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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의 목적은 초기 이북지역 개신교 선교의 특징인 한국인의 ‘자생적 수용’에 존 로스의 한글 성서가 주었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존 로스는 현지 문화를 존중했던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사상이 그의 성서번역 과정에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인의 선교수용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그에게 나타나는 현지인 중심의 선교 사상과 방법은 그의 유교 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유교를 종교로서 인식하였던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로서 이해하였다. 그는 현지문화 가운데 유교문화가 전 계층에 걸쳐 매우 강했음을 인식하였고 선교의 방법에 있어서도 유교가 존중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존 로스 이전의 많은 서구 선교사들은 한국에 선교를 시도하려고 한문 기독교 문서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한문이라는 언어의 특성상 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계층은 제한되었기에 선교문서가 모든 이들에읽혀지지 못했다. 이는 모든 현지에게 선교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서의 한글번역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존 로스는 한국인과 함께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는 번역과정에서 이북지역 한국인의 이해와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서구 선교사의 입장에서 번역이 잘 되어도 현지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를 수정하였다. 이것은 당시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한문성 서에 단순히 발음만 한글로 토를 달았던 이수정 역본이 온전한 번역이 아님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번역은 단순히 글을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지인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잘 드러낸다. 이런 번역의 결과로 당시 존 로스의 한글 성서가 이수정 역본보다 수요가 더 많았으며, 이는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수요의 결과는 성서의 한글화가 주는 의미가 번역의 차원이 아니라 존 로스의 번역 사상이었던 현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선교지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600원
        2.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re had been many influential protestant missionaries in the last 130 years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Protestant missionaries but there had not been one who was more influential then John Ross from Scotland. John Ross was not only a missionary in China, but he made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A publication which already existed in Korea years before the American Protestant missionaries came to Korea. It is very rare for any country to have such a missional history of this manner. Nevertheless, the fact remains that there is very minimal data about John Ross in the Korean Church history. In this paper,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the Missiological Theology is dealt with as we try to better understand John Ross. As he witnessed the emphasize of the Confucianism’s ancestral worship in China, he began to better understood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the Missiological Theology.In this paper, the life and ministry of John Ross along with his missiological attitude towards other religion and the relationship of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are dealt with. In particular, this paper deals with the efforts of John Ross as he searched for the contact point of Christianity in Confucianism and his desire to lead the contact point to Jesus Christ in his work. His method was to increase the efficiency of the witness of the Gospel.John Ross, in his 39 years of missionary work in China baptized over 4000. And through his faithful efforts his work is still evident in China today as DongGuan Church and DongBook Seminary in Shenyang, China are actively operating. Thus, there is a great significance in studying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Ross's Missiological Theology. If we obt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Ross's Missiological Theology, it will not only be beneficial to Christianity but essential in witnessing to other religions. The literature review method was used for this paper, as major writings of Ross and primary data founded was used. In addition,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John Ross and his work, Ross's home and his grave site in Scotland was visited 10 times and his main mission field, Shenyang, China 15 times.
        7,000원
        3.
        2012.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에 기고했던 재중 선교사 티모티 리차드, 존 로스, 및 D. Z. 셰필드의 글들은 19세기에 맺어진 서구열강과 중국 간의 조약들, 그 조약에 포함된 선교적 권리들, 그리고 선교사의 향후 태도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리차드는, ‘조약권리’ 중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항목들이 본국 외교부와 중국 관료들에 의해 이행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중국 신자들의 박해가 일어나고 선교에 큰 장애가 되어왔다고 간주하여, 동 권리의 이행 및 법 개정을 위한 외교부의 노력을 주장하였다. 그는 ‘신자들의 종교자유권’, ‘선교사의 내지거주권’, 그리고 박해자의 처벌을 포함하는 ‘신자 및 선교사 보호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의 주장은 선교현장에서 ‘선교의 자유’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공동체의 내적인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또한 그의 제국주의적 서구의 중국침탈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잘 보여준다. 로스는, 선교사들이 서구열강의 억압으로 쥐어짜낸 ‘조약권리’에서 나오는 선교적 권리를 포기하고, 신자들과 비신자간에 일어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사관의 권력에 의지하지 말며, 극단적인 박해사건에 개입하되 관리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우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견해는 서구 제국주의의 본질을 통찰하고 중국인들의 입장을 고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역시 텐진조약이 가져다 준 북부항구의 개방이라는 외교적 조건 안에서 기독교 선교를 수행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선교적 문제해결에서 ‘가장 덜 제국주의적인 방식’의 해결을 제안하였다. 이와 달리, 셰필드는, 기독교선교와 문명의 전파를 위하여 서구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기독교신앙과 진보정신 그리고 우월한 인종을 보유한 서구기독교국가의 선교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며 서구국가들 및 중국의 보호를 받을 만하다고 보았다. 기독교 선교의 방법으로써 말(word)과 힘(power)을 제안하는 셰필드의 견해는 매우 가부장적이며, 나아가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리차드, 로스, 그리고 셰필드는 청말의 동시대에 중국선교사로 일하였지만, 중국의 조약법 및 기독교선교를 위한 조약법의 이행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9,800원
        4.
