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형세의 변화에 따라 종교중국화 공정이 시작되고, 중국 기독교계가 비교 적 빠르게 반응하여 「기독교 중국화 5개년 사업계획」을 내놓았다. 실천 주역이 되는 교역자는 신학원교에서 육성되므로 중국기독교 신학원교의 설립 현황, 학제 구성, 운 영 상황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8-90년대에 신학원교가 집중적으로 재건 및 신설되었는데 전국-행정구–성 단위의 위계적 형태로 설립되어 현재 22곳이 있 다. 학제는 2년제 전과, 3년제 대전, 4년제 본과 등의 정규교육과정이 있고 함수반, 배훈반, 진수반의 이름으로 신학원교나 양회가 개설한 단기 교육반이 있다. 그 외 양 회는 교역자 재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각처에 많은 교회가 복귀하면서 원활한 교회운영을 위해 통일 된 규정을 마련하여 중국의 교회를 규범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1996년에 「중국기독교교회규장」이라는 전국적 성격의 규정이 공포되었다. 이후 중국 기독교의 형세 변화에 따라서 2008년과 2018년에 큰 폭의 개정이 있었다. 3종 「교회 규장」의 개정 내용은 중국의 교회가 더욱 체계화되고 표준화되어 과정을 보여 준다. 그래서 본 논문은 3종 「교회규장」의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매 시기 규범화의 배경과 그 의미를 궁구하고자 한다.
당정의 종교중국화 요구에 부응하여 중국기독교계가 가장 빠르게 기독교중국화를 공식 선언한다. 사실 기독교의 ‘중국화’는 이미 신중국 초기부터 시도되어 온 것이다. 이는 규장제도 에 반영되어 있는데, 규장제도의 제정 및 개정 내용은 중국기독교의 중국화 여정을 가장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본고는 사회주의 중국사회에서 중국기독교의 과제와 지향을 담고 있는 양회의 장정과 교회규장, 그리고 「5개년계획」방안을 주요텍스트로 삼아 그 변화추이의 과정을 분석하고 매 단계 ‘중국화’의 내용과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중국교회에서 기독교의 중국화에 대한 논의는 두 번에 걸쳐서 제기되었다. 첫 번째는 반기독교운동에 대응하여 기독교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중국교회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1920년대에 일어 난 본색화(本色化)운동이다. 또 한 번은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지금까지, 중국공산당과 정부,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삼자교회에 의하 여 추구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 즉 삼자화(三自化)다.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요구한 기독교의 중국화를 이룬 교회다. 최근에 와서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중국교회에 기독교의 중국화를 위하여 구체적인 방침을 세우고 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오진 오화’(五進五化) 정책이다.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교회 안으로 진입시키 려고 하는 다섯 가지는 (1) 종교정책법규(宗敎政策法規進敎堂), (2) 건강의료(健康醫療進敎堂), (3) 과학기술지식(科普知識進敎堂), (4) 가난을 구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扶持帮困进教堂), (5) 조화로 운 사회건설(和谐创建进教堂)이다. ‘오진’(五進)이 그 이론적 토대라면 ‘오화’(五化)는 그것의 구체화이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변화되어야 할 오화는 (1) 종교의 본토화(宗教本地化), (2) 관리의 규범화(管理規範化), (3) 신학의 본토화(神學本土化), (4) 재무의 공개화(財務公開化), (5) 교리의 적응화(敎義適應化)이다. 오진오화 정책은 삼자화의 구체화 이다. 오진오화정책은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중국교회에게 기독교의 중국화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준 것이다. 중국교회에서 역사상 두 번 있었던 기독교의 중국화를 평가하면 기독교의 중국화를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색화는 기독교의 중국 토착화 작업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주도로 삼자애국 운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삼자화와 삼자화의 구체적 실현의 가이드라 인인 오진오화는 중화사상의 중국화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삼자화 정책과 그 구체적 실현화인 오진오화는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하는 중국공 산당의 통일전선전술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 고 있는 각종 공정(工程)과 마찬가지로 중화사상이 기초하고 있다.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는 토착화나 상황 화가 아니라 중화사상의 중국화이고,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기독교를 이용하고자 하는 통일전 선전술의 일환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중국화에 주장만 있을 뿐 중국의 기독화(基督化)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없다는 것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삼자화와 그 구체화인 오진오화 된 기독교는 중국적 기독교이지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다.
