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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대부터 조선초기까지의 금석문 2,940건에 대한 탁본 이미지, 개요, 판독문, 해석문을 DB화하고 웹사이트(한국금석문종합영상시스템http://.gsm.nricp.kr) 를 구축하여 2006년부터 서비스하고 있다. 그동안 이 사이트는 금석문 연구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는 한편 자료 업데이트, 탑재된 정보에 대한 오류 수정 등 지속적인 관심과 요구를 받아 왔다. 또한, 2013년 문화재청은 전국 금석문 목록조사 결과에 의해 우리나라에 11,500여건의 금석문이 소재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연구소는 올해부터 ‘한국 금석문 학술정보 구축’을 시작하였다. 금석문만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활용성이 크기 때문에 이 과제의 추진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연구자들도 많지만,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본 논문은 금석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연구되어 왔는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금석문의 중요성과 금석문 학술정보 구축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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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e investigate the records related to the reign style and the calendar day from the epigraphs of the Goryeo dynasty (918 - 1392) in Korea in order to verify and supplement the sexagenary cycle data of the first day in the lunar month of the dynasty. The database of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e Heritage contains a rubbed-copy image, transcription statement, and translation statement for Korean epigraphs as well as 775 epigraphs corresponding to the Goryeo dynasty. The epigraph records are valuable in that, during this time, they were written differently from other historical literature such as the Goryeosa (History of the Goryeo Dynasty), which was compiled in the next dynasty. We find that the Goryeo dynasty, in general, had adopted the reign styles of Chinese dynasties at that time. We also find 159 calendar day records all showing good agreement with the work of Ahn et al. except for dozens of records. Through this study, we can verify the reign styles and the calendar days of th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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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나라에서 동해(東海)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인 고구려 동명왕 건국기사에서 비롯된다. 이때가 B.C. 59년으로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이 건국되기 이전인 B.C. 5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2,000 여 년간 사용해 온 매우 오래된 바다 명칭이다. 동해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는가를 말해주는 다른 사례를 찾아보면 고구려의 장수왕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5세기에 세운 광개토 대왕비를 들 수 있다. 이 비문 중 제3면에 능을 지키기 위하여 동해 해변가에 사는 주민 3명을 차출한다고 적혀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동해 바다 명칭은 현존하는 금석문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언제, 어떻게, 어떤 금석문에 표기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는 현존하는 금석문은 수천 종인데, 그 중에 동해 명칭이 표기된 금석문은 122종이다. 이 중에도 공개를 꺼리는 금석문이 있으므로 공개 열람이 가능한 비문은 43종이다. 시대별로 살펴 본 동해 명칭 금석문 5세기에 제작된 광개토대 왕릉비가 있다. 8세기에는 4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고, 9세기에도 3종, 10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명칭을 볼 수 있다. 14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6세기에는 2종의 금석문이, 17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8세기에는 7종의 금석문이 19세기에도 7종의 금석문이 20세기에도 1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43종의 금석문을 형태별로 분류하면 사람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왕릉비가 3종, 왕자비가 1종, 장군비가 2종, 문신비가 11종, 승려비가 8종 등으로 도합 25종인데 금석문의 반을 차지한다. 불교에 관한 금석문 중에는 범종기가 1종인데 성덕대왕신종기 기문이 있으며, 불상을 만들면서 적은 금석문인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 기문과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입상 기문이 있다. 사원 건축 내력을 적은 백련사 석비, 광법사 사적비, 신흥사 사적비, 숭복사비 등이 있다. 금석문 중에는 성을 건축하고 그 내력을 적은 금석문도 있는데 영변 철옹성의 축성비에서 동해 명칭을 찾을 수 있다. 이외에도 전쟁에서 승전한 사실을 적고 있는 비문도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승전을 기록한 조조암실기와 삼충사묘정비가 있다. 동해 바다는 우리민족의 숭배 대상으로 고려 시대부터 동해신을 모신 사당을 짓고 국가에서 제사 지냈다. 양양에는 지금도 동해 신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그 곳에 동해 용왕을 모신 동해 용왕 묘비가 있고, 삼척에는 동해 바다를 찬양하는 동해비가 현존한다. 동해는 우리민족과 매우 밀접하고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바다였으므로 많은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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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988.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금석문(金石文)이란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기획된 명문(銘文)을 말하는데 갑골류, 도기류, 철폐(鐵幣)류 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금석문 251점 중 '차(茶)'자가 기록된 것을 조사 연구하였던 바 비문 16점, 와당 1점, 도자기 1점 이었으며 시대별로는 신라시대 5점, 고려시대 13점 이었으며 최초로 기록된 차(茶)자는 전남 장흥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884년)였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불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금, 향, 구슬 등 여러가지 귀중품 중 차(茶)를 최상의 것으로 취급하였으며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를 통하여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가 신라시대, 고려시대에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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