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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그동안 통일신라시기의 산성은 성벽이나 문지, 집수시설 등을 중심으로 발굴조사 되었 다. 그 결과 성벽의 축조기법이나 조성 시기, 구조 등에 대해선 비교적 많은 자료가 축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산성의 주체인 인간의 숙식 등과 관련된 건물지의 조사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통일신라시기의 산성 내 건물지는 대체로 기단석을 갖추고 있으나 동 시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가구식기단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그리고 이 시기의 주요 난방 시설인 쪽구들 의 경우도 초석 건물지에서 발견된 사례가 거의 없다. 단적으로 전면 발굴조사가 진행된 광 양 마로산성의 경우 성주나 하급 관리, 병사들이 머물 수 있는 난방시설이 턱 없이 부족함을 살필 수 있다. 아울러 전술한 기단석의 위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광양 마로산성은 치소성이나 거점성으로 인식될 정도로 중요한 산성이었다. 그러나 성주나 관리, 병사들이 상주하기 위한 온돌 건물지와 성주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 물지의 기단석 등은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성 내 건물지가 일상생활을 영 위하기 어려운 구조였음을 알게 한다. 그런 점에서 향후 산성 외부의 건물지 조사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7,000원
        2.
        202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constructed in 634, is Korea's oldest stone pagoda. As a prototype of the Silla Stone Pagoda, the pagoda was constructed using flagstones. Since it was constructed with flagstones, it has been known to be a pagoda that replicates the brick pagoda until now. The latest research suggests that it copies the India Stupa or the Stacked Stone Pagoda more than the Brick Pagoda. However,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h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erms of construction technique and shape compared to Brick Pagodas, India Stupas, and Stacked Stone Pagodas. Therefore,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stone building technique used in Silla. Through this study, I would like to clarify that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is a stone pagoda that creatively reflects the existing Silla stone building techniques such as stone fortresses and stone chamber tombs.
        4,200원
        3.
        2023.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읍성이라는 용어는 읍치(관아)가 위치한 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고려시대까지는 사용되지 않다가 조선시대 초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는 행정이나 군사 중심의 치소성 (治所城)이었으나, 고려시대 말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동남해안 중심으로 새롭게 방어용 성 을 쌓으면서 기존의 치소성과 구별하기 위해 읍성(邑城)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경주읍성에 대한 연구는 기존에 문헌과 고지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발굴조 사는 비교적 근래인 2012년부터 동성벽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자료가 일부 축적되었으나 이를 토대로 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본 고에서는 경주읍성의 범위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5구간 발굴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경주읍성의 동성벽과 북성벽 일부에 대한 축조과정과 시기에 대하여 간략하게 검 토를 해보았다. 그 결과, 경주읍성의 동성벽은 토성에서 석성으로의 개축 양상이 명확히 확인되었으며, 북성벽은 처음부터 석성으로 쌓았음이 확인되어 토성과 개축된 석성의 범위가 서로 달랐음 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 형태, 토층 등을 통한 개축과 수축부의 구분, 소량이지만 해당시기 를 판단해볼 수 있는 유물 등을 통해 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전기에 토성 축성 이후, 고려시대 말 석성으로 개축되었으며, 석성의 1차 수축은 조선시대 전기, 2차 수축은 조선시대 중기 또 는 임진왜란 이후에 대대적으로 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문헌과도 대체로 유사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경주가 고려 개국과 함께 지방도시로 전락하면서 현종(顯宗) 대 에 토성으로 축성되고 우왕(禑王) 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으며, 조선 세종(世宗) 대와 문종 (文宗) 대에 규식에 맞도록 수·개축된 것으로 보인다.
        7,800원
        4.
