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46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시행한 성경학원 정책을 연구한다. 기존 성경학교 정책과 달리 새 정책은 한국교회(노회)가 주도적으로 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선교사는 보조자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각 노회는 지역 선교부와 함께 평신도 전도사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성경학원을 설립하였다. 이 논문은 3가지 형태의 성경학원을 규명했다. 첫째, 표준적인 성경학원의 입학 조건을 채우지 못한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각 선교부의 성경학원, 둘째, 성경교육의 질을 높이고 표준을 제공하는 선교회의 성경학원으로서 호남신학원, 셋째, 당시 경제적으 로 어려운 여성들을 교육시켜 여자전도사를 배출하는 한일여자신학원 이다. 결론으로 한국선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서술하고 두 신학교의 발전과 신학교육적 영향을 분석한다.
본 글은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선교 초기(1902-1925)에 행한 한국인 전도부인 양성과 교육 정책을 연구한다. 한국선교회는 학생들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감안하여 4가지 형태 즉 4일 시골교회 사경회, 10일 선교부 성경반, 1달 성경학원, 2개월 선교회 성경학교를 운영하였다. 변화하는 1920년대 상황은 2년제 선교회성경 학교의 예비과정으로 2년제 초급여자성경학교를 1923년에 세우게 하였다. 한국선교회는 이 2개 학교의 학생들을 위하여 자조적 산업부를 만들어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고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본 글은 이 연구를 위하여 주로 제1차 자료인 한국선교회의 연례회의록과 선교사 들의 선교보고를 분석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동역자로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무슨 선교를 행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 연구가 필요하다. 본 글은 우선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게 한 선교신학적 근원을 검토했다. 이는 한국장로교 회가 강조한 영적 교회 설립과 개인주의적 영혼구원 선교였다. 이 정책은 초기 한국인과 갈등을 빚었다(1884-1910). 뒤이어 본 글은 영혼구원 선교에 더하여 사회선교를 강조한 통전선교를 행한 쉐핑 (Elisabeth J. Shepping, 서서평, R.N. 1912-1934) 선교사의 선교 를 검토하고, 그녀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인지도자들의 선교와 특징을 분석하였다(1910-1960).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통전 선교와 예수 제자도 선교를 하였다. 본 글은 이 특징들이 오늘날 복음주 의 로잔 문건과 WCC 선교문건에서 어떻게 논의되는가를 살폈다. 이들은 주변부 선교, 변혁적 통전선교, 성육신적 제자도 선교인데, 본 글은 이들의 한국교회 적용을 논의했다.
이 논문은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교육선교를 이끌어 나간 인돈(William A. Linton)의 교육선교를 연구하고, 인돈을 중심으로 남장로교 교육선교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인돈은 1912년에 한국에 입국하여 1960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당하였던 기간(1940-1946)을 제외하고, 오랜 기간 한국의 전라·충청지역에서 줄곧 교육사역에 헌신하였다. 입국 후 선교초기에는 군산 영명학교에서 성경과 영어교사로 시작하여 곧이어 교장이 되었고, 이후 일제 식민주의 교육정책과 제도 속에서 남장로교가 선교학교의 생존과 교육선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지정학교로 인가를 추진할 때 주력학교인 전주 신흥학교로 이임하여 교장으로 일하며 지정학교 인가의 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하며 남장로교가 자진폐교를 결정할 때, 전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선교회 모든 학교들의 폐교를 진두지휘하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지만, 해방 이후 복귀하여 새롭게 설립되는 대전선교지부의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남장로교가 한국교회 지도자 양성과 고등교육을 통한 한국사회의 기여를 위해 대전에 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을 때, 대학설립위원장과 초대 학장으로서 대학의 설립과 교육과 운영의 책임을 감당하였다. 이로써 인돈은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남장로교 교육선교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발전에 기여하였다.
선교초기부터 끝까지 인돈의 교육선교에서 이어지는 강조점은 교육의 목적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것은 불신자에게는 전도하고 신자에게는 교육해야 한다는 남장로교 교육선교의 핵심을 반영하였다. 기독교인 자녀들을 기독교적 교육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가르쳐서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가 되게 하고 각자 놓인 자리에서 이웃을 돌보고 사회에 봉사하는 책임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선교의 사명이었다. 교회지도자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남장로교와 북장로교를 비롯한 보수적인 장로교 선교회들의 교육선교의 목적이 대동소이하였지만, 북장로교가 복음전도자 양성에 보다 집중하였다면, 남장로교는 교회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독교 지도자 양성이라는 점에서 통전적, 실용적 성격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인돈 자신도 공학도였던 만큼 과학교육을 강조하고, 또한 모든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강조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전대학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학과 과학과 신학의 조화와 융합, 신앙과 학문과 실용적 삶의 연결은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적 교육환경을 위해, 모든 교사가 진실한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학생들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교육의 내용과 삶이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인돈의 교육선교의 마지막까지 강조되었다. 교육선교의 목적과 정체성에 대한 신념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하여 자진폐교를 결정하고 교육선교에서 물러난 것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 원칙은, 작지만 기독교적 정체성과 목적이 유지되는 순수한 대학을 만들고자 하였던 모습에서도 나타났다.
American women missionaries in Korea had specific works for Korean women in the mission field. Traditionally, Korean women had less opportunity to be educated, to participate in social activity and self-achievement. Women mission changed the life of the Korean Christian women. The women religious education is the most important element to lead the women’s life.
This is the study on the manual of weekly Prayer meeting by women missionari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South. These documents were published in 1936, 1938 and 1939. The authors of each book were Meta L. Biggar, Talmage Eliza and Josephine Hounshell. These books show everyday piety and spirituality of Korean Christian women in the 1930’s. The most important goal of prayer was to improve Christian faith and to encourage discipleship of Jesus Christ. When they taught prayer, they had to read and study the Bible. They studied the bible to learn the life and teaching of Jesus Christ. In the prayers, they wished to participate in the way of Jesus Christ. These regulations of the prayer meetings displayed the pious heritage of evangelical protestant tradition. The modern Korean church has to develop the noble tradition rather than accept contemporary secul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