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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신라 통일기 월지(月池)의 조영은 통일의 위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왕경 도시 체계를 일신 (一新)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유적에서 출토된 3만여 점의 유물은 문헌 자료만으로는 파악 하기 어려운 신라 왕실 문화의 단면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에 이 글에서는 그간 축적된 연 구 성과를 토대로 월지에서 출토된 금동판불 10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다. 먼저 현황 분석을 통해 판불 일괄의 출토 정황, 제작기법과 구조, 조성 시기에서 유사점 을 확인하였다. 월지 발굴조사 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보고서 雁鴨池에 따르면 보살 판불 1구는 서편 1건물지, 나머지 9구는 남쪽섬과 동편 사이에서 출토되었다. 이 글에서는 발굴 당시 작성된 야장 기록을 활용하여 이 중 5구의 판불이 월지 내 R12구역에서 발견되는 정황을 확인하였다. 모든 판불은 공통적으로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투조문의 광배와 하단에 촉이 확인된다. 유물은 삼존판불 2구와 보살판불 8구로 구성되는데, 세부 조형 차이 에 따라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조형 차이가 드러나지만, 시 기 분석을 바탕으로 유물들이 동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판불의 존명을 추정하기 위해 유물과 전체적인 도상이 유사한 7~8세기 사례를 거시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 시기 전법륜인은 통인(通印) 양상이 확인되어 수인만으로 삼존판불의 존명을 확정할 수 없었다. 다만 ‘전법륜인상 양협시보살입상’의 삼존 구성은 아미타불에서 다수 확인됨을 근거로 삼존판불의 주존은 기존 인식대로 아미타불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내렸다. 보살판불은 주요 표식 없이 합장을 한 채 결가부좌하며 여러 구가 현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본존을 공양하는 일반 권속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상기한 판불 현황의 유사점을 근거로 유물이 서로 연관되었을 가능성, 도상 분석을 근거 로 아미타삼존판불을 공양하는 보살판불 권속을 상정할 수 있다. 이에 유물 일괄이 함께 특 정 조형물을 구현하였음을 전제로 봉안 양상을 새롭게 추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월지에서 함 께 출토된 금동화불에 주목하였다. 판불과 화불의 도상은 동시기 아미타정토도의 요소와 대응 하며, 동일한 판불 구성이 두 유형으로 현전하는 현상은 특정 석굴이나 불당 공간을 복수(複 數)의 아미타정토도로 장엄하는 양상과 비교되었다. 이에 판불이 화불과 함께 아미타정토를 구현하며 월지 주변 내불당 공간을 장엄하는 목적으로 일괄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간 판불의 조형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예를 찾기 어려워 원 봉안 양상은 난제로 파악 되었고, 유물은 대체로 개별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0구의 판불을 함께 바라보면 아미 타정토를 구현하며 공간을 장엄하는 당시 국제적 흐름과 맞닿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심층적인 분석과 함께 유물 간 연관관계를 고찰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왕 궁 내 불교 신앙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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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1999년 7월에 경기도 하남시의 이성산성(二聖山城)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要鼓)의 특징과 사용연대를 규명하기 위해 중국 요고의 연원과 변화양상을 심도 있게 고찰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요고 실물 중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속하는 것은 2010년 충남 연기군 나성리 유적에서 출토된 도제 요고와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 2점뿐이다. 전자는 백제(5세기 후반)의 것으로 현재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실물자료이지만 그 형태적 특징이 초기형태의 요고와 상이하기 때문에 악기로 사용된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의 제작연대에 대해 현재 고구려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는 2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목제 요고의 형태적 특징을 보면,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요고의 중간 부분이 가느다란 특징보다는 통일신라시대 감은사 사리기의 요고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성산성의 요고는 중국 북위시대(北魏: 386∼534) 에 속하는 산서(山西) 대동(大同) 운강석굴(雲岡石窟)의 요고, 하남(河 南) 공현석굴(鞏縣石窟)의 요고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의 제작연대를 고구려(475년 이후)까지 소급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형태적인 특징만으로 이성산성의 요고를 통일신 라시대의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다만 현재 고구려와 관련된 요고 실물 자료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차후 삼국시대 요고에 관한 실물 자료들이 추가적으로 발견 되어 이에 관한 논의가 심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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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10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글은 청주 부모산성과 부모산성 제 1보루, 학천산성에서 출토된 토기를 분석하여 이들 城堡의 축조 시기 및 주체, 그리고 변천상을 살펴본 글이다. 부모산성은 삼국시대 삼국의 국경지역인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거점성이다. 그리고 부모산성과 연결된 주변 능선의 봉우리에는 작은 방어시설인 보루를 갖추고 있어 本城과 堡壘가 결합된 방어체계를 띠고 있다. 부모산성 및 주변 성보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는 백제토기와 신라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외에 소수의 고구려계 토기편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토기양상은 부모산성이 위치한 청주지역이 삼국의 주요 쟁패지역이었으며, 특히 부모산성의 축조 및 경영 주체가 백제와 신라에 의해 변천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부모산성은 처음에 백제에 의해 부모산 정상을 중심으로 방어시설이 구축되어 한성기~웅진기 초까지 사용되다가 6세기 후반 신라가 청주지역에 진출하면서 신라에 의해 현재의 석축산성이 축조되어 7세기 전반까지 경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백제 사비기에 백제가 신라로부터 재 탈환하여 일정시기 동안 백제의 서쪽변경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성으로서 활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부모산성 제1보루는 백제 한성기~웅진기 초까지 木柵혹은 土壘로 이루어진 백제의 중요 關防施設로 경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부모산성이 신라에 의해 경영된 시기에는 신라에 의해 활용되다가 백제 사비기에 백제에 의해 다시 경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끝으로 학천산성은 백제 사비기 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성벽의 구조 및 축조방법이 부여나성과 유사한 점 등을 통해 볼 때 백제 사비기에 백제에 의해 축조ㆍ경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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