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이후, 선교의 주체를 교회에서 하나님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등 선교신학의 큰 변화가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매우 다양하다. 선교의 실천 영역의 변화 중 하나는 선교사 자원의 변화였다. 1980년대를 지나며 서구 선교사의 퇴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세계 교회는 넉넉한 자원을 가진 교회만 타문화권 선교를 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져있다. 이것은 고도 근시의 시력으로 선교 역사를 보기 때문에 발생했다. 한편, 영국 특수 침례교회 의 타문화권 선교의 시작은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핍박과 냉대를 받는 교회, 작고 가난한 교회, 왜곡되고 균형을 잃은 신학을 가졌던 교회,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졌던 교회, 선교지를 잘 모르는 교회도 선교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단, 건전한 신앙과 신학으로 영적 갱신을 이루고, 지역 교회들이 연합하여 힘을 모은다면, 중동 이슬람권이나 부탄과 북한처럼 폐쇄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교회들은 타문화권 선교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the future policy direction in terms of sustainability through the diagnosis of trends related to the domestic and foreign agricultural development cooperation between Korea and Myanmar, considering the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 of Myanmar, such as military coup and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 Agriculture accounts for the third largest share of Myanmar's entire industry, after the service industry and manufacturing industry. In fact, agriculture accounts for more than 22% of the Gross Domestic Product (GDP) in Myanmar, and the agriculture industry employs 68% of the total labor population, making agriculture one of the national infrastructure industries representing Myanmar. However, sluggish production structure and sluggish agricultural modernization have hindered the competitiveness of Myanmar's agricultural development projects. In this study, the following directions were derived based on the existing policy trends and current status from the perspective of cooperation in agricultural development projects between Korea and Myanmar: First, it is necessary to take into account the long-term policies and strategies that fully consider Myanmar's internal and external conditions. Second, technical discussions follow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need to be performed not only at the government level, but also at the private level. Finally, the impact of political instability in Myanmar requires continuous diplomatic monitoring, research on agricultural technology transfer, and establishment of cooperative governance with universities.
이 연구는 한국 교회의 1세대 선교학자들 중에 이광순 교수에 대한 연구이다. 전재옥, 전호진, 강승삼, 이태웅 등과 더불어 이광순 교수는 한국 선교학자의 1세대에 속한다. 그는 1986년 풀러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장신대에서 가르쳤으며 많은 예장 통합 선교사 훈련에 참여했다. 이 연구는 이광순 박사의 선교학과 예장 통합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에 대한 공헌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것을 위해 본인은 이 박사의 연구논문들과 저서들과 박사 학위 논문을 참고했다. 본인은 우선 그 이전의 두 명의 장신대 선교 관련 교수들에 대해 간략히 고찰한 뒤에 그의 생애와 사역을 정리했다. 그 뒤에 본인은 그의 연구 주제들을 여섯 개의 주제와 몇 개의 작은 주제들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이광순 박사의 사역에 대해 논의했다. 이광순 박사와 그의 연구가 영어권에서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생활과 사역을 보다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 연구는 이신형의 선행 연구보다 광범위하게 이광순 박사에 대해 살폈다.
이 논문의 목적은 몽골 농업의 연구 현황과 과제를 파악하 는 것이다. 몽골의 농업 분야는 몽골 농촌에서는 문화 그 자체이며 농촌 가구 고용의 핵심 동력이다. 하지만, 몽골 농업 분야는 1990년대에 몽골이 자유시장 경제로 체제전환을 하면서 오히려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 특히 몽골 농업 연구에 관한 투자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농업 분야 종사자와 연구진 사의 간극은 더 커지고 있으며 농업 분야의 연구 투자가 이러한 격차를 좁히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몽골 농업의 성장 동력을 다시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비즈니스 선교의 용어와 개념이 세상에 소개된 지 20년이 되었고, 한국 선교계에 소개된 지 12년이 지났다. 새로운 선교 환경의 패러다임 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선교적 접근으로 비즈니스 선교를 구체적으로 고려할 때가 되었다. 이 연구는 다수 사례 연구로서, 힌두권의 한 도시에서 행해진 비즈니스 선교 사례들을 정리하고 분석했다. 이 연구 의 사례들은 모두 소규모의 비즈니스 선교 사례들이다. 이 연구의 사례들에서 발견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초기 수년의 기간을 사업에 집중했을 때 사업의 매출 증대 뿐 아니라 안정화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생존기에 시장과 고객에 신속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면 기업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사례들이 현지인을 주 고객으로 삼았다. 비즈니스 선교사들이 자신의 사역에 대해 전문 지식 없이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유사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졌고 전문가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적극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의 비즈니스 선교에 대한 이해에 따라 이들의 사역이 달랐고 사업의 성장도 다르게 나타났다.
