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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KCI 등재 The Nammyonghak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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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35권 (2012년 9월) 8

1.
2012.09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개소 20주년을 맞아 남명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남명학 연구에 대해 시기별로 발전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준으로 1990년 이전과 남명학연구소 설립 후인 1990년부터 2011년까지를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이 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삼아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후반 김충렬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남명학은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남명 중심의 연구에서 범위를 확대해 남명 제자들을 통해 남명사상의 계승 양상을 구명해 남명 정신이 우리나라 선비 정신의 본보기로 인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 남명탄신 500주년을 맞아 남명학과 다른 학파와의 비교를 통해 16세기 유학사에서 남명학의 특징을 학계에 널리 알렸으며, 외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명학의 국제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지금껏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남명과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명학 연구의 발전 과제도 적지 않다. 20여년 동안 ‘남명’이란 주제로 수많은 연구 성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아직 남명 선생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는 적어도 경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굳이 퇴계선생과 비교하지 않더라고 남명의 정신과 학문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전 국민들이 인식할 때 까지 관계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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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생애와 발자취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어찌 보면 남명 당대에도 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남명이 돌아간 직후 이에 대한 정리가 본격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남명의 생애 가운데 예민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제자 정인홍의 정치적 부침에 따른 후유증으로 생애에 관한 자료도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 의해 중복하여 지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남명에 대한 생애자료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남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 남명의 생애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일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근대의 인명사서 등에 남명에 대한 내용은 비슷한 시기의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략한 감이 있다. 1990년대 초에 남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남명의 생애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본격적인 연구와 번역, 교정 등은 이루어지 않았다. 다만 최근 들어 다행스럽게 남명에 관한 생애자료가 다시 전반적으로 검토되고 정리되고 있다. 남명의 생애에 관한 정리와 소개, 교정과 연구는 논문, 저서, 소설, 사전, 교과서 및 개설서 등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소설로 지어지고 교과서 및 개설서에 소개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논문, 저서 등의 형태로 점점 깊이 있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인터넷 온라인상에 사전적 설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남명의 생애에 대한 철저한 실증을 바탕으로 생애가 정확하게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남명의 발자취에 관한 정리와 소개는 주로 책으로 몇 권 나와 있는데, 개설적으로 간략히 설명한 것에서부터 특정한 분야 예컨대 한시 등과 관련하여 발자취를 탐방하는 형식으로 된 것도 있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발자취와 학문적 궤적을 관련지어 연구한 것도 있다. 이들 발자취에 대한 정리와 탐구는 이전의 유적지에 대해 소략하게 소개한 책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발굴하거나 정리가 되지 않은 발자취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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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12년 7월까지 남명 조식의 철학사상을 연구한 업적들을 회고한 글이다. 다섯 분야로 나누어 논의의 흐름을 살펴보았는데, 실천유학성에 대한 논의, 남명 성리학의 속성에 대한 논의, 탈유학성의 논의, 공부론의 특징에 관한 논의, 이기론적 성향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남명의 유학이 실천유학이자 脫이론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남명학의 특징을 비교라는 방법에 의하여 탐구한다. 비교 대상으로 삼아진 이들은 이황과 주희였다. 비교를 통해 남명만이 가지는 특성이 많이 드러났으나, 지나치게 차이성을 강조하고자 한 경우 상식에서 벗어난 무리한 주장들을 내놓아 남명학 이해를 오히려 저해한다. 이에 필자는 저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남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별화와 함께 동일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남명학이 동아시아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는 남명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함을 주장하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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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 20주년을 기념하여 남명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남명문학 연구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의 연구 성과를 장르별로 분류하고, 『남명집』에 수록된 문체 유형에 따라 운문과 산문 분야, 총체적 분야, 비교문학적 분야 등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남명문학 연구는 현재까지 100여 편의 성과가 산출되었다. 남명의 창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수치이다. 이의 검토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예컨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남명 삶의 특징적 국면을 강조하는 연구가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또 이를 대변할 만한 소수의 작품만이 지속적으로 재인용되었다는 점, 특정 분야의 연구는 초창기 이후 장기간 정지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연구가 지속되어 성과가 증가했음에도 이러한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남명문학 연구가 직면한 총체적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명문학 연구의 절대적 분량을 차지하는 한시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남명집』의 한시와 남명의 일대기를 대조하는 작업이다. 『남명집』의 수록 체계가 시대 순이 아니고 作詩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명의 삶은 크게 네 번의 전환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뚜렷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왔다. 적어도 이러한 4 시기로의 분류만이라도 가능하다면, 현재 소강상태에 있는 남명문학의 연구는 한층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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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 교육부분에 있어서 남명학 연구성과를 정리하여 그 동향을 밝혀 앞으로의 남명학 연구의 방향을 정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 여기서 남명학은 남명조식(1501-1572)과 그의 문인 집단인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교육부분에 있어서 남명학 연구는 1947년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1990년 이후부터 시작된다. 2000년까지의 연구는 거의 대부분 교육사상 일반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도 남명에 편중되어 연구되었다. 