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점토대토기문화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중국 요령지역으로부터 유입된 문화로 유구와 유물에서 재지의 송국리문화와는 이질적이고 단절된 문화상을 보인다. 그러나 점토대토기문화 에서 확인되는 석기를 송국리문화의 석기군과 비교하면 유사점과 차이점을 모두 보이고 있어‘점토대 토기문화의 석기’에 대한 정체성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다. 본고는 점토대토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전반을 검토하고, 재지문화인 송국리문화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점토대토기문화 석기의 범주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는 송국리문화 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종의 출현은 확인되지 않지만, 새로운 형식의 출현은 확인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로 설정하였다. 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상은 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Ⅰ유형은 자체적으로 고안한 형식으로, 무경 식석검, 삼각형석촉, 소형 편평양인석부, 단면 장방형의 석제 방추차 등이 있다. Ⅱ유형은 재지문화의 석기를 독창적으로 변형한 형식으로 구하부 직선의 유구석부, 편평유경촉 등이 있다. Ⅲ유형은 재지 문화의 석기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합인석부, 편평편인석부, 구하부 사선의 유구석부 등이 있다. 이 세 유형은 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발현된 석기상으로 이를 통해 당시 환경에 적응ㆍ정착하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석기상으로 볼 때, 점토대토기문화는 수렵에 비중을 둔 사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당대는 축적된 연유기술을 바탕으로 화려한 삼채도기 문화를 꽃피운 시기였다. 당대의 연유도기는 이전의 단색 연유기술과 달리 다양한 색상의 구현이 가능했으며, 세 가지 색 이상을 혼용하기도 하여 시각적인 화려함이 극대화되었다. 소위 당삼채라는 당대의 대표적 연유도기는 7세기 중반 盛唐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주로 부장품인 明器로 활용되었으나 출토 상황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당대의 연유도기는 화북 및 화남 등 여러 窯場에서 생산되었으며, 중국 내 소비와 함 께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로까지 널리 수출되어 활발한 소비가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 당대의 주력 생산품이었던 당대 연유도기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출에 관한 그간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관련 논제들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간 동아 시아에 비해 덜 주목되었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의 출토 사례를 중심으로 해외 전파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몇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먼저 여러 발굴 성과를 토대로 살펴보면, 당대 厚葬문화 덕에 初唐부터 이미 삼채 도용이 대규모로 생산되었고, 이는 황족묘나 고관대작 분묘 출토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 섬서 서안의 中堡村이나 하남성의 張思忠夫婦墓 등의 출토 예를 통해, 無官職이거나 중상급의 평민계층 사이까지 폭넓게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어 이는 당대의 전형적 부장문 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8세기 중엽 안녹산의 난(755~763) 이후, 화려한 당삼채의 생산이 종식되고 대 신 백유녹채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는 성당기의 삼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채유 도기로 성당시기 당삼채는 부장용 명기의 성격이 강했으나, 9세기 백유녹채도기는 실용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백유녹채도기의 제작을 촉구한 역사적 배경은 바로 8세기 후반 이후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진 서아시아, 즉 이슬람제국과의 교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9세기 폭발 적으로 증가한 이슬람과의 도자무역은 결과적으로 이슬람 시장과 영향력에 대한 당나라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는 단순히 동방의 연유 도기가 이슬람권에 수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권의 기호를 중국 측이 수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북한강유역에 분포하는 공방에서의 석기 생산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공방의 물질적 지표로는 공방 내에 남겨진 내부시설과 생산흔적을 비롯해 돌감과 부산물, 제작도구, 각종 (미)완 성 석기류, 실패품, 토기류 등의 출토유물들이 있다. 지표분석을 통해 공방은 석기 생산을 주목적으로 한 별도의 생산 전용공간이며, 내부에서는 타격과 고타, 마연기술을 이용해「정형(1단계)-세부표현(2단계)-마무리(3단계)」의 보편적인 생산과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분석과정에서 드러난 생산방식상의 특징과 공방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기별로 공방에서 생산된 석기의 종류와 점유율 변화는 기본적으로 해당 시기의 수요 충족에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미완성 석기에 비해 완성석기의 점유율 격차가 큰 석부류는 생산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실패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특정 기종만을 생산하거나 생산과정 중 일부 기법(술) 이나 과정만을 담당한 특수한 공방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둘째, 공방에서 생산된 석기류 중에는 재사용 또는 재활용된 석기류가 많고, 완성 석기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하는 석부류는 생산에 실패한 개체들이 많다. 공방 내에서 생산된 석기의 교환(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교환(역)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산기술과 생산량 확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체수요를 주목적으로 석기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셋째, 공방은 파손된 도구를 보수해 재사용(reuse)하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품과 폐기된 토기류 등을 재가공해 다른 용도의 도구로 재활용(recycling)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자원의 희소성을 극복하면서도 생산에 투입된 노동력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한 효율적인 생산방식이다. 종합하면 북한강유역에 분포하는 공방은 공방이 속한 주거군집과 취락단위의 수요를 주목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새로운 석기의 생산과 더불어 보수와 재활용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된 공간이다.