        2023.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산 배산성 북쪽 성벽구간 발굴 결과, 삼국시대 초축 성벽과 통일신라시대 개축 성벽이 함께 조사되었다. 삼국시대 초축 성벽은 수직식성벽으로 하부에 기단석축과 기단보축이 함 께 설치된 구조이다. 수직식성벽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측력으로 인해 붕괴 위험이 높다. 이 를 보완하기 위하여 계단식내벽을 쌓아 측력을 일부 흡수하기도 하나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압력으로 인해 결국 수직식성벽은 붕괴되고 만다. 수직식성벽은 적들이 등성하기 어렵다는 장점은 있으나 붕괴 위험이 높아 통일신라시대에는 층단식성벽 축조기법이 등장한다. 외벽 의 성돌 크기는 더욱 커지고 가공 수법은 판상형 할석에서 장방형 또는 방형 할석으로 바뀐 다. 바른층쌓기 수법은 더욱 정교하게 적용되고 기단보축은 소멸한다. 두 가지 축조수법이 확인된 배산성 초축 시기는 6세기 중엽경, 개축 시기는 8세기 중엽경으로 약 2세기의 시간 차가 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12월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고쳤다는 기 록이 있는데, 배산성 개축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그 동안 동래군 치소성(행정 읍치)으로 동 래고읍성을 지목하여 왔으나 고읍성 축성은 배산성 개축 시점보다 후행하는 것으로 판단된 다. 따라서 배산성은 고대 부산의 행정 치소로 오랫동안 기능하여 왔으며, 고읍성이 축성된 이후에는 행정 기능은 자연히 이양되지만, 배산성은 여전히 방어적 배후산성으로 활용되었 던 것으로 여겨진다.
        6,400원
        5.
        2023.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파주 덕진산성은 임진강 북안에 위치하는 산성이다. 현재까지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 및 시설의 축조양상을 파악하여 경관의 변화과 정에 대해 살펴보고, 수축에 대한 특징들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덕진1기는 고구려가 처음 덕진산성을 점유한 시기로 북상하는 신라군을 방어하기 위해 임진강유역의 성곽들과 함께 축조하였다. 덕진2기는 고구려 멸망 신라가 덕진산성을 확보 하고, 나·당전쟁 중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성벽과 부대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를 실시하였다. 덕진3기는 신라가 북쪽의 방어선을 강화하고, 지방행정을 정비하면서 덕진 산성을 지방행정에도 이용하기 위해 성벽과 시설물을 정비하였다. 덕진4기는 조선시대에 다시 고쳐 쌓아 이용하였다. 덕진산성은 고구려-신라-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성곽이 이용되는 과정이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어, 다른 성곽과 비교를 통해 성곽의 축성법과 운영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 한 자료이다. 분석 결과, 수축을 통해 확인된 특징점들은 ①성벽을 덧대어 그대로 이용하였 다. ②좁은 성 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한 노력들이 확인된다. ③성의 운영목적에 따른 구조적 변화가 확인되었다. 시기별로 목적에 따른 변화가 확인되고, 조선시대에는 외 성의 축조를 통해 삼국시대와는 다른 공간활용이 주목되었다. 덕진산성의 시간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덕진산성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 지 지속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성곽의 운영에 대한 기초자료가 확보되어 다른 성곽과의 비교·검토에 앞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9,000원
        6.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Wolseong Wooden moat is a unique example. Which is a vertical wall made of wood. It shows a changing point how to make the wall by digging a hole and stacking stones vertically. This study tried to to make a assumption about the construction process of the wooden structure found in the Wolseong pit moat. I sorted out wooden elements and then analyzing these features and compared with the results of the excavation. After I made 3D modelling in the order to it was made. This moat is not only a function of digging up the ground to trap water, but also a technique of building structures to maintain walls. It is a valuable material that can show the woodworking engineering techniques of the Silla Dynasty.
        4,000원
        7.
        2023.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백제 마지막 수도인 사비도성은 부여나성과 부소산성, 백마강이 도성의 경계를 이루고 그 내부에 도성 핵심시설을 구축하는 계획도시로 천도 이후부터 멸망까지 사비백제의 중심 지였다. 부여 나성의 성벽은 도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해발 100m 전후한 산과 하천을 경유 하면서 축조되었다. 때문에 지형에 따라 축조 공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성벽 전면 을 수직에 가깝에 석축하는 것은 성벽 전 구간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본고에서는 부여 나성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성벽의 입지 및 지형별 축조 기법의 양상을 살펴보고 출토된 유물과 주변 유적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축조시기를 가늠해 보았다. 먼저, 입지적 특징에 따라 저습지-평지구간, 산지-평지 및 능선구간, 산지-경사구간으로 구분하 였다. 구간별 특징을 살펴보면 저습지-평지구간은 성벽을 조성할 때 하천 등의 연약 지반을 극복하는 부엽공법, 말뚝공법, 치환공법 등의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체성부의 축조는 넓 게 마련된 기저부 상면에 토축부와 석축부를 조성하는데 지점에 따라 선토축 후석축 혹은 선석축 후토축 공정으로 구축된다. 산지구간은 기본적으로 사면을 계단식으로 굴착하여 기 저면을 조성한 후 토축부로 체성의 대부분을 구축한 후 외면에 석축을 후축하거나 토축부와 석축부를 서로 동시에 조성하기도 한다. 석축부의 조성은 성외측 기저부에 구를 마련하여 기초석을 쌓은 뒤 그 상부는 장방형의 면석을 品자형으로 수평줄눈을 유지하면서 쌓고, 뒤 쪽은 일정 폭으로 할석으로 뒤채움석을 쌓는다. 부여 나성의 축조시점은 출토유물과 주변 유적과의 관계를 토대로 보면 6세기 초·전엽 무렵을 상한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출토 유물과 주변 유적의 연대자료가 아직까지는 소략 하기 때문에 향후 조사 성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6,900원
        8.
