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분묘는 지석묘로 대표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그 외 청동기시대 분묘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지상에 노출되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지석묘의 표지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다른 형태의 분묘는 지하에 위치하여 발굴조사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인지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영산강유역 지석묘는 전기부터 축조되며, 주로 석곽형 구조를 보이지만 최근 석관묘와 유사한 석관형 구조가 많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영산강유역에서 지석묘 하부구조로 석관형 구조가 축조되기 시작한 것은 송국리문화가 유입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영산강유역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여러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는데 중기에는 금강ㆍ 만경강유역의 송국리문화가 호남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영산강유역도 송국리문화의 중심분포권에 포함된다. 분묘 또한 송국리형묘제인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가 축조되기 시작하지만 지석묘에 비해 활발하게 축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중기의 문화상은 주거지는 송국리문화, 분묘는 지석묘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지석묘의 경우 상징성이 강한 上石은 큰 변화없이 유지되면서 하부구조는 송국리문화의 영향으로 石棺이 적극적으로 채용되기 시작한다. 영산강유역은 지석묘라는 전통 묘제를 기반으로 상당한 결속력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영산강유역 지석묘사회라는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된 이후까지도 한동안 지속되는데 이후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적 지석묘사회는 쇠퇴하고 옹관묘라는 새로운 매장관습을 받아 들여 영산강유역만의 독특한 옹관고분사회로 발전하는 배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