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고는 성경 번역에 있어서 어린이(미성년)와 어른의 문체 차이로 인한 ‘수용성’ 여부를 연구한 것이다. ‘수용성’은 보그란드와 드레슬러가 주장한 ‘텍스트성’(textuality)의 하나이다. 어린이와 어른의 성경 문체를 비교·분석하기 위해 여덟 가지 방법으로 시행을 했는데 그에 해당하는 예로는 어린이 그룹을 네 부류(A, B, C, D)로 성인그룹을 네 부류(A-1, B-1, C-1, D-1)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각 문체에 따른 번역 결과물의 수용 여부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성경 번역의 문체 비교에서 독자들은 격식체를 선호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성경 특유의 문체를 선호한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독자의 입장에서 번역가가 번역하는 것은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이 번역학의 이론이자 보그란드와 드레슬러의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 번역의 경우 예외가 되며, 독자에 대해서 너무 고려하여 번역하면 오히려 효과적이지 못한 번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 논고의 결론이다.
본 연구는 현대 성서번역의 핵심적 인물인 유진 나이다와 윌리엄 카메론 타운트의 비교 연구를 통해 현대 성서번역의 중요성을 조사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펴고 있다. 첫째, 교회의 선교 역사에서 하나님은 각 시대별로 촉매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사용하시며, 둘째, 그들의 선교 방법론은 고정되어 있기 보다는 역동적으로 시대와 상황에 맞게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은 타운젠트는 성서 번역의 선교학적인 면에 공을 들인 반면에, 나이다는 성서 번역의 학문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서 번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들은 식민주의에서 민족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는 그 시대의 상황과 필요에 적합한 창의적인 사고와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을 통해 활성화 된다는 것을 이 연구는 말해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초기 이북지역 개신교 선교의 특징인 한국인의 ‘자생적 수용’에 존 로스의 한글 성서가 주었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존 로스는 현지 문화를 존중했던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사상이 그의 성서번역 과정에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인의 선교수용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그에게 나타나는 현지인 중심의 선교 사상과 방법은 그의 유교 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유교를 종교로서 인식하였던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로서 이해하였다. 그는 현지문화 가운데 유교문화가 전 계층에 걸쳐 매우 강했음을 인식하였고 선교의 방법에 있어서도 유교가 존중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존 로스 이전의 많은 서구 선교사들은 한국에 선교를 시도하려고 한문 기독교 문서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한문이라는 언어의 특성상 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계층은 제한되었기에 선교문서가 모든 이들에읽혀지지 못했다. 이는 모든 현지에게 선교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서의 한글번역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존 로스는 한국인과 함께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는 번역과정에서 이북지역 한국인의 이해와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서구 선교사의 입장에서 번역이 잘 되어도 현지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를 수정하였다. 이것은 당시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한문성 서에 단순히 발음만 한글로 토를 달았던 이수정 역본이 온전한 번역이 아님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번역은 단순히 글을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지인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잘 드러낸다.
이런 번역의 결과로 당시 존 로스의 한글 성서가 이수정 역본보다 수요가 더 많았으며, 이는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수요의 결과는 성서의 한글화가 주는 의미가 번역의 차원이 아니라 존 로스의 번역 사상이었던 현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선교지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중국기독교 역사 속에서 정통과 이단의 문제를 성경 God의 중문번역명에서 발생한 논쟁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명말청초의 천주교에서도 조상숭배와 공자숭배와 더불어 “전례논쟁(礼仪之争)”의 한 축으로 당시 천주교선교사들의 중국선교 현장에서 문화적응적 입장 또는 중국문화를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배척 또는 개화하려는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이 논쟁의 연장선에서 특히 개신교 중국선교 중 많은 서방선교사들이 참여한 영문저널 The Chinese Recorder 를 중심으로 이 논쟁을 전개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서방전통 또는 성서전통으로 구분되는 의식의 차이와 중국문화 특히 ‘상제’, ‘신’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의 차이, 그리고 중국종교 등에 대한 관점차이와 선교대상인 중국신도에 대한 이해, 서로 다른 선교지역 이해 등의 원인 때문에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논쟁을 전개했음을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논쟁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중문번역명의 직접적 사용자인 중국신도들의 성장을 주목하면서 전대와는 다른 새로운 입장을 찾아나가며 이를 통해 상호 이해와 일치의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분명 용어문제(Term Question)는 단순한 명사논쟁이 아니라 사상간의 실제적인 교류를 의미하는 논쟁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역명(용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파악하고 중국언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지역적 차이성 그리고 역사적 변천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한다면 충돌처럼 보일 수 있는 논쟁의 현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The Chinese Recorder 를 통해 얻은 관점은 바로 이를 실천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고집해 성서의 God을 전달할 방법이 한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전달할 수 있음을 즉 번역 속에 수많은 타협과 다원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