        2023.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백제 한성기 왕성으로 비정되고 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성벽 축조기법에 대하여 살 펴보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서로 다른 지형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성벽 축조기법에서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지면 지정과 기초성토에 의한 기저부 조성방식 등에서는 축조기 법의 공통점도 확인된다. 江岸 평지에 축조된 풍납토성은 자연제방의 구지표면을 정지하고 기초성토를 한 후 그 위에 판축틀(거푸집)을 설치하여 版塊를 축조하는 방식인 판축기법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의 구조는 중심토루와 중심토루의 내·외벽면에 덧붙여진 토루로 이루어졌으며, 판괴를 순차 적으로 덧붙여가며 축조하는 分段法에 의해 성벽이 완성되었다. 반면, 구릉과 평지가 복합 된 지형에 축조된 몽촌토성은 지형에 따라 축조기법의 차이가 엿보인다. 성벽 축조구간이 평지인 경우는 풍납토성과 같은 판축기법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구릉 지 역의 경우는 구릉의 자연 경사면을 2~3단의 계단상으로 깎아내고 그 위에 성벽을 축조하 였는데, 구간에 따라 다소 축조기법의 차이가 확인된다. 즉, 북서벽 구간은 판축틀을 설치 하여 축조한 양상이 확인되었고, 동벽 구간의 경우는 성토기법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 된다. 이렇듯 성의 입지에 따른 두 성의 축조기법상의 차이가 있지만, 축조기법상의 공통점도 확인된다. 즉, 지면과 성벽의 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성벽 기초부의 내측 혹은 외측에 해당 하는 부분의 지면을 얕게 굴착하여 끝부분이 돌출되게 지면을 지정하는 기법, 성벽 기초부 에 뻘 혹은 점질토를 이용하여 기초성토를 하는 방식, 기저부 보강 방법의 일환으로 토제를 시설한 것 등은 두 성에서 모두 확인되는 축조기법이다.
        7,700원
        9.
        2023.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아차산 능선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홍련봉 2보루는 평탄지(고대지)와 함몰지 2개의 지 형으로 구분되었으며, 함몰지의 협축성벽은 남한지역의 다른 고구려 보루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구조로 주목된다. 대부분의 고구려 보루들은 산 정상부에 따로 내벽 을 쌓지 않고 한쪽 벽을 쌓는 편축식의 성벽을 갖고 있으나, 홍련봉 2보루의 경우 절반은 편 축, 나머지 절반은 협축식으로 축조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남한지역 고구려 보루의 석축성벽은 규모나 축조된 곳의 지형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으 나, 기본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구조를 갖는다. 양주분지와 한강일대 소규모로 축성된 보루 의 성벽은 지형에 맞춰 산 정상부를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두르는 형태인데, 크게 기초부, 토축부, 석축부로 나눌 수 있다. 즉 기저면 조성층에 석축성벽과 함께 사질토를 층층히 쌓아 뒷채움 하여 편축식으로 성벽을 축조를 한다. 하지만 임진강유역의 강안평지성은 협축식 성 벽으로, 소형의 보루들과는 다소 구분되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하지만 협축으로 조성된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인 구조는 한강유역의 다른 보루들과 같이 기초부, 석축부, 토축부로 구분되어지는 형태를 보인다. 홍련봉 2보루의 평탄지는 다른 보루들과 마찬가지로 토축부를 조성하며 대지를 조성하 고 석축성벽을 편축식으로 조성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함몰지에 축조된 협축성벽은 다른 한 강유역 보루들의 성벽과는 구분되지만, 임진강유역의 강안평지성과 같은 방식으로 협축성 벽이 축조되어졌다. 즉 홍련봉 2보루 함몰지의 협축성벽은 강안평지성과 같은 토축부+내· 외석축벽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협축성벽의 외벽은 영정주를 기준으로 수직에 가깝게 석 축부와 토축부를 같이 올렸다. 특히 내벽은 자연 경사도를 주어 안정적인 각도로 석축을 올 렸으나 외벽은 나무기둥과 석축으로만 마무리한 점, 토축부에서 횡장목은 확인되지만 판재 를 설치하기 위한 종장목은 확인되지 않는 점을 볼 때 토축부는 종장목과 협판 없이 석축이 판재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홍련봉 2보루의 성벽은 다른 보루들과는 다소 구분되지만, 임진강 일대부터 한강 유역까지 조성된 다른 보루나 평지성들과 같이 동일한 형태의 축조방식이 적용된 것이다.