The article deals with the roles of Chinese Christian NGOs for social service and the implications for North Korea. The article consists of 4 parts: Chinese NGOs and the roles for social service, possibility of Chinese Christian NGOs for social service, the implications for North Korea, and missionary tasks of Korean Churches for both China and North Korea. The first part discusses necessity of NGOs for social service in China which has been in sufferings such as gap of the rich and the poor, and unemployment due to the economic reform policies of China. The reform policy motivated to establish many kinds of NGOs in Chinese civil society. Under the socialist political rule Chinese NGOs are characterized with the supplementary roles for Chinese authority or mediation roles between the authority and people. The second part analyzes the Chinese Christian NGOs and their social roles. Under the religious policies of the Chinese regime, the history and theology of the three-self church and so-called the home-based church are described. Their social roles are analyzed in the perspective of NPO which is existed for public service. Particularly the activities of the Amity Foundation, an excellent Christian NGO in China are emphasized. The third part describes some possibilities of Christian NGOs for social service in North Korea which has just started to exercise the economic reform policy. During implementing the policy most of North Korean people have been suffered from social problems such as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NGOs can contribute to relieve North Korean from social poverty. Also the society needs some Christian NGOs. In conclusion the article suggests two tasks to the Korean Churches in the perspective of NGO. First, the Churches are asked to support to establish Christian NGOs in North Korea such as the Amity Foundation in China. Second, the Churches should reflect their mission policies for China which emphasized on conversion and church planting. Instead the Churches are asked to support to develop Christian NGOs in China.
유명한 예일대 역사가 케네스 스코트 라투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는 기독교의 전 역사를 ‘확장’(expansion)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며, 특히 ‘예수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역사관으로 설정하고 이 사상을 일평생 유지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사상은 언제 그의 역사관과 선교관으로 확정했을까? 일반적으로 1937년 이래 수년에 걸쳐 출판된 『기독교확장사』(A History of Expansion of Christianity, 1937-45)가 그의 이런 역사관이 구체화되는 시기라고 주장되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라투레트에게 이런 역사관이 없었을까?
1937년 이후 확고히 정립되는 ‘예수의 영향력 확장’으로서의 기독교 역사라는 표현 자체는 1929년에 출판된 첫 기독교 역사 관련 저작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투레트가 이 책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중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서구의 대리자로 묘사할 때, 독자는 그가 1937년 이후 저술에서 등장하는 ‘예수의 영향력 확장’으로서의 기독교 선교역사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인식을 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중국에 끼친 서구의 영향력’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하는 명제는 사실상 ‘서구’를 ‘기독교’로, 또 ‘기독교’를 ‘예수’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즉, 1937년 『기독교확장사』 이후에 구체화되는 명제가 이미 1929년 저작에서 배아의 형태로 표명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기독교선교역사』는 단순히 ‘명제’에서만 1937년 이후 작품들의 선구적 배아가 아니었다.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기 위해 기독교역사 해석은 반드시 여러 교파를 통합과 비교의 방식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에큐메니컬적 역사기술, 또한 예수의 영향력은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사’가 아니라, 반드시 교회 바깥의 모든 영역을 포괄적으로 기술하는 ‘기독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기독교 신앙이 선교를 통해 퍼져나갈 때, 이는 마치 파도의 고저, 밀물과 썰물의 반복되는 양상처럼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전진한다는 믿음 등, 1937년 이후 작품에서 구체화된 라투레트의 모든 역사기술 방법론과 관점은 사실상 1929년의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도 흔적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선교사와 선교활동의 공헌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고, 결국에는 기독교의 확장으로 역사가 진보할 것이고 윤리가 개선될 것이라 믿는 이상적이고 순진하고 낙관주의적인 승리주의 역사관이라고 라투레트의 후기 저작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이미 1929년에 출판된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독교확장사』(A History of Expansion of Christianity, 1937-45), 『아노 도미니: 예수, 역사, 하나님』(Anno Domini: Jesus, History, and God, 1940)과 『꺼지지 않는 빛』(The Unquenchable Light, 1941), 『기독교사』(A History of Christianity, 1953), 『혁명시대의 기독교』(Christianity in a Revolutionary Age, 1958-62), 『기독교의 역사』(Christianity through the Ages, 1965) 같은 라투레트의 후기 대작은 모두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 빚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