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근대 정치가 19세기 제국주의나 전체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 요소들이 유럽에서 새로운 형태의 국가와 정치체제가 형성되기 시 작한 17세기부터 이미 유럽인들의 사유와 담론 속에 깊숙이 내재해 있었 다고 주장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근대국가와 근대 정치체제의 배후에 내재한 폭력(성)의 문제를 담론과 사유의 차원, 특히 17세기 인종투쟁 담 론과 홉스의 정치이론, 그리고 18세기 계몽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인류 역사를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정복과 지배로 바라보는 인종투쟁 담 론은 홉스의 주권에 대한 철학적-법학적 이론화를 통해서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에 담긴 진보를 향한 사회공학적 열망 속에서 오히려 민족, 계급, 이념 간의 투쟁으로 계속해서 전이되면 서 확산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연구는 백범 김구의 문화국가 정치사상에서 드러난 국제정치관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사상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백범의 국제정치관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배제하는 불개입원칙은 평화지향적이고, 방어적인 군사가치관이 명확했으며, 국제 도의(道義)라 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형성하는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제시했다. 국가 간 의 주권적, 정신적 평등에 대한 강조는 백범의 평등 사상을 구현했다. 세 계 평화를 창출하고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실현하는 것은 문화국가가 추 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에 대한 백범의 주장에서 평등, 호조주의 (互助主義), 세계주의, 비군국주의, 평화지향성 등의 사상적 특징을 보여 주었다. 문화국가를 통해 드러난 백범의 국제정치관은 높은 수준의 윤리 와 도덕을 가진 국가 도덕성을 강조한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무력과 폭 력을 배제하고, 문화와 윤리 도덕으로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王 道)정치라는 유가(儒家)적 특징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
In the early 20th century, as the main founders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Chen Duxiu and Li Dazhao formed their respective characteristic democratic thoughts on China's political development, which were based on the need to solve the practical problems of China, and combined with their cultural backgrounds, experiences as well as the judgments about China's political situation, in the environment of the changing world and the turbulent politics of China. Today, it is extremely necessary to do the comparative studies on their democratic political thoughts at the important moment of developing socialist democratic politics and promoting democracy within the party.
손중산(孙中山) 선생은 중국 근대 민주혁명의 선구자로서 민주혁명에 그의 일생을 받쳤다. 그는 중국 근대화 시기 민주혁명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서양의 문화와 정치제도를 결합하여 그만의 독특한 정치사상을 형성하고 이를 집대성하여 삼민주의(三民主义)를 창안하였다. 손중산(孙中山)의 정치사상은 삼민주의(三民主义)에서 비롯되었으며, 삼민주의(三民主义)는 다년간의 민주혁명운동의 과정에서 그의 혁명강령이 된다. 손중산은 이러한 사상적 배경하에 서양의 삼권분립체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오권분립체제의 민주공화제도를 중국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손중산이 주장한 오권헌정(五权宪政)이다. 이는 헌정(宪政)을 민주정치의 기초로 삼고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여 진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16세기 조선시대의 南冥 曺植(1501-1572)의 정치사상과 17세기 명말 청초의 鏡萬唐甄(1630-1703)의 정치사상을 비교한 논술하였다. 두 사상가는 130 년이란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자리에서 같은 주제를 갖고 토론하며 교류한 듯 여러 방면에 걸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현실에 대한 강력한 개혁의식과 실천정신은 그야말로 不謀而合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성리학자들의 성향은 본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학적 • 이론적 공소함 에 빠지가 쉽다. 막상 그런 현상은 성리학자들 사이에 빈번하였다. 그런 점에서 남 명과 주만은 철저히 이런 성리학자들의 단점을 실천적 · 개혁적 관점에서 보완해 나아갔다. 이로부터 두 사상가는 정치현실에 그 누구보다 민감하였고, 구체적 개혁 정책으로 당대 사회 정치적 부조리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두 사상가는 당대보다는 후대에더 큰 빛을 발하며 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기었다.
‘사회적 실천’은 ‘개인의 도덕수양’과 다르다. 그것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총칙, 즉 무엇보다도 중요한 절대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총칙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한다. 모든 사회실천은 이런 총칙과 방법들에 근거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분명한 기준을 갖고 올바로 판단, 평가해야 한 다. 이 글은 이상의 내용을, 왕부지의 사장에 근거하여 서술한 것이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 사회실천의 총칙이라는 왕부지의 주장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총칙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나, 실천의 구체적언 내용 및 판단 평가의 기준 또한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혹자 는 왕부지의 이런 주장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하등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평가절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사상이라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는 학문이 아니라 그 해결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인 한, 그와 같은 비판은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분명한 이론적 근거를 갖는 원칙들이 정립된다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형편없는 수준의 혼란상은 자연스럽게 소멸되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