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영웅서사시인 『장가르』에는 칼미크-오이라드 민중들이 꿈꾸는 상황이 봄바국에서의 ‘잔치’로 그려진다. 이 잔치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풍부하고, 나라 의 영웅들 간에 평등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이다. 이 잔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전쟁을 의미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잔치’에 다시 참여하는 것을 의 미한다. 『장가르』에서 태평성대의 시간으로 그려지는 잔치, 즉 칼미크-오이라드 민중들이 희구하는 잔치는 봄바국에서의 잔치만이다. 적진에서의 잔치는 전투를 촉발시키거나 전투를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다. 칼미크-오이라드 민중에게 매일 의 삶은 전쟁과 그 결과로서의 패배였다. 혹독한 날씨와 싸워야 하고, 먹을 것이 부족한 땅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며, 전쟁 혹은 사냥으로 인해 항상 육체적 위협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몽골 사람들에게 『장가르』를 연창할 때 눈앞에 그려 지는 봄바국에서의 잔치는 그 자체로 큰 위안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추위와 굶 주림, 끊임없는 전쟁과 패배의 상황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영웅으로 장가르 가 호출되었고, 그를 통해 새롭게 창조될 세상은 봄바국에서의 잔치로 구현되었 다. 『장가르』를 원형으로 하여 이를 반복하고 재현함으로써 오이라드 민중은 부 정합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상상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모던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서사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모던시인들이 가장 높고 고귀한 형식의 시로 꼽는 서사시를 그들의 시대에 되살리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 예로 에즈라 파운드의 캔토스와 티에 스 엘리엇의 황무지를 꼽는다. 나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도 이 모던시인의 그룹에 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이츠는 비록 캔토스나 황무지에 비견될만한 서사형태의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쓴 많은 시들이 서사시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는 예이츠 역시 파운드나 엘리엇처럼 전통을 존중하고 그 전통에서 시적영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시적 연속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대적 억압이 주는 갈등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시인은 개인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본고에서는 한국의 신경림과 아일랜드의 예이츠에게서 영웅서사의 시적 변용으로 탈 식민지적 정체성을 회복하여 주체적 삶의 본질을 모색한 시 정신을 비교연구 하려고 한다. 신경림과 예이츠는 영웅서사를 시적으로 변용하여 개인의 고뇌와 민족의 분열과 아픔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 이상의 사회를 추구하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