        5,800원
        10.
        202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지석묘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고고학계의 관점을 학사적으로 검토하고 함안 분지 안에 분포하는 지석묘군의 매장시설 배치와 입지 및 분포에 대해 해석을 시도한 연구이다. 처음 지석묘 연구자들은 한 시대의 문화적 표지물이나 사회발전 단계의 증거물로 파악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정 경관 내의 기념물로 파악하는 관점이 우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안의 지석묘군은 일상의 주거와 섞이지는 않지만 일상의 주거군에서 멀지않은 장소에 축조되는 경향은 뚜렷하다. 함안분지는 주변 남강유역이나 남해안 분지의 양상과는 다르게 대규모 매장의례의 복합단지가 조성되는 현상이 관찰되지 않는 대신 지석묘가 취락 인근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어 왔다. 함안의 지석묘는 선상 배치되 는 양상이 뚜렷하고 그것은 당시 주민이 일상적으로 이동할 때의 교통로를 따라 배치된 결과일 가능 성이 크다. 특히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곡저평야 하천을 따라 선상으로 배치된 상석 열은 수백 년에 걸친 축조와 의례가 반복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상석 한두 개의 존재가 지석묘군의 위치를 말해주는데 상석 아래와 그 주변에는 10~20여 기 내외로 구성된 매장시설군이 분포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 한 지석묘군이 길면 2km 이상 연접 배치되어 선상의 지석묘 대군집을 형성한다. 각각의 소군집을 매 장의례의 장소로서 공유한 공동체들이 서로 협상하고 협동하여 축조와 의례를 반복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석묘군을 경관 내의 특정한 장소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석묘 가 구축된 장소에는 공동체적 경험과 역사적 서사가 깃들여 있어서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 특 히 기념물적 건축의 축조, 특정한 의미를 지닌 유물의 매납과 같은 수행을 통해 장소가 만들어지고 건 축물이나 매납물의 물질성에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퇴적되고 오랫동안 역사적 서사가 소환된다. 함 안 분지의 열상배치 지석묘군에는 개인적, 공동체적 경험과 기억들이 퇴적되어 왔기에 역사적 서사들 이 길게 연장되면서 현재의 물질적 흔적이 남아 있는 기념물로 해석될 수 있다.
        6,600원
        11.
