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문화인류학의 통합적 관점에 관한 연구이다. 그동안 선교사역의 사명과 선교사의 현지 부적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왔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문화인류학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사역과 관련된 이해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현대 선교학 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타문화 선교사에게 기본적인 문화인류학의 개념이해로 시작하여 문화인류학의 역사, 문화 인류학과 선교, 그리고 선교학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문화인류학 통합 적 관점은 찰스 크래프트, 폴 히버트와 강승삼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였다. 선교사가 사역에서 문화인류학을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복합적인 존재로서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 사회적, 도덕적인 측면 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의 목표는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실천적인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선교사 탈진 진단 및 대처방안을 프로이덴버거의 “과잉 성취동기” 이론과 마슬락의 “정서적 고갈”에 관한 측정 방법론을 통해 제시하고, 보완책으로 호킨스와 오스왈드의 이론을 다루었다. 2012년 부터 2년간 한국선교사의 중도탈락은 40%를 넘었다. 세계적으로 선교사 중도탈락의 위기관리 연구가 1996년과 2015년에 심도 있게 진행되었고 200여 곳 선교사 케어센터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방향 제시는 없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의 헌신적 태도가 대인관계에서의 조절능력 부족을 야기하였고 탈진이 초래되었다. 현실의 실망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에 의한 부정적 자아개념이 업무에서 성취감 감소로 이어지며 사람들로부터 떠나고 싶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본 논문은 선교사의 탈진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분석하 고, 탈진 학자들의 의미 있는 대처방안을 재정립하였다.
출(出)애굽이 있으면 입(入)애굽도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 본격적으로 정주하게 만든 애굽의 총리 요셉이 입애굽의 주역이 다. 출애굽의 주역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모세다. 입애굽과 출애굽을 이끈 요셉과 모세는 애굽기의 시종(始終) 주역들이다. 그들이 이스라엘 의 애굽기를 열고 닫았다.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는 요셉과 모세를 한 묶음으로 여긴다. 이 연구의 핵심과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에 의해 애굽기의 시종 주역들로 쓰임 받은 요셉과 모세에게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가 될 요소들을 밝히는 것이다. 주된 연구방법은 귀납 적 성경연구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그의 교회 갱신을 위한 열 가지 명제 중 여덟 번째로 성경적 리더십을 꼽으며, “리더십을 위한 세상적인 자격 요건들은 성경적인 자격 요건으로 대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연구에서 팔로워와 리더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해야하는 타문화권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성경적인 자격 요건’을 입애굽과 출애굽을 이끈 요셉과 모세라는 불세출의 성경적 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본다.
야곱의 축복 중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라는 구절은 요셉의 일생과 그의 됨됨이를 잘 보여준다. 요셉은 애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범사에 형통한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된다. 십칠 세에 애굽으 로 팔려간 요셉은 십육 세에 로마령 영국 서부 해안가 자기 집에서 아일랜드 침입자에게 붙잡혀 아일랜드 영주의 노예로 팔렸던 성 패트릭 (St. Patrick)을 떠올리게 한다. 패드릭은 포로 생활을 한 아일랜드에 타문화권 선교사로 다시 가서 고사 위기에 놓인 그리스도교 교회를 살려냈다. 또한 요셉은 타문화권 선교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참으로 믿고 의지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있게 됨을 보여준다. 요셉은 백십 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형제들을 갑을관계로 대하지 않았다.
애굽 왕의 사형수로 태어나 애굽 왕족의 영화를 누리다가, 다시 바로의 사형수가 되어 유리하다가,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던 호렙에서 만난 하나님(출 3:2)에 의해 한 민족을 살리는 지도자로 쓰인, 드라마틱한 모세의 삶과 사역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로서 훌륭하다. 모세는 타문화권 선교사가 표본으로 정하여 성숙할 때까지 모델로 삼을 만하다. 모세는 온유한 지도자였다. 성경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장 3)고 간결하 게 진술한다. 온유한 지도자는 인물을 키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온유함에서 우러난 진정한 겸손을 인정하고 그에게 동역할 사람들을 붙이셨다. 건물을 짓는 선교보다 인물을 키우는 선교가 훨씬 더 중요하 다. 당장은 건물이 눈에 띄지만 세월에 부식하지 않는 인물이 오래 간다. 큰 나무는 나무를 기르지 못하지만 큰 사람은 인물을 키울 수 있다. 인물은 대개 큰 지도자 밑에서 자란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지혜가 충만한 후계자와 동역하다가 그에게 자신의 존귀를 돌릴 수 있는 타문화권 선교사, 복되고도 복되지 아니한가?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신학교 시절에 배운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가르치고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단단하게 하기도하고 부수기도 하는” 귀납적 성경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왔다고 한다. 이 글은 필자가 나름대로 변혁적 효과를 탐구하며 그 동안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필자의 그동안의 지론의 연장선상에 놓인 글이다.