        202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가 1900년대 초에 중국어로 출판했던 7권의 주석서를 탐구하는 이 논문은 그 주석서가 태동하게 된 역사적 배경, 서지사항에 있어서 쟁점들, 그리고 그 가운데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된 5권의 신약 주석서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1890년과 1907년에 열렸던 중국 개신교 선교사대회의 보고서, 로스 및 선정된 중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저술한 <선교사대회 성경주석>, 1800년대 말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중국어 성경 역본, 그리고 한국의 동양서원과 조선기독교서회가 1900년대 초에 출판한 한글 번역본들을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로서는, 위의 1890년 선교사대회에서 행한 알렉산더 윌리엄슨의 ‘해설 성경’ 제안이 최종적으로는 <선교사대회 성경주석>으로 귀결되었음을 밝혔다. 번역과 저술을 포함하는 로스의 주석서들은 신명(神名)의 차이를 반영한 다양한 판들로 출판되었으며, 사용된 성경 역본으로는 구약은 대표역본, 신약은 그리피스 존의 1898년판 천문리(淺文理) 역본임을 확인하였다. 한국의 동양서원은 로스가 저술한 5권의 신약 주석서를 번역 출판하였고, 조선예수 교서회는 동양서원의 유다서 주석을 추후에 새로운 맞춤법에 따라 수정하여 출판하였는데, 두 출판사 모두 주석서에서 로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 논문은 존 로스에 대한 연구가 성경 주석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더욱 확장될 수 있으며 또한 <선교사대회 성경주석>이 중국과 한국에서의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공시적 및 통시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5.
        2016.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에 의해 만주에 파송된 선교사 존 로스 (1842-1915)는 1877년부터 한글복음서를 번역하기 시작하였으며, 1882년 부터 1887년까지는 복음서와 신약성서를 최초로 발행하고 보급하기 시작 하였다. 그는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 초판(1882)에서 소위 ‘간음한 여 인 이야기’(Adulteress Pericope)로 불리는 7:53-8:11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 제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 초판 을 발행할 때에, 단순하게 기존에 번역되었던 중국어 문리역본이나 북경관 화역본, 영어 역본들, 또는 역사적인 그리스어성서 개정역본 가운데 바로 전(前)해에 옥스퍼드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발행되었던 역본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이 연구가 살펴본 문헌적 증거들은 로스가 성서 사본비평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옥스퍼드 판 그리스어성서 개 정역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내산 사본(Codex Sainaiticus)의 요한복음 본문 취급을 따랐음을 암시한다. 1881년에 발행된 옥스퍼드 판에서는 요한 복음 7:53-8:11의 소위 ‘간음한 여인 이야기’가 그 앞뒤의 꺽쇠괄호 표시와 함께 여전히 본문에 포함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고대사본들이 이 부분을 생략했음을 표시하는 각주가 첨부되어 있다. 로스는 옥스퍼드 판의 이러한 소극적인 편집을 넘어서서 해당 구절의 과감한 삭제를 감행하였다. 기왕에성서번역의 원칙으로서 그리스어 용어들을 음역하는 등 그리스어 성서원 문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는 원칙을 보여주었던 로스는 요한복음 초판에서 시내산 사본(the Codex Sinaiticus)의 본문을 따라 ‘간음한 여인 이야기’를 삭제하였으며, 이는 주해를 첨가한 옥스퍼드 판의 원판인 웨스트코트(B. F. Westcott)와 호트(F. J. A. Hort)의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1881)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삭제의 결정은 특별히 이제 복음을 향하여 ‘새로운’ 선교지인 한국을 위하여 당대 최선의 성서번 역본을 제공하겠다는 로스의 학문적 노력과 선교사적 열정의 반영이라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