미사리유형은 판석부위석식노지에 돌대문토기를 공반하는 청동기시대 문화유형으로 2000년대 초반 조 기의 설정과 관련유적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학계에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미사리 유형 연구는 주거형태, 돌대문토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본고에서는 공반하는 석기를 주 연구대상을 삼았다. 먼저 남한지역 전체 미사리유형 유적을 5개 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지금까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석기연구에 유의미한 속성을 기준으로 형식을 구분한 뒤 단계별 주요 형식을 살펴보았다. 1단계는 편평밑 과 만입도가 크지 않은 둥근밑의 형태를 가지는 무경촉, 장방형의 유공양인석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2단 계는 유병식석검, 유경촉, 무공양인석도가 확인되는데, 석도는 전 단계에 장방형이 주를 이루던 것에 비해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이 단계부터 특징적으로 편평양인석부가 나타나며 부리형석기도 관찰된다. 3단 계는 만입도가 크고 세장한 무경촉이 확인되며 유경촉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석도는 무공양인석 도가 소멸하며 유공편인석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편평양인석부는 전단계보다 개체수는 감소하지만 형태 적으로 종단면상 신부와 인부가 이루는 각이 뚜렷해진다. 다음으로 미사리유형 유적이 하안 충적대지에서 소규모로 확인되는바 각 지역의 수계를 기준으로 지역 성을 살펴보았다. 한강본류는 편평밑과 만입도가 크지 않은 둥근밑이 다수를 차지하며, 양인석도만이 확 인된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무공양인석도가 한강본류보다 다소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데, 이는 무공양인석 도가 영서지역의 지역적 특색이 강한 유물임을 보여준다. 금강유역은 이단경촉의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 해 높은 편인데, 이는 미사리유형이 일찍부터 가락동유형과 병존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낙동강유역은 부리형석기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부리형석기는 남한강유역에서도 소수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을 통한 전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미사리유형의 석기는 무경촉과 양인석도가 주를 이루며 이후 편평양인석부가 추가되어 시 ․ 공간적 변화를 통해 전파와 확산과정을 거치면서 각 지역의 재지문화와 병존․흡수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고는 북한강유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와 석기제작시스템에 관한 연구이다.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돌대문토기문화, 가락동유형문화, 역삼동유형문화, 각형토기문화 등 다양한
문화요소를 받아들인 전기의 문화는 역삼동유형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성이 강한 중기의 문화
로 전개되며 후기에 이르러 주거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점토대토기문화와도 접촉한다. 전기 중·후
엽 역삼동유형의 주거지의 내부구조가 노지중심의 구조에서 작업공간이 분리되면서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되고 취락내에서는 공방지가 성행하게 된다. 즉, 중기에는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된 주거지와 함께
공방지의 수적 증가가 관찰되고 후기에는 규모가 대폭 축소된 방형주거지가 출현하며 공방지 또한 지
속된다. 이러한 전개과정 속에서 주거지의 내부구조변화와 공방지의 출현이 석기의 제작과 밀접한 관
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접한 석재 산지로부터 조달된 석재의 보관·선별·분할·분배는 공방지에
서 공동작업을 통해, 분배된 석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석기의 세부제작공정은 개별주거지에서 행
해지는 병행적인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은
건축기술의 차원에서의 주거구조의 변화와 취락내 독립적인 공방지 출현과 관련이 깊으며, 전문생산
체계로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로서 농경 위주보다는 다양한 생계활동을 기반으로 삼아 계급사회로 이
행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