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쟁은 성만찬 논쟁이다.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종교개혁이전에 일반적이었던 신인양성의 “속성간의 교환(Alloeosis)” 이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반박되어지고, 그에 의하여 “속성간의 교류 (communicatio idiomatum)”로 주장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속성간의 교류에 상응하는 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이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신학에서 삼위의 “순환”(“사귐”)으로 전해지면서 신학용어의 오용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신앙이해를 위하여 신성의 주도하에 인성을 취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인양성이 상호내재, 침투하여 연합 하는 신학이해가 사회적인 삼위일체론을 위하여 원 의도를 약화시켰다. 교부들이 즐겨 삼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사귐(communio κοιν ωνία), 참여(participatio), 사회적인 관계를 위하여 ‘함께 나누다’(socio), ‘관계’(societas 교제, 사회)를 사회적 삼위일체신학을 위해 사용했으면 훨씬 나을 뻔했다. 그리스도신앙이해를 위하여 신인양성의 속성간의 교류와 삼위일체신앙 이해를 위하여 삼위 하나님의 속성간의 교류를 위하여 ἀντίδοσις ἰδιωμάτων, περιχώρησις가 사용되었으나 이 용어는 그리스도론적으로 신성의 주도하에 인성과의 연합을 표현하는 연합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서 그 의미는 속성 간의 교류, 상호내재, 상호침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러한 신 학은 보나벤투라에게서 찾을 수 있으나 인간의 영혼과 인식, 이성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어서 루터의 그리스도의 수난이 인성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가르치는 내용과 차이를 보인다.
이 논문은 20세기의 위대한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1909-1998)이 종 교개혁사상을 후기 계몽주의 다원주의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를 살 펴보려는 것이다. 뉴비긴은 20세기 후반의 서구사회에서 과학적 세계관을 새로운 이교주의로 보고 기독교 신학에 인식론적 새 출발을 하려고 했다. 뉴비긴은 개혁신학의 토대위에 선교사의 경험과 에큐메칼 운동의 경험을 수렴하여 통전적이고 독창적인 신학을 제공하였다. 이 글은 첫째, 뉴비긴 의 생애와 그의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검토했다. 둘째, 20세기의 세계기독교의 변화에 대한 뉴비긴의 이해를 검토했다. 셋째 뉴비긴의 신학 에서 종교개혁사상과 관계된 부분을 ⑴ 하나님 지식, ⑵ 오직 믿음, 오직 은혜, ⑶ 성경의 권위, ⑷ 교회: 하나님의 가족, ⑸ 선택의 교리, ⑹ 만인제 사장직과 직제, ⑺ 교회와 국가의 순서로 연구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독일의 루터10년 프로젝트처럼, 한국교회 역시 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 내지는 루터 신학의 세계적인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서 “무엇이 종교개혁적인가?”를 다루었다. 관점에 따라서 루터 신학 의 핵심은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 두에 두었고, 그 결과 루터 신학의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해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여 논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칭의는 종결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작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 칭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 간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간이 할 일이 있다면, 칭의 이후의 일이며, 칭의 이후의 일이 역으로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즉 칭 의를 위해 인간이 할 일은 없지만, 거룩한 삶은 칭의와 더불어 가는 것이 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의 일하심의 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 혹은 외적인 권위와 규모 를 통해 신을 파악하려했던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 내지는 스콜라신학을 거부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의존성, 기복 및 개교회 지상주의 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 평등의 선언이자, 직업 활동 을 통한 소명의 성취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 분법적 틀을 희석시켜야 하며, 동시에 교회 밖 직장과 사회에서 직업 소명, 즉 제사장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자랑스런 유산을 물려받은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