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는 전쟁이라는 역사의 폭력 앞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다루면서,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신 목사를 통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교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새로운 신앙의 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신 목사를 통해 침묵하는 신을 대신해서 불가사의한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에 기초한 윤리적 휴머니즘이야말로 곧 희망의 복음이라는 메시지를 역설하고 있다. 순교자가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견인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는 실존신학의 입장을 드러냈다면 침묵의 경우는 비록 실존신학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신의 침묵 뒤에서 신의 응답을 듣게 되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신앙을 구현해 냈다고 볼 수 있다. 신부는 성화판을 밟는 이율배반적인 사랑의 행위를 치르면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고난을 대리 경험하고 신의 현존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고통 속에서 참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듯이 로드리고 신부 역시 성육신한 구속주 예수를 성화판 사건을 통해 만나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탈바꿈에 이른 역동적 신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특징인 박해자의 ‘무지’와 폭력의 ‘맹목성’을 폭로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평양에서 목사들이 실종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장 대령’의 거짓말은, 지라르가 언급한 ‘첫사람의 돌 던지기’와 유사하다.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을 유도하는 박해자 ‘장대령’을 통해 김은국은 희생양 메커니즘의 본질인 폭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품의 중반부에서부터 서사는 “박해자에게서 희생양에게로, 그 사건을 만든 자에게서 그것을 참고 견딘 자에게로” 초점을 옮겨, 이 작품을 희생양의 텍스트로 만든다. 김은국의 영적 통찰력은 희생양 신 목사의 고뇌하는 내면, ‘신의 침묵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희생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처절한 절망 가운데서 ‘신 목사’는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라는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신의 개입’이다. 무력하고 병든 모습으로,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을 중단시키려는 ‘신 목사’라는 캐릭터는 김은국의 종교적 투시력을 높이 평가할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