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 및 그 학술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먼저 최신 발굴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시기와 성격을 살펴본 결과, 최초 대지 조성과 함께 방형계 주거 집단의 점유가 시작된 이후 원형계 집단이 등장하면서 대지 조성면을 목주열이 자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으나, 기존의 주거형을 일부 인정하여 양자를 모두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점유 기간의 공백은 없었으며, 전체 기간도 짧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송국리유적에서는 유력자 또는 유력 집단의 존재가 상정되는데, 그들은 대규모 노동력 동원, 식량 조달 및 분배에 대한 적극적 개입, 제사권 장악 등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였을 것이다. 일반 주민들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여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으며, 이와 같은 내부적 안정을 바탕으로 주변 유적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 취락으로 성장하였음이 짐작된다. 다음 송국리유적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 번째로 송국리유적의 발굴 및 보고는 송국리유형과 송국리문화를 설정케 한 기초 자료의 최초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학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최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다른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특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편이 바람직하다. 다음 두 번째로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단위 취락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를 들 수 있다. 송국리유적은 점유 기간이 청동기시대 중기라는 시간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취락 구성 원리나 해당 기간 내에서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에 양호한 자료를 제공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조사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는 측면에서의 학술적 발전 가능성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조사 기법의 발전과 더불어 앞으로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가 획득될 것이 분명한데, 이것이 다른 유적과 비교할 수 없는 송국리유적의 가장 큰 학술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국고고학에서 선사시대는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역사시대는 왕조의 변천을 중심으로 시대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선사시대에서 원사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여서 한 가지 기준만으로 시기구분 하기는 어렵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공간적 범위는 무문토기문화의 분포권이면서 비파형동검문화와 세형동검문화가 분포하는 한반도와 요동·요서지역까지이다. 필자는 이를 한국고대문화권으로 설정하였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구분은 한국고대문화권을 포괄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 한국고대문화권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기원전 20세기경부터 기원전후경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초기청동기문화, 비파형동검문화, 세형동검문화, 초기철기문화가 차례로 등장한다. 또한 고조선을 비롯한 초기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시기구분하면, 청동기시대 전기는 초기청동기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20~10세기경까지이며, 청동기시대 중기는 비파형동 검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9~8세기부터 기원전 6~5세기(요서), 또는 기원전 4세기(요동과 한반도)까지이다. 청동기시대 후기는 전국시대의 중원계 물질문화가 대거 들어오면서 요서의 십이대영 자문화가 크게 변화되고(기원전 5~4세기), 이어서 요동과 한반도에 세형동검문화가 등장하는 때(기원전 3세기 초)까지로 설정할 수 있다. 기원전 3~2세기에는 전국시대 중원계의 초기철기문화(세죽리 -연화보유형)가 들어온다. 고조선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사서에 그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4세기경부터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는 고조선을 시대 명칭으로 병기 해도 좋을 것이다. 초기철기문화가 들어오는 기원전 3~2세기에는 고조선은 물론 부여와 삼한 등의 초기국가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므로 초기국가들을 대표하는 고조선을 시대명칭으로 사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시기구분은 사실상 해당 시기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망라한다. 우리 청동기시대 전기와 중기의 구분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유물의 형태나 (수)량의 변이로부터 확보되는 고고학의 시간성과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치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종종 편년작업을 진퇴유곡의 상황에 빠뜨리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기존 분기의 결함을 극복하려는 시도에는 그런 곤란한 상황이 반영된 듯하다. 본고는 그러한 곤란을 유발시킨 우리 연구관행의 문제, 사회경제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분기를 조 정하려는 최근의 시도가 배태할 문제 등을 지적한다. 아울러, 그간 축적된 청동기시대 전-중기 전이 과정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생산적인 후속연구로 이어갈 방안을 모색해본다. 그러한 모색의 일환으로 청동기시대 전-중기 전이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방면의 변화가 지역적으로 얼마나 상이하게 나타났는지를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 청동기시대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이론적 탐색의 기초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에서는 최근 관련 유적이 다수 조사된 춘천분지 일원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유적군의 획기와 편년 체계를 구축하였다. 춘천분지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I단계는 타원형 석상위석식노지 방형 주거지·이중구연거치문토기· 사장경호·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단계는 위석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각종 돌대 문토기·이중구연토기·구순각목토기·복합문토기·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I단계는 (퇴화형 위석식노지+)수혈식노지 세장방형 중심 주거지·천발형토기·발형토기·호형토기·공열토기·적 색마연소호·무경식석촉·이단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이단병식석검·타원형어망추·제형석도·주형석 도, IV단계는 수혈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기존 토기 외 다양한 적색마연토기(발형토기, 호, 대부소 호)·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타원형어망추·이(일)단병식석검·주상편인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V단계는 전형적인 천전리식 주거지·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일체형석촉· 원통형어망추·일단병식석검·유경식석검·유구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V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방 형 중심 주거지·순수 무문토기 중심 토기·일체형석촉·일단병식석검·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VI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말각방형 주거지·점토대토기·두형토기·흑색마연토기·조합식우각형파수· 우각형파수·봉상파수·삼각만입석촉·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 의 시간적 범위는 기원전 12~11세기(I단계), 기원전 11~10세기(II단계), 기원전 9~8세기(III단계), 기원전 8~7세기(IV단계), 기원전 6~5세기(V단계), 기원전 4~3세기(VI단계), 기원전 3세기 전반~1세기 중엽(VII단 계)이다.
Owing to the energitic studies of the leading shcolars, some paradigmatic theories on the history of Korean dwellings have been suggested. They constructed periodization of their own and defined characteristics of each period with very limited historical materials. However the new historical materials have been discovered in the neighboring academic fields, which require to review the existing theories. This study aims at restructuring periodiza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dwellings during the age of The prehistory and The ancient Kingdomes. Through the study, the existing theories on the same period are revived and evaluated based on the new materials. I suggest a new theory on the periodiza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period: a. the paleolithic period(6,000,000 B.P.-10,000 B.P.) : natural shelter, the emergence of man-made dwellings b. the neolithic period(10,000 B.P.-1,000 B.C.) : construction of pit house c. the bronze period(1,000 B.C.- 300 B.C.) : construction of semi-pit house d. the early metalic period(300 B.C. - 300 AD.) : construction of house on the ground level development of the Ondol system e. the ancient kingdomes period(300 AD - 700 AD): classification of housing ty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