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4

        1.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후한대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위진남북조시대에 들어 승려와 사원이 크게 증가하였다. 사원과 승려의 증가는 체계적 관리를 위한 교단과 이를 관리할 계율 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道安(312~385)을 비롯한 竺僧郞, 慧遠 등은 승단의 지도자로서 계율 제정에 노력하였다. 도안이 계율로 정한 行香定座上經上講法은 이후 佛法처럼 중국에서 정착하였고, 『法苑珠林』에는 泰始 3년인 467년 보살계를 받은 費崇先이 매번 청경을 할 때는 늘 작미향로를 무릎 앞에 두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진남북조시대와 漢代 향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교의례용 향로의 유무이다. 이 시기 불교의례용 병향로의 등장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계율로서의 행향과 관련이 깊지만, 및 불교경전의 한역도 병향로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역 경전의 ‘手執香爐’, ‘手擎香 爐’는 당시의 향로를 고려했을 때 병향로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계율이자 의례인 行香은 동진대의 고승 道安이 제정하였지만, 행향에 사용하는 병향로는 서역에서 전래된 병향로를 바탕으로 중국적 기형인 鵲尾形柄香爐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 다.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한 병향로는 5세기 중반에는 鵲尾香爐로 불렀다. 현재와 같은 병향로를 사용한 것은 唐代로 燉煌 출토 P.3433호 문서와 S.1774호 문서 등을 통해 8세기 후반 이후 ‘長柄香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병향로는 작미형병향로로 대표되며, 이 향로는 화형받침과 몸체, 반구형 금구, 까치꼬리 모양 손잡이로 구성된다. 작미형병향로는 중국 남조에서 시작되어 북조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조에서는 5세기 중후반, 북조에서는 5세기 후반경부터 작미 형병향로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양식적으로 반구형 금구의 크기와 손잡이의 모습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불교의례용 거향로는 새로운 기형의 등장 없이 전대의 박산향로를 불교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석각화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불교의례용 거향로로 사용한 박산향로는 사용 공간과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北魏에서 隋代 로 가면서 점차 장식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6,900원
        2.
        201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 위진 시기 고분벽화는 한대 고분벽화와 화상석과 더불어 중국 고대 회화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회화자료이다. 동북과 하서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 중국 위진 벽화고분의 연원을 고찰하기 위하여 본문에서는 두 지역에 벽화고분이 나타나기 시작한 신망에서 동한 전기의 벽화고분부터 시작해서 동한 후기-서진의 벽화고분까지 그 출현과 발달 및 전개과정을 같은 시기 다른 지역의 벽화고분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면서 정리하였다. 먼저 동북과 하서지역에 처음으로 벽화고분이 등장하는 신망-동한 전기의 요녕 대련 영성자 한묘와 감숙 무위 한좌 오패산 한묘를 통하여 서한부터 낙양, 장안 등지의 벽화와 화상석에 보이는 鎭墓辟邪, 引魂昇天을 반영한 제재와 승선관이 이미 신망-동한 전기에 동북이나 하서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동북지역 고분벽화의 출현에는 중원지역에서는 신망-동한 전기부터,관중지역에서는 서한 후기부터 나타나는 생활풍속적 제재의 전파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보인다. 동시에 내몽고나섬 서북부와같은 북방지역의 동한 후기 벽화고분과도 벽화제재와 표현에서 유사한 특징을 공유한다. 동한 후기에 와서 동북, 내몽고, 하서를 잇는 북방지역이 벽화고분 축조의 중심지로 되면서 벽화문화권이 형성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서지역의 동한 후기-서진의 벽화고분은 무위, 주천, 돈황 등에 분포되어, 요양에 집중된 동시기 동북 벽화고분보다 다양한 발전양상을 보여준다. 하서지역 위진벽화고분은 연원을 해당 지역한대고분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남, 관중, 섬북, 산서지역 한대 벽화고분과 화상전고분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요녕 조양 원대자묘 벽화는 요양지역 벽화고분에서 보이지 않던 여러가지 새로운 제재들이 출현하는데 1세기 앞선 요양지역의 벽화고분과 다른 벽화 제재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고분의 벽화 구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준다. 四神, 力士, 狩獵과 같이 요양지역에 등장하지 않은 제재들의 전파경로를 살피면 대체로 하남, 섬서 지역(서한 후기)에서 북방과 하서지역(동한)으로 전파된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감숙 주천 정가갑 5호묘의 벽화의 제재와 구성 배치는 신망-동한 전기 하남지역에서 발달한 궁륭형 천장을 가진 전축분의 특징과 유사하며 고구려 벽화고분과도 친연성이 보인다. 고구려와 하서지역 고분벽화의 친연성은 서한 이후 벽화문화의 전파과정과 동한 후기부터 북방지역을 따라 형성된 벽화문화권의 교류가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위진 벽화고분의 연원에 대한 고찰은 3-4세기에 벽화고분이 조성된 동북과 하서지역만이 아니라 그 이전인 한대부터 각 지역별로 발달한 고분벽화 및 화상석의 특징과 지역 간 상호 교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고려하면서 폭넓은 시각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동북·하서 지역의 시기별 벽화고분의 연원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단순한 전파과정이 아니며 다양한 지역적, 시기적 편차를 가지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위진 벽화고분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연원은 인접한 동북, 하북, 산동만이 아니라 보다 시야를 넓혀 중원, 관중, 북방, 하서가종축과 횡축으로 연결된 교류 상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8,700원
        3.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사에서 약 400여년에 걸친 魏晋南北朝시대는 오랜 전란, 이민족의 침입, 잦은 왕조 교체 등으로 인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혼란의 시기였다. 언어상으로는 대규모의 인구 이동 등으로 인해 북방어와 남방어가 융합되는 국면이 형성되었고, 또한 불교의 성행, 운문(韻文)의 발달, 문학비평의 번영 등으로 인해 언어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초가 마련된 시기이기도 하다. 한어사에서 이 시기는 上古音시대부터 中古音시대에 이르기까지 언어체계의 변천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漢語音韻史에서 魏晋南北朝시대는 上古와 中古의 과도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魏晋시대는 兩漢시기와 南北朝시기의 교량 역할을 하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양성운(陽聲韻)은 몇 개의 운부로 나누어지고, 또 각 운부 속에 어떠한 운류(韻類)의 글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周祖謨가 분류한 魏·晉의 운부 및 劉宋시기의 운부와 비교하여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각 운의 독용과 통압 상황으로 分部한 결과 이 시기의 陽聲韻은 魏代에 11운부(東部, 鍾部, 眞部, 元部, 寒部, 陽部, 庚部, 蒸部, 登部, 侵部, 談部), 晋代에 12운부(東部, 鍾部, 眞部, 文部, 魂部, 元部, 寒部, 陽部, 庚部, 蒸部, 侵部, 談部)로 나누어짐을 볼 수 있다.
        5,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