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a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is mainly called “Sea of Japan”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Concerning this, two Koreas have raised complaint under the rationale of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the international norms. The complaint of the Korean people concerning the naming issue most deeply lies in the fact that the name “Sea of Japan” which is “favorable” to Japan has been used as the (sole) official international name, whereas the name “East Sea” which is “favorable” to Korea has not been adopted even as the second official international name, regardless of its exact historical background. In the naming dispute like this, the best solution is to create a neutral single name through negotiations by the countries concerned. In case the countries concerned fail to create a neutral single name, the second-best solution is to use multiple names. From this kind of viewpoint, concerning the naming dispute, this article requests three countries, Japa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to negotiate to create a neutral single name.
우리나라에서 동해(東海)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인 고구려 동명왕 건국기사에서 비롯된다. 이때가 B.C. 59년으로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이 건국되기 이전인 B.C. 5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2,000 여 년간 사용해 온 매우 오래된 바다 명칭이다. 동해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는가를 말해주는 다른 사례를 찾아보면 고구려의 장수왕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5세기에 세운 광개토 대왕비를 들 수 있다. 이 비문 중 제3면에 능을 지키기 위하여 동해 해변가에 사는 주민 3명을 차출한다고 적혀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동해 바다 명칭은 현존하는 금석문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언제, 어떻게, 어떤 금석문에 표기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는 현존하는 금석문은 수천 종인데, 그 중에 동해 명칭이 표기된 금석문은 122종이다. 이 중에도 공개를 꺼리는 금석문이 있으므로 공개 열람이 가능한 비문은 43종이다. 시대별로 살펴 본 동해 명칭 금석문 5세기에 제작된 광개토대 왕릉비가 있다. 8세기에는 4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고, 9세기에도 3종, 10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명칭을 볼 수 있다. 14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6세기에는 2종의 금석문이, 17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8세기에는 7종의 금석문이 19세기에도 7종의 금석문이 20세기에도 1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43종의 금석문을 형태별로 분류하면 사람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왕릉비가 3종, 왕자비가 1종, 장군비가 2종, 문신비가 11종, 승려비가 8종 등으로 도합 25종인데 금석문의 반을 차지한다. 불교에 관한 금석문 중에는 범종기가 1종인데 성덕대왕신종기 기문이 있으며, 불상을 만들면서 적은 금석문인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 기문과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입상 기문이 있다. 사원 건축 내력을 적은 백련사 석비, 광법사 사적비, 신흥사 사적비, 숭복사비 등이 있다. 금석문 중에는 성을 건축하고 그 내력을 적은 금석문도 있는데 영변 철옹성의 축성비에서 동해 명칭을 찾을 수 있다. 이외에도 전쟁에서 승전한 사실을 적고 있는 비문도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승전을 기록한 조조암실기와 삼충사묘정비가 있다. 동해 바다는 우리민족의 숭배 대상으로 고려 시대부터 동해신을 모신 사당을 짓고 국가에서 제사 지냈다. 양양에는 지금도 동해 신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그 곳에 동해 용왕을 모신 동해 용왕 묘비가 있고, 삼척에는 동해 바다를 찬양하는 동해비가 현존한다. 동해는 우리민족과 매우 밀접하고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바다였으므로 많은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UNCSGN 및 IHO의 결의에 따라 East Sea와 Sea of Japan을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IHO의 결의에 대해서 “이 결의는 만 또는 해협 등이 2개 이상의 국가주권 하에 있는 지형을 상정한 것으로, 일본해와 같은 공해에 적용된 사례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고는 ‘일본해’의 명칭이 공해로서의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바다(영해)’로서의 의미를 갖고, 일본의 대외팽창에 따라 영해로서의 ‘일본해’가 확장되었음을 1903년 일본의 육해측량부에서 편찬한 「일로청한명세신도」를 갖고 입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동해의 명칭이 ‘동해/일본해’로 병기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현재 일본에서 일본해라는 지명은 16세기 이래 서양인 선교사와 탐험가들이 일본에 관한 지리적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지명이 서양에서 일본에 수입되어 정착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시베리아철도 부설, 러일전쟁 등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동해라는 지명은 1910년에 완전히 소멸되고, 식민지 한국에서도 일본해라는 지명이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 지명에 대해서 서양인들에 의해 생성되고, 세계에 확산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이름을 일본해로부터 동해로 복원하기 위하여 최근 개발된 다양한 논리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 중에서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 논리를 강화하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향후 연구과 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동해/일본해 논의의 새로운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여섯 가지 연구과제가 제안된다. 동해와 일본해에 대한 각국 문화에서의 인식과 사용, 근대사회에서 일본해 명칭의 확산과정, 역사적 배경의 특성에 따른 세계 바다이름 분석, 동해 명칭과 연결된 외래지명과 토착지명 논의의 발전, 명칭 병기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자지도의 사용방안, 그리고 정치문화에 관한 정치학적, 심리학적 연구의 도입방안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