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연행사는 청나라 문인들과 필담을 하거나 간찰을 보냈으며, 서예 비첩을 감장(鑒藏)하거나 금석학 교류활동을 활 발히 전개하였다. 본 연구는 이계 홍양호 『이계집』과 관암 홍경모 『관암전서』·『운석외사』에 기록된 서신, 제발, 서문 등을 확인하여 청대 문인 대구형, 기윤, 섭지섭과의 서예 교류 를 주요 연구 범위로 설정하였다. 위 문집과 『동문신교척독 책』과 『두남신교첩』자료를 활용하여 저서, 비첩, 서찰 교류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홍양호와 홍경모의 학서 소양, 금석 고증 능력, 비첩 감장 원칙을 논술 및 분석하여 교류 의의를 도출하였다. 홍씨 가문은 양국 문인의 가족적인 서예 교류의 대표적 사례이자 견고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진행된 교류를 의 미한다. 양국의 문인들은 필담을 통해 고금의 서예, 금석 학술 에 대해 전면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다 층적인 문화교류는 한·중 서예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다는 점 에서 그 의의가 있다.
본 논문은 朝鮮王朝實錄을 기초 자료로 삼아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을 분류하여 정리하였고, 題畫詩및 題 跋⋅記文등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서화 교류가 문학 교류⋅우호 외교⋅ 문화 수출 분야에 담당하였던 역할을 밝혔으며, ‘朝中文化交流史’ 및 ‘東 亞藝術史’의 각도에서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우선, 15세기 朝鮮使行중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은 주로 作 畫留書⋅禮物贈受⋅請書請畫세 가지로 분류된다. 일부 書畫에 능한 명나라 사신은 朝鮮을 방문하는 동안에 서화의 재능을 펼쳐 적극적으로 서화 교류에 나서는 동시에 조선 문인과 詩文唱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서화 교류의 결과물, 즉 그림과 글씨는 詩文唱酬의 대상이 되었고 한시는 당시 서화 교류의 형태를 기록하였다. 15세기 명나라 사신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문화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서화를 선물하곤 하였다. 명나라 사신은 귀한 선물을 사양하면서 조선왕실에서 증여한 書簇⋅畫簇⋅法帖⋅書帖등 서화 선물을 흔연히 받 아드렸다는 기록도 서화 교류의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조선 서화에 대한 생기면서 명나라 사신은 조선왕실에서 적 극적으로 조선 서화를 청탁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명나라와 조선 간의 서화 교류는 보편성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詩文唱酬를 진행하는 데 참여 인원이 높은 문학적인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상황과 달리 서화 교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교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 많이 배우지 못한 명나라 內史⋅少監도 禮物贈受⋅請 書請畫의 방식을 통해 서화 교류에 많이 참여하였다. 한편, 서화 자체의 특성(휴대성, 적당한 가격, 예민한 문자가 없음 등)은 선천적인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명나라 사신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친한 조선 관원에게 서화를 선물로 하여 우호 관계를 추진하면서 서로 부담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朝⋅中문화 교류사’ 및 ‘동아시아 예술사’의 시각으로 볼 때 15세기 朝鮮使行중 발생한 서화 교류는 새로운 ‘畫題’⋅畫法을 도입 하여 15세기 조선 畫壇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16~17세기 朝⋅明간 활발한 서화 교류의 성황을 위해 토대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