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he” in the structure of “V1 zhe V2” in the Chinese translation of Qingwen Zhiyao is a counter translation of the Manchu adverb affix “- me” “- fi” “- hai, - hei, - hoi”. There are some special uses of this structure in Chinese translation, such as the combination of the tentative state and the continuous marker “zhe”, and the non continuous verb enters the “V1 zhe V2” structure as V1. The reason is that it is influenced by Manchu. The interference characteristics of Manchu language are weakened in the adaptation of Qingwen Zhiyao. By investigating the literature of the Qing Dynasty, it is found that the usage influenced by Manchu such as “Xiang zhe qiao” and “Zhuo liang zhe” once entered Chinese in the Qing Dynasty, and disappeared in modern Chinese with the decline of Manchu. The Chinese version has traces of Southern Mandarin, and the adapted version reflects the characteristics of Beijing Mandarin. The principle of iconicity has different constraints on the word order of verb conjunction in Manchu and Chinese. The text adaptation follows the law of sentence pattern development and reflects the prescriptive direction of Chinese sentence pattern development. Language contact affects the development of relevant sentence patterns to a certain extent, but it is ultimately restricted by the law of Chinese itself.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간예술작품에서 구현하는 것은 겉면에 표출된 화려한 표상할 뿐만 아니라 그 내면을 탐구하는 것, 더욱 이런 예술 풍격을 단조해 낸 불굴의 민족의식과 정감이다. 예로부터 사회의 발전과 계급 분화로 원시 예술의 변천을 거쳐 분리되어 형성된 문인예술, 궁정예술, 종교예술, 민간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다른 관념을 기반으로 한 예술 문화 종류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갈등하고 또 끊임없이 서로 연계하며 기반으로 하고 모순, 연계와 융합에서 하나의 완전한 민족 문화를 육성하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간예술문화에서의 순수한 예술 신념은 여전히 줄곧 이른바 고상하고 우아한 예술 문화에 대해 확고한 기초적 역할을 하고있다. 수암만족 민간 전지(剪紙)는 동북 백산흑수사이에 만족 노동 인민이 창조한 역사적 예술 문화의 완벽한 결정체일 뿐만아니라 또한 수암의 전통적 만족 민간 예술 특유한 민족 예술문화 표식이고 동북 지역의 만족 의향 및 옥도 특색의 전통 민간예술의 걸출한 대표이다. 이것은 동북 만족 인민의 지혜의 예술을 포함하고 있으며 중요한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요한 예술적 가치와 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전통문화의 결정체이자 화하문명의 보물이다.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문화브랜드로 된 민간 전지예술이 점차 문화의 수요품으로 되고 있다. 특유의 가치와 방식으로 문화가 널리 전파되는 또 다른 경로로 되고 있다. 그러나 북방 만족 전지를 놓고 말할 때 기나긴 과정에서 아주 많은 문제도 나타났다. 이를테면 제작 형식과 예술 풍격의 혼동, 관련 문화자료내용의 귀납 정리와 발전 전승 등이다. 본 논문은 북방 만족 문화의 대표 특징을 지닌 수암만족 전지를 연구 대상으로 지역 역사, 문화 신앙 등등 방면에 대해 중국 북방 만족 종이 오림이 형성된 근원성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이와 동시에 종이 오림 작품이 드러낸 예술 상태에 있어서 다른 지역의 동류 작품들과 전체적 및 개별적 비교를 하여 예술풍격상의 지역문화 차이를 분명히했다. 또 현재를 결부시켜 전지 예술이 사람들에게 대한 의의를 서술하고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고 전승할 것을 호소했다.