        2022.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불암산성은 관련 문헌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그간 단편적인 지표조사를 바탕으로 산성 의 축조시기에 대해 단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축조주체에 대해 삼국시대 신라, 백제, 고구려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어 불암산성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혼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본 고에서는 최근까지 조사된 불암산성의 축조수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산성의 성격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불암산성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축조는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편축기법으로 쌓았으며, 방형․장방형의 화강암석재를 치석하여 바른층쌓기로 축조하였다. 일부 구간에서 기단보축이 축조되었으며, 현문식으로 축조된 남문지가 확인되었다. 이런 축조수법은 서울․ 경기 지역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산성에서 다수 확인된다. 특히 불암산성이 위치한 불암산은 양주․포천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이를 통해 방어체계를 형성하였 음을 알 수 있다. 다만 230m의 내외의 소규모 산성으로, 집수지 등의 성내 수원이 없으며, 해발고도는 낮으나 험지에 축조되어진 점 등을 종합할 때 소규모의 병력이 주변지역을 관측 하고, 상황 발생 시 남과 북의 상황을 전달하는 통신(봉수)의 역할적의 침입시 배후를 공략 할 수 있는 전략적 기지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산성내 정상부 목 곽고와 수혈 내부에서 향로 뚜껑과 훼기가 이루어진 편병 등이 수습되고 있어 군사적인 목 적의 산성으로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산성의 기능에 일부 제의기능이 추가된 것 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6,900원
        13.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about the construction of Chiseong around the Heunginjimun Gate area in the 18th century. the conclusions derived from the historical evidence of the number, location, size, and form, and construction method of Chiseong was as follows. First, the Chiseong(Square-shaped lookout) of Hanyangdoseong was built in the 29th year of King Yeongjo(1753) and can be found in the national record. Five sites of the Chiseong are currently identified. It is assumed that the Foru was installed on top of some of the Chiseongs. Second, Chiseong was destroyed sequentially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Third, Chiseong is a rectangular in shape and six are constructed. Fourth, Sixth Chiseong could figure out through Hengryeopungsokdo, the drawing of Jeong Seon.
        4,000원
        17.
        2017.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지석묘는‘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한 종류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 중 하나이 다. 지석묘의 가장 큰 특징은 분묘축조에‘거석(巨石)’을 채택한 것으로, 분묘의 외형적 형태와 외·내부구 조, 축조방식 등이 신석기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는 지석묘가 단순히 시신만을 매장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분묘자체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기념물이 되는 것이다. 즉, 분묘의 기능이 ‘단순매장’에서 ‘상징적 기념물’로 확대되는 것이다. 또한 그에 따른 축조과정이나 장송의례 과정도 ‘가족단위’에서 ‘취락단위’의 중요한 행사(축제)로 확대된다. 이러한 분묘양상의 변화는 청동기시대의 중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그 배경은 크게 농경발달로 인한 생계경제의 변화와 대규모취락의 등장, 취락간 네트워크형성, 계층화의 진전 등 사회구조적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상징성은 지석묘의 상징성과 부장품의 상징성으로 구분된다. 지석묘의 상징성은 지석묘를 ‘거석(석재)의 채용’과 ‘기념물적 분묘의 등장’이라는 관점에서 형태, 규모, 배치, 입지, 구조 등을 검토하였다. 기본적으로 주재료인 ‘돌(石)’의 견고성과 영원성을 바탕으로 ‘거석사상’과 ‘애니미즘사상’이 지석묘 상징성의 바탕이 된다. 이와 더불어 ‘상석’과‘ 묘역’은 형태, 구조, 규모를 통해 묘표석, 제단, 교통로 표지석, 농경사회의 기념물, 취락의 경계, 가매장시설 등의 다양한 상징성을 표현한다. 부장품의 상징성은 ‘내세관 및 장송의례’의 관점에서 부장품과 의례품의 관계, 부장품 종류에 따른 상징성 등을 검토하였다. 부장품은 내세를 위한 것이며, 의례품은 분묘축조나 피 장자를 떠나보내는 장송의례 과정에서 사용된다. 이들은 성격에 따라 사용되는 시점이나 기능, 용도, 형태 등이 차이가 난다. 부장품은 대부분 완형으로 피장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시신과 함께 매납된다. 의례 품은 분묘축조 과정의 안전과 피장자를 떠나보내는 슬픔, 부정방지와 정화의 의미에서 행해지며 대부분이 편으로 확인된다. 부장품의 종류는 무기류(비파형동검, 동촉, 동모, 석검, 석촉), 용기류(적색마연토기, 가지 문토기), 장신구(옥)가 중심을 이룬다. 전자는 내세에서의 안전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후자는 이를 보조하는 역할로 생각된다. 또한 부장품의 종류나 재료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위계화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계층화의 진전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6,600원
        18.
        201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Korea, the occurrence frequency of earthquakes has recently increased, compared with the past. So, the various damages for cultural properties due to earthquake can be expected, and especially fortress structure is vulnerable to earthquake. Therefore, the resonable seismic characteristics evaluation is required to secure the safety for fortress structure with the various construction and configuration types. Also, we should consider the various applied load conditions as design variables. To this end, this study classifies fortress structures according to the construction and configuration types, and then applies the discrete element method to model and analyze fortress structures. Finally, the seismic characteristics is evaluated through slip condition due to the analysis results considering the various design variables.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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