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王陽明)은 중국 역사에서 제일 뛰어난 사상가, 교육가이자 정치가이며 ‘입덕(立德)’ㆍ‘입공(立功)’ㆍ‘입언(立言)’ㆍ‘진삼불후자(眞參 不朽者)’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역사에서 유(儒)ㆍ석(釋)ㆍ도(道)삼교 의 융합은 성당시기에 시작되었고 송명시기까지 이어갔다. 왕양명선생은 그의 자술에서 불교, 도교와의 인연이 깊다고 한 적이 있고 그 의 학생과 일부 역사학자들도 왕양명의 사상 형성과정이 불교ㆍ도교 와의 관계를 기록하였다. 학자들은 보편적으로 유ㆍ석ㆍ도 삼교의 융 합이 송명이학의 산생과 발전에 영향력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공식 적인 문집의 묘사에서 양명학(陽明学)의 사상발생과 학설의 발전이든 양명학의 심학을 중심으로 한 집대성자는 물론이고 모두 도가 도교 및 그 사상이 그에 대한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었다. 유도호보(儒道 互補)ㆍ삼교합류(三教合流)는 왕양명의 사상철학 분야에서 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관건적 요소이고, 이는 그의 사상과 성격에서 체현되어 있다. 그중, 왕양명의 덕육분야의 사상은 그의 심학에서 중점적으로 논술할 부분이고 이는 특정한 사회 배경에서 싹이 트고, 왕양 명의 특별한 개인 경험에서 얻은 것이며 짙은 도가사상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본 논문은 그의 교육사상을 총괄한 기초상에서 문헌과 결합하여 그의 교육사상에서 나타나는 도가가상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fine the educational philosophy of Wandang, Kim Jung Hee through his writings and arts. Wandang has been receiving much recognition as a metaphysicist, practical-scientist, writer and artist. But most of the studies on him have placed too much stress on a specific field of his work to prove his real worth on the whole. Moreover not a single research work on his educational philosophy has been found yet. If it is true that a man’s life and his ideology is the same, Wandang’s ideology could be learned through studying his life. It could be also said that his writings and works of art display his thoughts. In Chapter II, Wandang’s educational philosophy is more carefully examined. It is based on Wandang’s doctrine, ‘You can’t be a man of ability without education,’ which talks about the importance of education. And it is also based on his doctrine, ‘Education is to realize the morality of sages,’ which tells us about the purpose of education. His educational philosophy is examined through his writings about traditional Confucianism and practical-science, and his literature of poetry that he had wanted to show his feeling. It is also examined through his works of art and the theories of the art works. At this point, the ultimate purpose of education is to realize the morality of sages. To accomplish it. first of all it is needed to succeed in the literature of poetry based on the spirit of practical-science which is ‘You need to seek truth based on facts’ and also to be followed by studying constantly. It shows again that all studies and arts need to have some aroma, which comes from beautiful phrases and magical power to lead a person. Finally this study shows the thought of Wandang that good teachers and fine educational environment is necessary to bring up a man of ability. The outcome of this study is to define Wandang, Kim Jung Hee as an educator that has not been studied yet. His educational philosophy should be discussed later on. Since this is the first study of it, there might be a lot of unsatisfied things in many respects. I will make up for those unfinished ones in the further studies afterwards. The aspects of the education of Chosun ar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modern education. But it should give us a chance to examine the education of the present through the education of the past. that is the usefulness of this study, and these kinds of studies should be in progress with other figures. It would help the traditional education contribute to the present education, which could become the basis of our future education.
조세핀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姜婦人, 姜慕仁)선교사는 1897년에서 1920년까지 한국여성들을 위해 선교에 헌신했던 미국 남감리회 여성해외선교부(Woman’s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의 선교사다. 1898년 배화여자대학의 전신인 ‘배화학당’을 설립하였다. 본고는 캠벨 선교사의 교육선교사상과 교육사업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캠벨의 교육선교사상은 내한하자마자 쓴 첫 보고 서 서두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이 복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이 세상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 먼 지구의 구석진 곳에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신실한지요? 어둠속에 머물고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나는 이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의 축복이요 특권입니다.(J. P. Campbell, "Communication from Mrs. Campbell," the korea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1897), 15).
캠벨의 교육선교사상에 따른 선교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 교회를 위한 여성 지도자를 배출할 학교 설립, 또 하나는 전도사업을 통해 특히 여성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한말 일제기 기독교계 여학교는 역사·문화·전통·풍속의 기반 위에 서 있는 ‘한국적 여성’, 초월적 영성을 가진 ‘기독교적 여성’,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민족적 여성’이라는 세 가지의 주된 과제를 가지고 교육해야하는 과업을 안고 있었다. 배화의 교육을 담당했던 캠벨과 선교사들 및 교사들은 교육 과정 속에서 위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교육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캠벨의 그리스도적인 인류애를 품고 조선 땅으로 왔다. “소외된 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따라 혼신(渾身)으로 선교사라는 ‘도구’ 가 되어 조선의 여성을 끝까지 사랑하며, 대접하며 살다가 1920년 11월 12일 68세를 일기로, 사랑하는 한국 땅에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