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930년대에 루쉰과 취추바이가 합작한 잡문의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 이다. 루쉰과 취추바이의 공동 잡문 미학은 ‘집단주의’와 ‘예술의 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집단주의’는 ‘지식인의 대중화’로 개괄할 수 있는데, 이는 대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의 우월감을 버리고 거대한 군중의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문학과 혁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잡문의 ‘예술의 정치화’는 ‘예술성을 띤 논설(포이통)’이라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동 잡문이 사회의 중대한 일상적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매우 적합한 문체로 개발된 것이며, 예술성에 기초한 무기로서의 글쓰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勿은 갑골문 ( , , 勿)과 ( , 勿)을 모두 가리키기도 한다. ‘雜文’을 가리켰던 ( , , 勿)과 ‘쏘다’를 가리켰던 ( , 勿)은 갑골문 단계에서 형체가 서로 달랐다. ( , , 勿)는 卜辭에서 주로 ‘雜文’으로 쓰였다. 字源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 ’은 쟁기( )와 쟁기질을 할 때 나오는 ‘쟁기 밥’을 그려 ‘雜文’을 나타낸다 하고, 다른 하나는 ‘ ’의 는 칼을, 斜線은 칼로 자른 물건을 나타내어 ‘分割’을 나타낸다고 한다. 전자는 그 방증으로 ( )이 部 件인 利는 본래 ‘禾+ ’로, 쟁기로 땅을 갈면 벼에게 이롭기 때문에 ‘이롭다’란 의를 갖게 되었다고 하고, 利가 聲符인 , 黎 등은 아직도 부건 ( )의 흔적을 보유하고 있음에서 쟁기와 쟁기 밥을 그린 것이 맞다 한다. 후자는 ‘ ’는 (分)의 상부 ‘ ’이 칼로 잘려진 물건을 나타내듯이 分割, 切斷 을 나타내는데, 잡다하게 잘려진 것으로부터 雜文이 인신되었다고 한다. 또, 同源 혹은 후치자인 物 과 刎이 전적이나 복사에서 ‘베다’란 뜻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본의가 ‘분할’이라 한다. 物은 ( , , 勿)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갑골문에 物이 존재하는가는 아직 쟁론 중인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은 ‘ ’처럼 ‘ + 牛’의 合文만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반대는 ‘ ’처럼 엄연히 존재 했다고 한다. 전자는 그 방증으로 ‘ 馬 牡 牝 ’같이, 복사는 ‘ + 牛’로만 존재했다고 한다. ( , 勿)은 활을 쏜 뒤 시위가 진동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쏘다’를 나타내었다. 하지만 복사에서 는 대부분 부정사로 쓰였다. 그런데 ‘雜文’을 나타내었던 이 西周 金文에 이르러 과 같이 부정사 로 쓰이면서 큰 혼란을 겪는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본의 혹은 引伸義와는 상관없이 모두 부정사로 쓰이면서 누가 ‘勿’의 初文인지 헛갈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