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풍수 유래는 신라 말과 고려 초 시기에 걸쳐 도선이 중국의 풍수 를 한반도에 전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중국에 서 풍수가 전해지기 전에도 한반도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고유의 자생 풍수가 있었다고 한다. 경주분지 일대는 한반도 고대국가 진한(辰韓, BC 1~AD 3) 소국(小國)의 하나로 신라(新羅)의 기원이 되는 사로국(斯盧國)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이어 신라가 천년왕국을 유지하는 데에 경주의 자연 지리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 쳤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경주분지와 주변에는 풍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고대인들이 자연을 영위한 유적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 남겨진 한반도 고유의 풍수적 유산 을 살펴보면서, 중국 풍수 이전에도 풍수적 요소가 한반도 고대인의 삶에 반 영되었으며, 신라왕국의 변천,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9세기 장보고 휘하의 신라인들이 항해에 나침반과 첨저선을 이용하여 동북아 해역을 자유롭게 항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항해에 나침반이 이용된 것은 중국이 11세기이고, 유럽이 12세기이다. 게다가 우리 선조들은 평저선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 논문은 중국 주산군도에서 흑산도를 잇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서해남부 사단항로)의 이용 시점에 관하여 해양기상학적 관점에서 재검토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고대 동중국해 사단항로에 관한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뒤, 동중국해의 해황(海況)을 바람과 해류, 안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뗏목으로 동중국해를 항해함으로써 장보고 선단이 동중국해 사단항로를 이용하였음을 입증하였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분석 결과 6 7월 해황은 동중국해 사단항로의 범주 항해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도 기상 조건이 아주 유리했을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으로 가능했음을 확인하였다. 뗏목 탐사의 경우 제시된 항로도와 실제 선위간 이동경로와는 다소 상이하였고, 속력 또한 1.7 2노트 내외로 빠르게, 그것도 직선에 가깝게 이동한 것으로 분석되어 아주 이례적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명확한 사료와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동중국해 사단항로는 1068년 이후 주항로로 이용되었다는 설이 견지되어야함을 재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