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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KCI 등재 The Nammyonghak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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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45권 (2015년 3월) 8

목차

2.
2015.03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대곡 성운이 쓴 「남명선생묘갈」을 중심으로 남명의 삶을 살핀 것 이다. 이 묘갈은 남명 관련 여타 비지문 중에서도 특히 ‘남명의 기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칭송받았다. 대곡은 남명의 평생 知己였다. 때문에 묘갈에서도 언급하였듯,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남명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상 속 남 명의 모습이었다. 특히 학문하는 자로서의 일상적 모습과 스승으로서의 특징 적 면모를 묘갈에서 집중적으로 표현하였다. 왜 ‘일상 속의 모습’이었을까. 남명과 대곡은 당대의 대표적인 재야지식인이었다. 출사하지 않았기에 兼善天下의 공적은 없었지만, 獨善其身의 처세를 통해 후인에게 출사인 못잖 은 영향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자기 학문에 근원을 둔 재야지식인으 로서의 삶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이러한 삶은 ‘일상 의 모습’을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이 가장 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외형적 처세에서 그 유형을 달리 하였다. 따라서 그동안의 연구가 두 사람을 같은 층위에 놓고서도 서로 상대적인 방향에서 접근하기도 하 였다. 남명은 보다 외향적인 측면에서, 대곡은 남명에 비해 내향적 측면에서 의 접근이었다. 그러나 후학들의 이러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생전엔 평생의 지 기였고, 사후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한 벗으로 인식되었다. 그 기저엔 바로 대곡의 이 묘갈이 있었다. 남명에 대한 대곡의 그 허여지점, 곧 삶의 유형이 다소 달랐을 뿐 당대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는 두 사람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드러내려고 의도하지 않았 기에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지만, 그들만은 서로를 허여하였던 것이다.
3.
2015.03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6-17세기 초반은 南冥 曺植(1501-1572)이 학파를 형성하고 그의 제자 및 재전제자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시기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해 남명학파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학문적ㆍ정치적 활동에서 전면에 나서기 어 려웠던 점을 생각할 때, 이 시기는 남명학파의 전성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16-17세기 초반에 창작된 남명학파 학자들의 箴 작 품을 대상으로 그 속에 담긴 수양론을 파악해보고자 시도했다. 箴의 효용성에 주목해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분석하여 수양의 실천 양상 을 분류한 결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는 수양론의 핵심 사상을 제기하여 그것에 따른 실천 의지를 촉구한 작품군이다. 이것은 보다 근원적ㆍ본질적 측면에서 자신이나 타인을 규계하는 것이므로, 치료 방법중에서 原因治療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특정한 병폐나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적시하여 그것에 따른 수양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어떤 증상에 대해 직접적인 처방을 하는 對症治療의 명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는 어 느 시기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새롭게 전환하려는 시도를 할 때 지어진 작품으로, 이것은 주위 환경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여 병을 호전시키는 改善治療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3가지 유형 가운데 편수가 가장 많은 것은 對症治療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총 10편이 여기에 속한다. 原因治療는 5편이 있으며, 改善治療는 4편이다. 곽재우의 「調息箴」은 호흡법에 관한 내용으로 다른 箴 작품의 일반적인 성 향과 구별되어 기타로 분류했다. 16-17세기 초반 남명학파 학자들이 창작한 箴 작품은총 20편인데, 비슷 한 시기에 지리산권의 서부인 호남지역에서는 箴 작품의 수량이 6편 정도에 불과하며, 그 내용도 2편이 임금을 위해 지은 官箴이고 나머지 4편은 경전 을 해석하거나 전대의 작품에 차운한 것이다. 이처럼 호남지역의 箴 창작 양 상과 대비해 보자면, 남명학파 학자들의 箴 작품은 수양의 내용 및 방법을 서술한 것이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이다. 따라서 16-17세기 초반 남명학 파의 箴 작품은 수양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고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4.
2015.03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남명의 신명사도에 나타난 인간 마음의 특징과 그 작용에 대한 관점을 인간정보처리론적 학습심리 관점에서 학습심리적 함의를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신명사도의 의미와 인간정보처리론과 정보처리모형을 살펴본 다음, 신명사도의 학습심리적 요소와 정보처리모형을 상호 비교해 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명사도가 지니는 학습심리적 함의를 인간정보처리 론에 기초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신명사도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나타나 는 행동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구조적으로는 원곽, 원곽내, 그리고 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신체적으로 눈·귀·입, 두뇌 및 마음,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능적으로는 정보수집, 인지과정, 몸의 행동으로 작용한다. 또한 신명사도는 인간정보처리론적 학습심리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 점을 밝혀냄으로써 본 연구는 서구의 학습심리 이론보다도 무려 400여년이 나 앞서 교육에 활용되었다는 점을 구명했다는 측면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 아볼 수 있다. 신명사도를 인간정보처리론적 관점에서 고찰해 볼 때, 드러낼 수 있는 학 습심리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습자의 내적 인지과정을 이해할 수 있 는 학습심리모델을 제시하였다는 점, 둘째 인간의 학습과정에 있어서 효과 적인 학습방략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셋째 학습자를 능동적인 정보 처리자로 간주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5.
