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wo main hypotheses that explain why invasive alien plants successfully colonize new environments are: 1) invasive alien plants are functionally different from native plants in a community, and 2) the plants can adapt well to new environments because they are functionally similar to native plants.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d the functional traits of naturalized alien herbaceous plants and their native neighbors in a riparian park area near the Hapcheon-Changyeong weir along the Nakdong River to determine which of the two hypotheses applied to the study area. According to the results, leaf functional traits, such as leaf area, specific leaf area, leaf thickness, leaf dry matter content, leaf nitrogen content, and leaf carbon content differed between naturalized alien and native plants, which could be attributed to the higher leaf nitrogen contents in naturalized alien plants than in native plants. The high leaf nitrogen contents are associated with high photosynthetic rates, which lead to effective resource use and rapid growth; therefore, naturalized alien plants growing in the study area were considered to have such functional traits. The results of the present study support the hypothesis that the successful establishment of invasive alien plants is attributed to the functional trait differences between invasive and native plants.
① 미세균열의 길이(N=230), ② 미세균열의 간격(N=150) 및 ③ 압열인장강도(N=30)를 이용하여 쥬라기의 합천화강암에서 발달된 여섯 결(R1~H2)의 특성을 분석하였다. 여섯 결에 평행한 방향으로 측정한 이 들 세 인자에 대한 18개의 누적그래프를 상호 대비하였다. 분석한 주요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9개 계급구간으로 구분한 압열인장강도값(kg/cm2)의 분포율(%)은 60~70(3.3) < 140~150(6.7) < 100~110ㆍ 110~120(10.0) < 90~100(13.3) < 80~90(16.7) < 120~130ㆍ130~140(20.0)의 순으로 증가한다. 각 계급구간의 빈도수에 따른 강도의 분포곡선은 이봉 분포를 보여 준다. 둘째, 길이, 간격 및 인장강도에 대한 그래프를 H2 < H1 < G2 < G1 < R2 < R1의 순으로 배열하였다. 간격과 길이에 대한 두 그래프 사이의 지수차(λS-λL, Δλ) 는 H2(-1.59) < H1(-0.02) < G2(0.25) < G1(0.63) < R2(1.59) < R1(1.96)(2 < 1)의 순으로 증가한다. 관련 도면으로부터, 상기한 지수차의 증가와 함께 인장강도에 대한 여섯 그래프는 점차 좌측 방향으로 이동한다. 조직의 균일도를 지시하는 인장강도에 대한 그래프의 음의 기울기(a)는 3번 결((H1+H2)/2, 0.116) < 2번 결 ((G1+G2)/2, 0.125) < 1번 결((R1+R2)/2, 0.191)의 순으로 증가한다. 셋째, 각 결(R1ㆍR2(1번 결), G1ㆍG2 (2번 결), H1ㆍH2(3번 결))을 구성하는 두 방향에 대한 그래프 사이의 배열순을 비교하였다. 길이와 간격에 대한 두 그래프의 배열순은 상호 역순이다. 간격과 인장강도에 대한 두 그래프는 배열순에서 서로 일관성이 있다. 길이와 간격에 대한 지수차(ΔλL 및 ΔλS)는 1번 결(R, -0.08) < 2번 결(G, 0.14) < 3번 결(H, 0.75) 및 3번 결(H, 0.16) < 2번 결(G, 0.23) < 1번 결(R, 0.45)의 순으로 각각 증가한다. 넷째, 미세균열의 길이, 미세 균열의 간격 및 인장강도의 분포 특성을 보여 주는 여섯 그래프에 대한 종합도를 작성하였다. 길이의 범위에 따라, 여섯 그래프는 G2 < H2 < H1 < R2 < G1 < R1(<7mm) 및 G2 < H1 < H2 < R2 < G1 < R1(≤2.38 mm)의 순을 보여 준다. 간격에 대한 여섯 그래프는 누적 빈도수 12 및 간격 0.53mm에 해당하는 지점 부근에서 병목구간을 형성하여 서로 교차한다. 다섯째, 여섯 결을 대변하는 각 파라미터의 여섯 값을 증 가 및 감소하는 순으로 배열하였다. 길이와 관련된 8개 파라미터 중에서, 총 길이(Lt) 및 그래프(≤2.38 mm)는 배열순에서 상호 부합한다. 간격과 관련된 7개 파라미터 중에서, 간격의 빈도수(N), 평균 간격(Sm) 및 그래프 (≤5 mm)는 배열순에서 상호 일관성이 있다. 배열순의 측면에서, 간격에 대한 상기 세 파라미터의 값은 그룹 E에 속하는 최대인장강도와 일관성이 있다. 표 8에서와 같이, 이들 파라미터 값의 배열순은 여섯 결 및 세 채석면에 대한 사전 인식에 유용하다.