2015년 4월 25일 네팔 카트만두 인근 고르카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있었고, 9000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고, 60만 채의 건물이 손상을 입었다. 이 연구는 이전 다른 국가들에서의 대응과 여러 면에서 달랐던 네팔의 한국인 타문화권 사역자들이 지진 피해를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 3가지 질문들을 했다. 과연 2015년 네팔 지진의 영향은 어느 정도였는가? 네팔 어부회는 큰 자연 재해 뒤에 무엇을 했는가? 이 자연 재앙에 대응한 네팔 어부회의 활동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이상의 질문들을 통해 이 연구는 네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깊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의사소통을 일원화 했고, 구호와 복구 활동에서 교회보다는 지역 사회를 우선했고, 현대 온라인 통신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한국 교회는 타문화권 선교 초기부터 아시아 선교에 자원을 집중해 왔다. 아시아 선교를 위한 지역 연구도 비교적 일찍부터 있었다. 한편, 전 세계 인구의 약 60퍼센트가 집중된 아시아는 인종적 다양성도 매우 클 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종교도 매우 다양하다. 아시아에 한국 교회의 선교 자원이 집중되는 추세는 한국 선교 인력의 증가가 멈추더라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큰 선교 자원을 제공하는 교회는 미국 교회나 영국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는 아시아 선교를 더욱 책임 있는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아시아 선교의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규모를 고려할 때, 아시아에 있는 한국 선교사의 수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선교사들은 협력 선교를 추구하는 한편, 물량 선교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의 추방과 입국 거부의 위협을 적절히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국민 종교 활동을 제한하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환경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아시아에서 선교의 마중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힌두권인 인도의 여러 주와 네팔에서 반개종법을 도입하는데, 이것은 기독교 선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와 네팔의 반개종법들은 힌두교인들이 과거 서구의 식민지였을 때 경험했던 역사 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로의 개종에는 힌두 사회로부터 기독교 사회로 소속의 변화 뿐 아니라 신념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지 못하는 사회적 배경도 있다. 종교 인구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한 거부도 그 배경으로 있다. 힌두권의 반개종법들에 대한 3가지 범주의 선교적 대응들을 이 연구는 제시하였다. 첫째, 힌두교인들과 문화에 대해 선교사들이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사역자들이 자신의 사역 방법들에 대해 재검토하고 불필요한 사법적 시비에 휘말리 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셋째, 타문화권 사역자들이 지역 사회와 협력을 강화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사법적 준비도 철저히 하는 것이다.
This study seeks to understand why Shantung mission was the only cross-cultural mission work done by the Korean church in 1913-1957 while the focus of other mission works was the Diaspora Koreans and its implications for today's mission work of the Korean church. The Korean church clearly demonstrated its evangelistic zeal by sending its missionaries to Jeju Island, Manchuria, Russia, Japan, Hawaii and Shantung. However, it is interesting that it was only Shantung mission that was cross-cultural in nature, while all others were targeting Koreans living overseas. This study briefly looks at those early missionary enterprise in different regions, which at the end points to the foundational difference between Shantung mission and other missions in other places. They share many things in common, they both were initiated by the church, they both show the missionray zeal, they both were done while they did not have sufficient resources, they both have sacrificial indiviuals. However, Shantung mission stands as the only cross-cultural mission work. While fully agreeing that Shantung mission was exclusively ministered, gorverned and financed by the Korean church, this study suggests that Shantung mission was the only cross-cultural mission enterprise because it was initiated by a missionary, possibly with the help of a missionary board. Some previous studies seem to overlook the fact that W. B. Hunt took a significant role in planning and preparing Shantung mission, mediating between mission boards, the Chinese church and the Korean church. This study, then, goes further to discuss what the Korean church may learn from this historical ev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