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스 스티븐스는 모더니스트시에서 우뚝 솟은 인물로, 영성과 신성에 대한 정교한 탐구로 유명하다. 상상력과 현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작품은 모더니스트적 감각으로 형이상학에 도전했다. 스티븐스의 시는 20세기 초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신성에 대한 진화하는 인식에 맞선다. 스티븐스는 전통적인 종교적 패러다임을 재정의함으로써 신성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매우 친밀하고 광범위한 모더니스트 시를 반영한다. 그의 시, 특히 1923년 시집 하모니엄은 전통적인 종교적 틀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나 세속적이면서도 깊이 공명하는 신성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낸다. 하모니엄은 모더니스트 문학의 이정표로, 스티븐스는 상상력과 현실을 교묘하게 엮어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맥락에서 영성에 대한 개념에 도전하고 재정의한다. 이 논문은 하모니엄에서 물질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조사하고, 스티븐스가 일상 속의 신성함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탐구하며, 시적 상상력의 변형적 힘을 강조한다.
예이츠와 스티븐스는 자연과 실체와 상상을 사용한 시인이다. 그러나 두 시인은 서로 유사한 시상을 고유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주로 상반된 방법을 사용하 였다. 예이츠는 시를 신화와 혼합해서 승화시키려 하였으나, 스티븐스는 전통과 신화 를 해체하여 인간적인 상상으로 시화시켰다. 특히 두 시인은 상반된 종교관과 이성관 을 가지고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켰다.
이 글은 W. B. 예이츠와 왈러스 스티븐스의 노년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비교한다. 비교는 두 가지로, 먼저, 늙어감의 함축과 암시로 인해 시인 내부에 촉발된 무의식 작용과 대응의 범위를 보여주고, 죽음의 두려움뿐 아니라 노화와 연상되는 감정을 다루는 창조적 상상력에서 찾는 여러 수단들을 보여준다. 본 논지는 시 기법 면에서 놀라운 새로운 통찰을 보이는 시의 기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예이츠와 스티븐스의 예는 드문 현상이다. 즉, 몸이 쇠퇴하면서, 마음은 나이를 극복하는 새 방법을 동원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상상력은 새로운 형태의 창조성으로 대응하는데, 이때 적음이 많음이 되며, 나이는 젊음에는 없는 새로운 표현법을 발견한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blems of poor imagination presented in the later poems of Wallace Stevens and W. B. Yeats. Being older and being barren of ideas, both poets feel the bitter anguish about their poetry writing. In his later poem, “Of Mere Being,” Stevens continues his endeavor to picture the ‘abstract’ or true reality but fails to accomplish “a supreme fiction” that is his own ultimate form of poetry. Yeats also seriously doubts of his own capabilities and laments the lack of theme as well as of subject matter in “The Circus Animals’ Desertion.” Although the imagination is sterile, however, the desire itself does not wither away totally. The elderly Stevens simply was not blessed with creative imagination in his later years. Hence, only the “mere” reality repetitively and gallantly appears in “Of Mere Being” and other later works. Yeats also does not give up but undertakes to write significant poems with integrity.
The paper defines two key terms of the last century: Deconstruction and Decreation. Emphasis is put on the second term, as it is useful to understand how Stevens composed his poetry and what he wanted to say about form and content in poetry in a modern context. In his essay "The Relations between Poetry and Painting" he talks about the term Decreation, which means the modern sensibility and mind that eye reality. Stevens' definition of decreation seems to fit well in some of Yeats's poems, the fact of which proves that it can be applied to modern poetry in general, as it has gone through the same soil and climate. Picasso exemplifies and consolidates the usefulness of the terms decreation and deconstruction. Stevens has made one term current and useful for deepening the understanding and appreciation of modern and contemporary poetry, and possibly modern and contemporary art.
윌리스 스티븐스와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는 은유의 힘을 빌어 상대적 진리를 암시하려 했으며 특히 실재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미지의 너머의 것들을 미적 활동과 의식활동이라는 관점을 통해 드러내려했다. 하지만 이들의 추구하는 목표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적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 의존하는 중요 은유적 요소들을 그 기능과 의미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먼저 “aesthetic”의 어원을 여러 역사적 배경을 통해 살펴본 후 그 기원이 인간의 감정(human feeling)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다음으로 미적 감정(aesthetic feeling)이 어떻게 기존의 전통, 과학, 종교, 도덕, 가치 등등의 실재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를 논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스티븐스와 예이츠가 각각 다루는 미적 감정과 실재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 는 지를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스티븐스는 실재(reality)와 상상력(imagination) 사이에서 상호 작용하는 힘들에 집중하여 상상의 인식기능(imagined faculty)을 통한 지고의 픽션(the supreme fiction)를 이룩하려 했다면 예이츠는 네 개의 심리능력 (자아에 대한 의지, 反자아에 대한 마스크, 지성에 대한 창조심, 변화하는 인간육체에 대한 운명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융합을 추구한 점을 필자는 강조하려한다.
T. S. 엘리엇은 「『율리시즈』, 질서, 그리고 신화」에서 제임스 조이스 가 신화적 영웅인 율리시스를 현대에 맞게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는 엘리엇의 전통과 동시대성을 중심으로 동일한 신화적 인물이라도 작 가와 작품에 따라서 그 시대의 시대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모습 과 성격으로 재조명될 수 있음을 연구하였고 여러 작가의 변화된 스토 리텔링은 이러한 모습과 성격을 보여준다. 테니슨, 스티븐스의 작품을 통해서도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율리시스라는 인물 을 호머와 단테가 그리는 모습과 테니슨과 스티븐스가 새롭게 만들어내 는 모습이 다름도 스토리텔링 기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테니슨이 율리 시스가 지식을 추구하여 항해를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스티 븐스는 지식 그 자체의 중요성에 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율리시 스를 오히려 정신적 항해를 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동일한 인 물의 다양한 묘사는 작가가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기법에 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론과 주코프스키의 ‘객관주의’ 시학은 객관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시학의 대표적인 시론들이라 할 수 있다. 낭만주의의 주관성 또는 자의식 과잉에 대한 엘리엇의 문제의식은 시적 의지의 부여를 “침탈하는 의도”로 바라보는 주코프스키의 ‘객관주의’ 시학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 이 “외부 대상과 감정의 완벽한 적합성”이라는 재현의 한 완성된 순간을 전제하고 있다면, 주코프스키는 시 언어를 물질적이고 유동적인 대상으로 보며 재현의 불완전함을 당연한 것으로 제시한다. 엘리엇이 대상이나 상황 등 객관적인 형상을 부여한다면, 주코프스키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며 그 불완전한 과정 자체를 ‘객관’의 정의 속에 포함시키려 한다. 스티븐스의 후기 시와 시론은 이런 모더니즘의 객관성 중심의 시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며 확장시키는 면이 있다. 특히 그의 ‘추상화’ 개념은 실제와 시인 자신을 동시에 추상화 함으로써 인식 또는 창조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