·흔암리식토기→역삼동식토기로의 변화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삼동식토기가 뒤늦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장기간 존속하였다는 지역적인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전기의 특징은 돌대문토기가 소멸되며, 이중구연토기는 類似二重口緣의 형태로 변화하며, 역삼동식토기·흔암리식토기 등 孔列文系土器의 확산과 더불어 지역적 특징이 나타난다. 남한의 무문토기 조기는 동북한지역 보다는 요동~서북한지역과의 관련성이 높은데, 쌍타자·대취자Ⅲ기, 신암리Ⅱ기, 공귀리·심귀리Ⅰ기, 세죽리Ⅱ1기, 구룡강Ⅰ기, 흥성Ⅲ기, 오동Ⅱ기, 서포항Ⅴ기등과 병행한다.
본고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무문토기시대로의 이행과정상에 나타나는 3개의 초기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조기의 내용, 조기의 상·하한을 파악하려 하였다. 본격적인 검토에 앞서, 조기의 기준으로 물질자료의 구성이 무문토기시대에 준하며, 동시에 전기와 시기적·형태적으로 구별되는 유물 조합으로 설정하였다. 위의 초기양상 가운데 돌대문토기의 단독기는 전기무문토기와 유물의 형태적 조합에서 구분되고 시간적으로도 선행한다. 그 밖의 신석기시대 말기에 즐문토기와 함께 종종 확인되는 새로운 요소와 무문토기시대내에 잔존하는 즐문토기요소들은 신석기시대에서 무문토기시대로 이행하는 도정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전자는 조기의 단계에 병행하면서 문화내용으로서는 무문토기시대 조기로 볼 수 없고, 후자는 전기이후로 판단하였다. 조기의 상한은 신석기시대 말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요소를 실마리로 이중구연토기의 3 단계와 이러한 새로운 요소의 공반상을 파악하여 빨라도 이중구연토기 수가리단계를 소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고, 하한은 물론 전기무문토기의 시작이 된다. 절대연대상으로 보면 상한은 3,200 B.P.를 전후한 시기로, 하한은 2,900 B.P.를 전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상의 결과는 조기설정이 한반도 남부전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무문토기시대로의 전환 양상이 다양함을 말해준다. 이러한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특징은 신석기시대에서 무문토기시대로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한반도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