복장은 한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고 개인의 심미적 수준 및 내재적 수양을 직관적으로 체현한다. 한 민족에게 이는 민족의 문화와 풍속 더 나아가 한 민족의 사상과 심미를 체현한다. 이는 일종 특수한 언어이고 매 역사 시기의 경제적 발전, 생활 환경, 종교적 신앙을 체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각 민족의 복장 특징에는 각 민족의 문화 형태가 들어있다. 중국 복장은 5,000년의 발전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 중 만족 복장 중의 치파오는 중국 복장 발전 역사 중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을 뿐더러 그 속에 숨겨진 의미도 있다. 치파오의 정신에는 민족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민족의 신앙은 치파오가 수수께끼가 가득한 매력을 지니게 하였다. 어떠한 사회 혹은 민족이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 자체 혹은 기타 문화와 서로 접촉하여 생긴 문화적 융합과 변화이다. 치파오는 샤먼 복장 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족 문화를 경험하고 또 치파오의 시대까지 오게 되었다. 복장 제도의 제한이든 민족 문화의 영향이든 치파오의 색채와 도안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생활 형태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였다. 치파오는 중국 전통적인 복장 문화의 중요한 조성 부분으로서 치파오 중의 요소는 역사적 문명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민족 특색 또한 보류하였고 참고, 전통, 재창조를 통하여 더욱 잘 융합시켰다. 치파오의 발전과 변화는 민족 복장 사이의 상호 반응에 유력한 작용을 하였다. 치파오의 요소는 이미 세계 복장 문화 속에서 풍부한 시대와 문화적 특징을 체현하였고 현대 복장 디자이너들에게 수많은 영감과 창작 원천을 제공하였다. 이후 치파오는 중국에서만 입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적으로도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현대에 수많은 예복의 양식 또 한 중국 치파오의 스타일 및 꽃무늬 도안을 참고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복장은 현대 디자이너의 눈에는 기타 용도가 있을 것이고 그들의 창작 중 전통적인 ‘중국식 요소’는 새로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 이는 중국 전통적인 민족 복장이 세상에 가져다 준 서프라이즈와 마찬가지이다.
본 논문은 청대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 특징을 파악해 보기 위 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만주족이 문자를 가지게 된 것은 1599년의 老滿文과 1632년의 新滿文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주족은 정권 초기부터 한족 문화와 제도를 적극 수용하였고, 그로 인 해 한문 서적의 만주어 번역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文館으로부터 內三院, 內閣 기구에는 滿 文 번역 부서가 마련되어 있었고, 內翻書房과 같은 전문번역기구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科擧 에는 飜譯科가 신설되었고, 啓心郞, 筆帖式과 같은 통번역 업무를 전담하는 관료 계층도 생겨 났다. 國子監과 八旗 교육기관에서는 만주어문 교과과정이 개설되어 만주어 학습을 장려하였 고, 만문을 사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힘썼다. 청대 만주어 번역 소설의 출현은 이런 독특 한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만문 도서는 크게 抄本과 刻本으로 구분되며, 각본은 官刻本과 坊刻本으로 나뉜다. 청대에 나온 만문 도서는 수도 北京의 황실 중심의 관각본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에 지방 관서의 각본은 주로 만주어문 학습에 필요한 교과서나 공구서가 중심으로, 지극히 작은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상업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만문 坊刻本 역시 北京에 집 중되어 있었다. 방각본 만문 도서는 대부분 만한합벽이고 순수 만문으로만 된 것은 극소수이 다. 당시 書坊들에게 만문 도서의 간행은 주력 사업이 아닌 부차적인 아이템이었다. 내용적으로 四書 등과 같은 유가경전, 사전류, 만주어문 학습서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고, 『삼국연의』, 『요재지이』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은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필자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존하는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은 대략 48종이다. 이 가운데 90% 정도는 만문으로만 번역되어 있고, 10%는 만문과 한문이 병렬되어 있는 滿 漢合璧으로 되어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연의류 소설과 재자가인류 소설이 거의 80% 정도 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대기서’는 만주족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로, 『삼국연의』는 多爾袞의 명으로 순치7년(1650)에 간행되었고, 사대기서 나머지 작품들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강희 연간에 만문으로 번역되어 각본, 혹은 초본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 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청대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의 규모와 유통 범위는 크지 않았고, 주 로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만문 식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 식 자층은 대부분 ‘旗人’에 속해 있던 사람들로 만주족을 비롯하여 일부 몽고족, 한족 등 만주어 문화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역본 소설은 만주어 문화권에 속해 있던 蒙古族, 錫伯族, 達斡爾族 등 북방 소수민족들을 비롯하여 글자를 알지 못하던 훨씬 더 많은 만주족들에게 ‘烏勒本(ulabun)’과 같은 說唱 예술의 형태로 전파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