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초반은 南冥 曺植(1501-1572)이 학파를 형성하고 그의 제자 및 재전제자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시기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해 남명학파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학문적ㆍ정치적 활동에서 전면에 나서기 어 려웠던 점을 생각할 때, 이 시기는 남명학파의 전성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16-17세기 초반에 창작된 남명학파 학자들의 箴 작 품을 대상으로 그 속에 담긴 수양론을 파악해보고자 시도했다.
箴의 효용성에 주목해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분석하여 수양의 실천 양상 을 분류한 결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는 수양론의 핵심 사상을 제기하여 그것에 따른 실천 의지를 촉구한 작품군이다. 이것은 보다 근원적ㆍ본질적 측면에서 자신이나 타인을 규계하는 것이므로, 치료 방법중에서 原因治療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특정한 병폐나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적시하여 그것에 따른 수양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어떤 증상에 대해 직접적인 처방을 하는 對症治療의 명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는 어 느 시기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새롭게 전환하려는 시도를 할 때 지어진 작품으로, 이것은 주위 환경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여 병을 호전시키는 改善治療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3가지 유형 가운데 편수가 가장 많은 것은 對症治療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총 10편이 여기에 속한다. 原因治療는 5편이 있으며, 改善治療는 4편이다. 곽재우의 「調息箴」은 호흡법에 관한 내용으로 다른 箴 작품의 일반적인 성 향과 구별되어 기타로 분류했다.
16-17세기 초반 남명학파 학자들이 창작한 箴 작품은총 20편인데, 비슷 한 시기에 지리산권의 서부인 호남지역에서는 箴 작품의 수량이 6편 정도에 불과하며, 그 내용도 2편이 임금을 위해 지은 官箴이고 나머지 4편은 경전 을 해석하거나 전대의 작품에 차운한 것이다. 이처럼 호남지역의 箴 창작 양 상과 대비해 보자면, 남명학파 학자들의 箴 작품은 수양의 내용 및 방법을 서술한 것이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이다. 따라서 16-17세기 초반 남명학 파의 箴 작품은 수양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고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동양에서의 사물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원래 있는 그대로를 중시한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어떤 무엇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 아닌 원래 시작도 없이 그냥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 존재하는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 가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소위 서양철학에서 발달한 형이상학의 문제가 동양적 사고방식의 문제에서는 관심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형 이상학보다는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불교 · 성리 학 · 도가의 형이상학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연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바로 인간의 사유능력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능력을 중시하는 인간본위의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신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인간관과 는 전혀 상이한 것이다- 동양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유가, 도가, 불교에서 주장하는 이상적 인간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각 사상에서 강조하는 이상적 인간상의 특정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추구하여야할 실천방법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각 사상의 이상적 인간상의 실현을 위하여 수반되는 구체적 수양방법이 뒤따라야 한다. 유가 · 도가 · 불교에서 주장하는 많은 수양방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살펴봄으로써 각 사상의 수양론의 특정도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동양에서 내세우는 이상적 인간관의 특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유가는 인간의 욕망의 절제를 내세우고 인륜을 중시하여 도덕적인 삶을 통하여 궁극적인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가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지켜나감으로서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의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끝으로 불교는 언간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원래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순수한 본성을 되찾음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고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이상적 인간관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제거하고 우리의 마음에 내재한 순수한 본성을 되찾아 언제나 그 마음이 나타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Soe-gye(西溪) Pak Tae-Moo(朴泰茂) was one of the famours scholars who lived in the right side of Kyungsang province in the 18th century. After the restoration in 1623 the scoholastic trend in this area was desprited with party strifes. He declined all of the successful career, and concentrated his mind on expounding his scolarship based on the Newcofucianism. He devoted himself to studying and practicing sacred books to cultivate his mind. His scholarship intended to keep his principles to establish firm faith for the spritual culture.
His principles for the spritual culture could be summrized as the diagram and inscription of Jagyungbyung[自警屛]. The diagram and inscription of Jagyungbyung could be seen as the most representative summary of his scholarship, which he focused in two fundamental concepts Sung[誠] and Kyung[敬].
Soe-gye's interest in endeavoring at self-cultivation was succeeded to the scholarstic mentle originated in Namymung[南冥] and his forefather Pak-Min(朴敏) who was one of the followers of Nammyung and one of the friends of Misu[眉叟]. In partcular he attached much importance to Simhakdo[心學圖]. In this point Soe-gye's scholarship for the spritual culture shows a marked trend toward practical ethics[心學] originated in Namymung school.
His discussion for self-cultivation in the rouhly based on the dilatation and interpretation of the typical articals of Sungrijulyo[性理節要], but by the way he successfuly explained the purpose and the prescription for self-culti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