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내포된 위기의 성격을 역사, 경제, 안보의 측면에서 재검토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무역규제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에도 깊은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첫째,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 시 식민지배 문제와 청구권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봄 으로써, 현재 한일 간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는 일본군 종군위 안부와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의 역사적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일본군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배상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쟁점을 검토 하고자 한다. 셋째, 결론적으로 일본의 대한국 무역규제에 내포된 국제정 치적, 경제적 전환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본의 무역규제는 미국의 인정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미관계에도 근본적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트럼프 정부에서 본격화된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즉 세계체제의 보안관 역할을 포기하려는 전략적 결정에서 기인된 것이 다. 이에 따라 한국도 미국 없는 시대의 안보적‧경제적 대안에 대해 신중 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9대 대선을 거치며 한국사회에서 중부담 중복지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통상 중부담 중복 지 모델은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의 비율이 20%대인 국가들을 말하는데, 한국의 경우 2016년 기준으 로 사회복지지출 비율이 10%에 그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한 국의 사회복지는 저발전 했는가? 이 글에서는 그 원인을 한국의 고유한 정치경제적 맥락―오랜 세월 역 사적·제도적으로 형성되어온 정치사회 구조―에서 찾고 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압축적 고도성 장과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공황 등을 겪으며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화’라는 정치경제적 맥락(이른바 역사적 유산)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화는 우리사회에 성장제일주의와 시장중심 적 가치로 내면화되어 복지정책에서조차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을 찾는 ‘성장희구의 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즉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할 영역에서조차도 사회적 권리나 사회적 가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을 위한 선결과제로 성장희구의 정치 타파와 이를 위 한 정치적 노력이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본 논고는 기독교 선교 전략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민족, 다문화 지역에 대한 선교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에 합당한 전략을 모색할 것인가를 러시아연방 내의 북카프카스 지역을 사례로 들어 논증한다. 즉 하나의 국가 내에서 다문화 이해를 통한 선교 전략에 대한 논의를 러시아연방 북카프카스 지역의 인문지리, 역사, 정치적 상황을 통해 통찰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본 논고에서는 북카프카스의 다민족 국가의 선교 접근 전략을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북카프카스에 속하는 체첸 민족을 북카프카스 민족 그룹의 대표 주자로 선정하여 체첸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 정치, 사회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소수 민족을 연방 내에서 분석하는 것은 다민족 선교에 매우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체첸이 소연방 해체 이후 독립을 추구하였는데, 이 사실은 다민족 국가에 속하는 민족 그룹의 역사적, 정치적 특성들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민족, 다문화 선교전략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본 논고는 북카프카스 인문지리 특성, 그리고 체첸공화국의 인문지리, 역사적 기원, 러시아 민족과의 관계, 체첸 전쟁 등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을 도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본 논고에서 필자는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은 치밀한 지역연구를 통해서 그 전략적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으며, 민족의 종합적 상황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였다.
This dissertation was embarked upon for the historical examination and the missiological academic analysis of ‘The state-political character of the mission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which has been mentioned widely without any academic examination. This kind of study is necessary to understand rightly the Eastern Orthodox world which was drawn to the Korean church immediately after the collapse of USSR, and to establish the proper relationships between the old USSR and the Eastern European people as well as how best to evangelize them. The researcher analyzes the Russian archives in relation to the missions of Russian Orthodox Church. He carefully examines and analyzes closely the historical materials from 1860 till 1917(Bolshevik Revolution) including the mission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to the immigrant Koreans and those between 1897 and 1925 in relation to the mission to the Koreans i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result of this analysis, it could be said that the mission of Russian Orthodox Church was a reverse movement to the mission of Trinitarian God transcendent to man-made boundaries. It was mission as an instrument not for serving the interest of God toward the whole world, but for serving the interest of his or her own country alone. It was a distorted mission far from demonstrating the love of God because of absolutizing the nationalistic political ideology ‘russiani-zation’ As a result, it became heterogeneous apart from the right motif, goal and method of God’s mission. In the result of this study, it became possible to describe concretely the character and mode of the state-political mission of Russian orthodox church which has been vaguely mentioned and to have a theoretical prospect the general results which might happen in the process of the state-political missions. This study could probably be an available knowledge not only for those who are participating in missions to the people who has lived in the state-political mission world, but also for those who wish to evangelize it, cooperate with the Eastern Orthodox churches as well as offer invaluable suggestions to the mission scholars around the world.
It was in the year of 2010 that the news, which the thirteenth General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ould be held in Pusan in 2013, was reported. Since then,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community has been extremely divided. While many Christians welcomed the news in jubilation, some opposed it in anger. Those church leaders and theologians in opposition have said that the WCC denies the orthodox doctrine of proselytism and promotes a religious pluralism through its program of dialogue among various religions The WCC’s theological orientation, they argue, “anti-Biblical, anti-Christian and anti-church.” The WCC’s theology and ecumenical movement ia “a Satanic challenge to the church. Therefore, they oppose the scheduled General Assembly of the WCC.
However, their seemingly theological argument and accusation is, it seems, is political rather than theological. An anti-WCC movement in Korea, which began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more specifically after the north-south division, was also begun not by theologians but by some politicians and ultra-conservative church leaders during the Korean War in Pusan.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is historical context in which the anti-WCC movement was begun. Who did initiate it, when and why? This article thus discusses such concepts as the Cold War, the emergence of a new world order, the division of Korea, the Korean War, McCarthy’s anti-communist hysteria, ‘red complex and so forth. All of these elements brought about a new doctrine that communism is anti-Christianity and Christianity is anti-communism. In this peculiar historical context, a strong militant anti-communist element is so strong in the Korean church community that some church leaders have stood militantly against the W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