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안병호에 의해 쓰여진 「오타 줄리아 전」과 후데우치 유키코(筆内幸子)가 지은 오타 줄리아의 생애(おたあジュリアの生涯)를 한국어로 번역한 오타 쥴리아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종교적 인물로 숭상받고 있는 ‘오다 쥬리아(大田 Julia, ?-?)’에 대한 글쓰기 양상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허구 ‘사이’에서 종교적 믿음을 형성하기 위해 나타나는 수사학적 전략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인물에 대한 담화 구성의 차이를 통해 형성되는 종교성에 관해 살펴본다. 두 글쓰기는 오다 쥬리아가 보이는 천주교 신앙의 모범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독자들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게 하기 위해 신앙인으로서의 자질(/존재(être)/)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것에 관한 /현상(paraître)/과 함께 서술하는 수사적 전략을 보인다. 하지만 담화 구성에 있어서 전자는 그녀를 약초 지식과 의술에 기반하여 종교적 삶을 실천한 ‘치유자’로, 후자는 박해 속에서도 일본에서 천주교 신앙을 지킨 ‘수호자’로 오다 쥬리아에 대한 서로 다른 종교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소통한다.
This study aimed to identify sub-dimensions of the authenticity and fictionality of a brand story and analyze the effects of authenticity and fictionality on customer-based brand equity. Data were obtained from a group of 213 males and females in their 20s and 30s living in Korea using an online survey institute. Results showed that the authenticity and fictionality of a brand story are composed of reality, excitement, exaggeration, fictional symbolism, influence, sincerity, relativeness, mysteriousness, and unreality. Of these, sincerity, excitement, reality, influence, and mysteriousness had significant effects on brand imagery; sincerity particularly exerted a relatively more substantial influence on brand imagery. Also, influence, mysteriousness, excitement, and relativeness impacted performance positively, and exaggeration impacted performance negatively. This indicated that a well-constructed brand story with authenticity and fictionality had a positive impact on the brand image. Excitement, mysteriousness, reality, relativeness, sincerity, and influence of a brand story had significant effects on brand judgement. In contrast, only excitement and influence positively impacted brand feelings, and unreality had a negative impact on feelings. The exciting and influential brand story impacted brand attitude. Also, brand image and attitude positively impacted sharing and purchase intention, while brand performance did not affect recommendation intention. These findings contribute to identifying a brand story’s attributes, authenticity, and fictionality and provide insights for marketers on creating brand stories to increase brand image and attitude and to build customer-based brand equity.
현재 한국학계에는 언제부터인지 소위 ‘공도정책’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조선정부가 섬을 포기하는 정책을 실시해왔던 것으로 이해되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유도해 갔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 논리를 이용하여 독도의 선점논리를 정당화해가고 있다. 이 글은 ‘공도정책’의 허구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조선전기의 武陵等處安撫使와 茂陵島巡審敬差官의 파견을 검토한 후, 조선후기 안용복 도일사건 이후 정착된 搜討制의 실체를 규명하여, 조선왕조가 전기간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가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조선초기 섬을 비워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왜구의 약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고, 그 방법으로 거주민을 육지로 불러들이는 刷出이었지만, 그 이후 섬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정책과 제도를 시행했다. 섬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416년부터 ‘武陵等處按撫使’를 파견했고, 1436년부터는 ‘巡審敬差官’을 파견했다. 그리고 조선후기에는 1694년에는 장한상으로 하여금 울릉도를 搜討하게 하고, 1697년부터는 3년에 1번, 삼척영장과 월송포만호가 번갈아 가며 수토를 정례화 했다. 이후 울릉도 수토는 흉년을 당해 정지하거나 연기하기도 했지만, 170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1800년대에 들면서 三政紊亂으로 정치기강이 해이해졌다. 수토군의 규모나 편성은 대략 80명 정도로 구성했고, 반드시 倭學譯官을 대동했으며, 4척 정도의 배가 출항했고, 格軍과 什物 등은 삼척 인근의 강릉, 양양, 평해, 울진 등 5개 마을에서 나누어 부담했다. 또한 수토군의 임무는 왜인탐색과 울릉도 지세 조사가 임무였고, 토산물의 진상이나 인삼채취도 부과되었다. 울릉도 수토제는 1881년 울릉도 개척이 본격화되고 내륙인의 울릉도 거주가 정식으로 허용되면서, 1894년까지 지속되었다.
Among the appearances of fictive motion, there are the cases which don`t have motion verbs though they present motion. And fictive motion with motion verbs can b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one for tangible objects and the other for intangible objects. As a result, fictive motion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categories, fictive motion without motion verbs, fictive motion with motion verbs for tangible objects and fictive motion with motion verbs for intangible object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arch for the cognitive mechanisms of these three different categories, After investigating them, this study will show the differences and common features of the different categories of fictive 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