남명학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남명학의 대중성과 실천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본고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남명의 합천 유적을 주목한 것이다. 합천지역의 주요 남명 유적은 12개소이다. 삼가면 5개소, 합천읍 2개소, 쌍책면 2개소, 가야·용주·대병면 각 1개소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삼가면은 남명의 탄생지이자 남명이 뇌룡정과 계부당을 지어놓고 강학을 하였던 곳이니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유적에는 복원된 생가처럼 유적으로 남은 곳도 있고, 이영공유애비처럼 비의 형태로 남아 있는 곳도 있으며, 함벽루처럼 문학경관으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남명 유적은 이처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남명의 합천 유적에는 남명학의 주요 부면들이 잘 드러나 있다. 탄생지에서는 위대한 학자의 등장에 대한 예감, 뇌룡정과 함벽루에서의 부동과 역동이라는 남명 자아의 역설구도, 부모 묘비에서의 과장되지 않는 효심, 황강정과 사미정에서의 진정성 있는 우정, 이영공유애비에 나타나는 관료와 백성의 이상적 관계, 「을묘사직소」에서의 비판적 현실인식 등이 그것이다. 합천지역 남명 유적에 대한 활용 방안으로는 뇌룡정에서의 神性 찾기 프로그램 개발, 합천의 내외적 연계망을 활용한 남명학 문화탐방 노선 개발, 함벽루를 중심으로 한 회통 문화의 재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로써 합천 공간을 중심으로 남명학의 핵심은 더욱 부각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글은 月川學團의 초기 성격을 살피기 위해 조목의 합천지역 교유인물과 조목에 대한 도산서원 종향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조목은 1598년 1월부터 2년 5개월 동안 합천 군수로 재임하면서 지역 학자들과 교유하였는데, 합천이 來庵 鄭仁弘의 지역적 기반이었던 만큼 정인홍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교유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조목이 尤谷齋에서 『心經講錄』을 강학하면서 이 지역에 퇴계의 학문이 전수되기도 하였다.
‘조목과 정인홍 문인들의 친연성을 월천학단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하는 문제는 월천집 판본 비교를 통해 그 대략을 확인할 수 있다. 초고에 해당하는 필사본과 1666년 간행본의 내용을 비교‧검토해 보았을 때 필사본에 수록된 합천과 관련된 기록들이 간행본에는 모두 산삭되어 있었다. 더구나 간행본에는 남명을 추모하는 내용의 「聞曺南冥訃」가 산삭되고 정인홍을 강도 높게 비판한 「偶見仁弘南冥集跋語」가 수록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간행본의 정리 과정이 정인홍과 그 문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진행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초기의 필사본은 수용의 입장에서 정리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조목 사후에 그를 도산서원에 종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啓請과 종향·배향에 대해 향촌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종향이 지연되다가 金中淸이 조정에 나아가 직접 啓請을 준비하면서 빠르게 추진되었다. 때문에 종향을 비판하는 일부 인사들은 대북파의 지원이 있었다고 의심했지만, 또한 그것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이 글에서는 대북파와 대립 없이 종향이 공론화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인홍의 문인들과 친연성을 보이는 조목의 교유활동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정리하면, 조목 사후 초기에 조목의 문집을 정리했던 문인들은 조목과 정인홍 문인들과의 친연성을 수용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종향을 추진하여 대북정권 내에서 무리 없이 공론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