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역사적 관점에서 7세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주요 논쟁점을 살펴본다. 본 연구의 주된 내용은 무슬림들은 기독교인 들이 하나님, 예수, 마리아의 삼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이슬람을 기독교의 한 분파나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테오도어 바르 코니는 다마스커스의 요한처럼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무함마드를 이단의 두목으로 보았다. 가경자 피터, 루터, 칼뱅도 이슬람 을 이단으로 단정하였다. 무슬림들은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구세주이심 을 부인한다. 루터와 칼뱅은 무슬림들이 예수를 구원자,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다고 보았다. 루터와 칼뱅은 이슬람을 하나님이 범죄한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사용하시 는 진노의 막대기로 보았다. 루터는 무슬림을 기독교의 대적자로 보았 고, 칼뱅은 이슬람은 거짓 종교(우상숭배)이며, 무함마드는 배교자, 협잡꾼, 악마의 하수인, 그리고 적그리스도로 간주하였다. 새로운 무슬림 전도방안을 제시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대 이슬람 변증의 주요 논쟁점이 무엇인지 우선 인식해야 한다. 이슬람에 대한 공격적인 선교 를 지양하고, 이슬람 선교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성경과 유사한 꾸란의 내용을 활용하여 무슬림 전도의 연결고리(bridge)로 활용해야 한다.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살았던 시대는 조직적인 박해가 있던 시대는 아니 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박해가 있었고 그 과정 가운데 초기 변증 가들은 기독교 공동체를 수호함과 동시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해 올바로 알려야만 하는 중요한 의무가 있었다. 유스티누스는 현실적으로 로마의 정책을 수용 할 수 없는 기독교의 처지에 대해 누구보 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가 이질적인 종교가 아니며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종교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했다. ‘높은 윤리성’과 ‘황제를 위한 기도’는 유스티누스가 찾은 해답처럼 보인다. 하지 만 로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이러한 주장이 수용 가능했을까 하는 의 문이 든다. 때문에 유스티누스도 로마가 수용 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자 기 방어적 목적을 더 크게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해로 인해 기독교를 부정하 고 떠나는 배교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고 확고한 신앙 가운데 기독교인들 이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유스티누스 때처럼 무력을 통한 박해는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의 위상이 그때보 다 사회 가운데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수많은 기독교인의 증가에도 ‘높 은 도덕성’을 당당히 내세울 만큼 오늘 우리는 사회 가운데 좋은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위해 기독교 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도덕성도 지니지 못한 채 하나님 나 라의 실현을 위해 애쓴다는 것은 헛된 노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