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어릿광대들』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오랜 갈등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과 테러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파괴된 개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본 글에서는 트레버가 상상하는 아일랜드에 대한 은유적 공간이자 소설의 주 무대인 한 공간이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괴됨에 따라, 그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 되었던 등장인물과 그들이 전하는 가족서사 또한 와해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화될 수 없는 아일랜드 테러와 폭력에 대해 트레버가 보여주는 비판과 비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인적자본론에서 소득이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인을 파악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과제이다. 대체로 소득과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는 학력, 직업, 유산, 교육 등의 변수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한 변수로서 기존 연구의 변수들과 아울러 명리학의 재물운을 변수로 선택하여 명리학의 재물운이 실제 개인의 소득과 재산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실증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개인소득에 대해서는 연령은 (-)의 영향을, 소득년수, 학력은 (+) 의 영향을, 직업별로는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임금근로자, 노무직의 순서로 나타났다. 그리고 개인의 총재산에 대해서는 선택한 변수 모두 (+)의 영향 을 나타냄으로써 기존의 연구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 선택한 명리학의 재물운이라는 변수는 개인의 소득과 재산형성에 대해 신왕 재왕 > 신약재왕 > 신왕재약 > 신약재약의 순서로 정(+)의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음이 나타났다. 그리고 재물운 만큼이나 학력과 직업도 소득이나 재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선천적인 재물운 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의 변화와 인문학의 대응 그리고 문화의 창달 등등은 상 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오늘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거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숱한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현재 적인 결단과 실천을 내려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전 통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전승되어 왔던 많은 가치와 의미들 또 한 지켜나가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곧 전승하는 가운데 창발 하고, 창달하는 가운데 전승해야 하는 것이다. 인식하는 존재 요,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무작정 인생을 살아갈 수만은 없다. 적어도 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이해는 있어 야 하기 때문이다. 실존철학은 인간 삶의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인간의 존재양식은 다만 실존적인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결단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최종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 은 결국 죽음일 뿐이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정신과 육체라 는 이중적 조건을 지닌,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생사라는 과제와 만나 스스로의 최선을 다한 ‘인위의 총체’로써 문화는 등장한다. 결국 문화란 삶에 기반을 둔 생활의 지혜로 기능하 며, 이는 궁극적으로 생사에 관계하고 있다. 인간 생사와 더불어 명리를 본다. 명리란 결국 사람의 命에 어떤 이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學이 아닌 術 로 변질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홀대받아야만 할 이유는 사실상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인간의 삶과 죽음이 결국 운명적인 것이라 한다면, 이에 대 해 다른 학문들 역시 별다른 대응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사에 대한 대응능력은 명리가 더 유능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다. 또 이 모든 形下의 세상은 본질적으로 形上의 근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전통적인 철학적 형이상학이 있다. 때론 神이라 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러한 원리의 궁극적인 자리에 대 해, 道家와 易에서는 無極과 太極을 말한다. 곧, 태극음양의 원 리를 현상 속에 반영한 象數學적 결론으로, 명리라 부르는 일 련의 推命學적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오늘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마음의 평안과 미래에 대 한 꿈을 명리의 세계가 제공할 수 있다면, 이의 가치는 보다 새롭게 문화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원히 굳세고 강하지 못함으로 잘 나갈 때 어려움을 대비하는 것이요, 못 나 갈 때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약하고 못난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命理가 말하는 인간 평등과 자유의지의 인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도리어 ‘희망의 철학’이라 부르고 있 다.
My Own Fortune is a popular folktale which is widely observed and documente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before the division. The tale continues to be told from generations to generations in South Korea. A resembling tale can be found in The Collection of Chosun Folktales under the title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This tale’s format very closely resembles that of My Own Fortune, hence making it a valuable material when comparing tales in South and North Korea. My Own Fortune and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both begin with a very similar narrative. The father in both tales asks a question “On whose fortune do you live well?” wishing to confirm that his daughters love him and respect his authority as the leader of the family. The two stories begin to differ as his third and the youngest daughter in each story answers his question identically but with different intentions. From this point in the story the two tales diverge. My Own Fortune is a story of an independent woman standing alone from her parents and building her own success, whereas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is about a very filial woman achieving her dream when her father eventually acknowledges her love of the Parent. North Korea’s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focus on the value of family and offspring’s filial duty. In contrast, My Own Fortune depicts an independent woman. Despite the difference, the two tales follow same story format, as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adopted the format of My Own Fortune, which is one of the traditional folk tale formats in Korea. North Korea regime probably did adopt the format of My Own Fortune for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because inhabitants in the Korean Peninsula have long enjoyed the stories of the like of My Own Fortune. For the regime to utilize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as means to reform people, the regime would probably have thought that adopting popular and widely accepted stories would be more beneficial. It is probable that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is derived from My Own Fortune, the story generally enjoyed by Koreans before the division. Findings of common folktales culture in South and North Korea, despite the two nations' long separation, suggest that literary communication between the countries, based on common grounds, is possible. But for such communication to happen, understanding of both the common and the different must be preceded. Communication can be defined as the steps of admitting and attempting to underst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parties. It is because changeability of the relationship based on differences may be the most accurate solution to soften current relationship of two Koreas which is solidifying its exclusivity and hostility. The author wishes that his analysis of My Own Fortune and Father and the Three Daughters to be a humble work to contribute to such communication that embraces both the common and the diffe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