창세기 12장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복 주시려는 새롭고도 적극적인전략을 펼치면서 한 가계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한다. 창세기 12장 부터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거룩한 역사의 거의 유일한 주제인양 다뤄진다.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는 아브라함이 결과적으로‘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롤 모델, 즉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이 글에서 모델이라는 개념은 스코트 모로(A. Scott Moreau)가 분류한 물질적, 은유적, 이론적이라는 세 가지 범주 가운데두 번째인 은유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족장들은 타문화권 선교사가 열망하는 하나의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모델이 될 수 있다. 고로 족장들 의 삶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를 추출하고자 한다. 그들이 타문화권 선교사의 전형(典型) 즉 기준이나 규범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타문화권 선교사의 기준이 될 만한 이론적틀을 찾아본다. 아브라함에게서는 관계 성공하는 선교사, 이삭에게서는 우물을 넘겨주는 선교사, 야곱에게서는 우물 아귀의 돌을 옮기는 선교사라는 틀을 찾아낸다. 하나님과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현지인들과는 사랑의 관계를 맺은 아브라함은 가히 타문화권 선교사의 선구자 라 할 만하다. 순종과 양보의 대명사인 이삭의 삶은 이양과 출구전략이라는 측면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훌륭한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전략적 계획의 대가로서 타이밍과 목표와 단계적 접근의 중요성을 포괄적으로 잘 활용한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많은 일을 겪으면서 사는 것에 더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타문화권선교사가, 삼대에 걸쳐 창세기를 아름답게 수놓은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밟아 마침내 길이 된 타문화권 선교라는 지난한 길을 잘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본 연구는 장기간 타문화권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사회에 돌아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과 그들의 타문화 경험이 어떻게 평생학습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경력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 질적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 차용한 근거이론 방법론에 따라 분석된 정착과정은 다음과 같다. 타문화권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으로서 변화인식기(평생학습 필요단계), 불안정함 표출기(경력개발 추구단계), 문제상황 인식과 돌파기(평생학습 시작과 경력개발 초기단계), 구체적 행동실행기(평생학습을 통한 경력개발 단계)를 거쳐 자신과 타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 속 적응과 정착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선교사 개인의 관점에서 선교지와 한국에서의 삶을 연결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무경계 경력과 프로티언 경력 개발을 위한 적극적 행동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이들을 파송했던 교회와 선교단체에게는 돌아온 이들의 심리적 적응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사역의 플랫홈 제공이 필요함을, 사회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의 사회통합 및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 이들의 정착을 도울 것을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arch Mattie Ingold’s life, the first lady missionary doctor served in Jeonla province. She is known as a founder of the Jesus Hospital in Jeon Ju, 108years old teaching hospital with 600 beds. But her contribution and limitation as a lady doctor was not properly evaluated. She was very well prepared medical missionary graduating Women’s Medical College in Baltimore with the first prize. She had passion for mission to Korean so much that she would not return home for this people. The Rock Hill First Presbyterian Church as a sending church was also very mission oriented enough to take care of her medical education for 5 years before sending her to Korea. However her ministry period as a medical missionary was only from 1898 to 1904. It seems not so long as to raise question if there were any reasons to quit medical ministry while serving in Jeon Ju until 1925. This study traced the Mattie Ingold’s life and circumstances she had faced at the end of 19th century and early 20th centu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ism. As other medical missionaries did in many area of mission fields s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introducing the Christianity by bridging the gap with the traditional worldview or with the Confucianism. Her warm hearted medical care was definitely contributed to get rid of xenophobia prevailing in those days just few years after the Donghak farmer’s revolutionary movement. Even though, as a lady doctor, her medical work was restricted to caring ladies and children, her zeal for evangelism made her translate the Christian Cathechism Primer into Korean which has been used by all missionaries in Jeonla area. She rather used her limitation as a merit by involving more actively in home visiting and providing medical care for ladies and children which was not easily available to men. She must have struggled with xenophobia, male superiority complex and the health issue of herself which could have shrink her back from active medical work. But most depressing factor might have been the mission policy based on dualistic view on the Christian mission that medical ministry was just subordinate to the evangelistic ministry and that the medical care was just a bait for evangelism. This policy could have resulted in restriction in allocating resources for medical ministry. Moreover, at that time, even mission agency had male dominating atmosphere that ladies could not have a voice in decision making. This study may provide a lesson which is worth in helping individual missionaries of today’s mission by revealing that how the policy of a mission society and the contemporary worldview affects on the individual missionary’s ministry.
본 연구는 무굴 아크바르 황제의 명으로 제롬 하비에르 선교사가 예수 의 생애에 관해 저술했던 『거룩함의 거울』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제작 의 도에 관한 문화 종교적 분석이다. 먼저 아크바르 황제는 예수의 생애에 대 해 다양한 종교에 관한 이성적 관심의 일환으로 예수의 기적과 신성에 관 해 왕권 강화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다. 한편 제롬은 황제를 개종시킬 목 적으로 무굴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면서 예수의 생애와 접촉점이 될 만한 내용을 선택하여 저술했다. 또한 무굴 궁정의 화가들은 제롬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슬람과 힌두교 종교예술 양식과 서양 기독교의 양식을 혼합하여 예수의 생 애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거룩함의 거울』에 나타난 이러한 문화적 종교 적 대화를 통해 직접적인 개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이고 강압 적이지 않았고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이 러한 무굴제국의 문화 적응적 예수회 선교의 예는 오늘날 여전히 어려움에 봉착한 인도의 모슬렘, 힌두교인의 선교방법에 대화를 통한 선교의 긍정적 선례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