2015.03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의 목적은 우리나라 사상가이며 대학자인 남명의 敬義사상에 내포 된 교육적 의미를 추출하여 오늘날 유아인성지도를 위한 교사의 리더십을 탐색하는 데 있다. 연구결과, 敬義사상에 근거한 유아인성지도 교사는 마음 을 다하여 수양하며, 올바른 배움으로 인지적, 정의적, 활동적 리더십을 義 롭게 실천해야하는 것으로 분석되어졌다. 본 연구결과가 유아기 인성지도 교사의 리더십 연구에 주는 시사점은 남명의 敬義사상을 통하여 정체성 있 는 교육자 역할을 정립하고 인성지도를 위한 실천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는 점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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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南冥 曺植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盧.의 증조부로 조선 초기 함양을 대표하는 인물 松齋 盧叔仝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에 대해 정 리한 ..松齋實紀..에 수록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송재는 세종 때 집현전에 들어 교리, 응교 등을 거치고 세자시강원 필선, 예문관 직제학 등을 지낸 뒤 호조참판 등에 이른 경력으로 보아 학문과 문장 이 뛰어남을 알 수 있으나, 그가 남긴 시문도 그리 많지 않고 학문을 알 수 있는 것은 .八字遺訓.이 유일하다. .팔자유훈.은 아들이 충주의 판관으로 나갈 때 지어준 誠·信·廉·公·勤·簡· 和·惠의 여덟 자의 교훈인데, 이전에는 이에 대한 뜻을 풀이한 내용이 있었 다고 하나 지금은 여덟 글자만 남아 있다. 후손들이 이에 풀이를 더한 것을 통하여 그가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뜻과 이를 후손 및 후학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를 수 있다. 그의 시세계는 그가 남긴 몇 편의 抒情詩와 酬唱詩를 통하여 살필 수 있는 데, 주로 벼슬살이 하는 중간에 느낀 것을 읊은 서정시 10제 11수와 중국 사 신이 왔을 때 지었다고 하는 13제 21수가 분석의 대상이다. 서정시는 지방 에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오가며 보고 느낀 바를 지은 것이 대부분인데 나라 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수창시는 1457년 陳鑑과 高閏이 왔을 때에 지은 7제 10수가 있는데, 이시 들은 모두 당고와 고윤이 성균관을 방문하였을 때, 호조참판으로 그들과 함 께 성균관에 가서 수창한 것이다. 중국 사신을 대접하며 그들의 뜻에 맞추어 시를 지은 것이다. 나머지 祈順에게 화답한 것으로 5수가 있고, 唐皐에게 화답한 것으로 2수 가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기순과 당고는 송재가 별세한 뒤에 사신으로 왔 던 사람들이므로, 이들과 화답한 작품을 송재의 것으로 수록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 화사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시, 즉 누구와 수창, 화답한 것인지 드러나 있지 않는 작품으로 「臨津舟中酬華使」, 「鳳仙館又次前人」, 「次華使猪灘過橋韻」, 「葱秀嶺又次華使」의 네 수가 있는데, 이 시들은 언제 지은 것 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7.
2015.03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에서는 중국의 무형문화유산 보호정책의 형성과정과 특징을 알아보 고, 그 가운데 무속 관련 무형문화유산의 현황과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 다. 2000년대에 이르러 중국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의 전통문화를 ‘위대 한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재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유네스 코의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무형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에 집중하여 2011년 현재 국가급 문화유산 1,219건과 성급 문화유산 7,109 건 등 무려 8,328건에 이르는 문화유산을 선정하였다. 중국의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무속과 관련된 무형문화유산은 북방의 살만교 계통 무속과 남방의 나계통 무속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북방의 살만교 의례는 이미 사라진 상태 이고 현재는 나계통의 무속의례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나계통의 무속 관련 무형문화유산은 전통무용과 전통희극으로 분류되어 무형유산 목록에 등재 되는데 이 같은 사업은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지금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무속 관련 무형문화유산 보호제도는 무속에 대한 중국 사회의 부정적 견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그 문화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동시에, 전통문화인 무속의 가치를 고양(高揚)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무속 관련 무형문화유 산을 서민의 삶 속에 뿌리내린 신앙 현상으로 보지 않고, 전통무용과 전통희 극으로 단순 분류함으로써 무속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