2000년 이후는 남명학의 교육부분에 관한 연구가 다양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2000년 이후에는 기존의 연구자가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의 영역을 확대하였고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가 남명학의 교육부분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명의 문인에 대한 개개인에 대한 연구가 남명학파라는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연구의 방향이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인접 학문의 연구방법이나 결과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연구는 첫째로, 남명과 남명학파의 교육에 관한 다각도의 연구와 남명학의 계승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남명학파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가 필요하며, 둘째로 남명과 남명학파의 향촌사회에서의 교육실천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그들의 영향이 향촌사회에 어떠한 형태로 적용되어 향촌사회 변화와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를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며, 세 번째로 남명과 비교될 수 있는 사람과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교육사에 있어서 남명과 남명학파의 위상을 정립하는 연구가 필요하며, 넷째로 남명과 남명학에 대한 연구에 현대 서양교육학의 이론과 연구방법을 지속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남명학 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점을 찾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교육영역에 있어서의 남명과 남명학파에 관한 연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교육문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하고 나가가 미래 교육 발전의 방향을 제공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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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치의 통속적인 정의를 재검토하고 재조명하여 남명의 정치와의 관련성을 부각시키면서 그러한 맥락에서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재평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정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해보면 호모 폴리티쿠스인 남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릴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예를 들어,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남명의 출처가 정치적 행위의 일부였음을 인식하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단초가 될 것이다. 호모폴리티쿠스 남명의 총체성을 파악하는 일은 또한 텍스트적인 논쟁과 콘텍스트 구성과 관련된 복잡성을 넘어서서 새롭고 건설적인 방법론적 혁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론을 제안하여 새로운 연구 방향 정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 I 장에서는 정치 현상을 보다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으로 들여다보고 그에 걸맞은 정치의 정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 결과로써 정치가 포괄하는 범주가 보다 더 광범위해지고 그 안에서의 질서를 새로운 분류로 구분지어 보고자 한다. 이 시도는 남명의 글과 행위의 많은 부분이 정치의 범주에 반드시 귀속되어 있고 따라서 박병련이 주장한 대로 정치학적 프레임은 남명을 연구하는데 필연적이라는 것을 재삼 강조하기 위함이다. 제 II 장에서는 시도된 새 정의에 따라 남명과 관련된 정치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를 회고 하고 그 동향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연구 성과에 대한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경향에 대해 두 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남명을 계승한 후대 남명학파들이 정치 일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남명의 족적, 사상이나 가르침, 그리고 정치 행위 등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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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도교사에서 내단도교는 독특한 역사를 갖는다. 필자는 정통 내단도교의 한 파는 당나라 말기부터 북송 기간까지의 일정한 시기에 재야의 인물들에 의해 전승되다가 어느 시점에 홀연히 그 단법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단법의 중요 인물이 진단과 장백단이다. 진단은 그 단법을 독창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도교와 불교의 양쪽에 스승이 있었지만, 어느 한 쪽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법을 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섭렵한 다양한 이론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새로운 이론체계를 창안해 내었다. 장백단은 일생 동안 특정한 스승 없이 재야에서 수련에 몰두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진단의 단법을 우연히 얻었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립하였다. 그러나 둘의 단법은 기존의 외단을 배척하고 순수한 내단을 주장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기본적인 틀이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진단의 단법은 「무극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5단계의 수련법이다. 반면에 장백단의 단법은 4단계이다. 진단의 1단계와 장백단의 1단계는 수련을 위한 완전한 준비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진단이 말하는 2단계는 연정화기와 연기화신을 모두 포함하는 것임에 반해서, 장백단은 연정화기는 도교의 수련단계로 분류하고 연기화신은 선불교의 수행단계로 분류하는 차이가 있다. 그 다음 진단은 나머지 3단계를 하나로 묶어 연신환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에 장백단은 연기화신으로 선천의 神으로 환원된 상태를 궁극의 본원으로 돌이키는 연신환허를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진단은 오행이론과 『주역』의 이론을 도입하고 있지만, 장백단에게서 오행이론은 연정화기 단계에서 수련하는 것이며 『주역』의 이론은 진단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진단의 수련법은 이론적 도식에 보다 치중한 것인데 반해 장백단의 그것은 보다 실질적인 수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진단의 삼교회통론은 1단계의 과정에서 선불교의 수행이 먼저 필요하고, 2단계 중에서 연기화신의 수련에 다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진단은 『주역』의 이론을 도교 역학으로 전환하여 그의 이론에 채용하였고, 선불교의 효용도 도교식으로 해석하여 그의 이론에 차용하는 삼교회통론을 주장하였다. 반면, 장백단은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유교의 일상윤리를 수련의 첫 단계로 끌어들이고, 여기에 도교식 수련을 더한 후에 선불교의 수행을 도입한다. 그 또한 선불교의 수행이 내단의 수련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두 사람 모두 도교의 연신환허의 단계가 궁극의 목표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며, 그 경지는 선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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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하기방은 주로 1930년과 1940년대에 활동하였던 중국 시인이다. 그에게는 『漢園集』(공동창작)과 『預言』 및 『夜歌』 세 권의 시집이 있다. 이 중 『夜歌』는 작가의 이전 시가와는 경향이 다른 변화된 사상과 시가의 성숙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하기방의 시가는 일반적으로 발동기(1928-1931), 환상기(1931-1932), 고민기(1933-1935), 전변기(1936-1937), 성숙기(1938년 가을 이후)라는 다섯 단계로 요약된다. 본문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시집 『夜歌』는 바로 성숙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에는 26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한 수 외의 25수는 모두 延安에서 지은 것들이다. 1940년을 전후한 중국의 延安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혁명의 근거지로, 장래 중국의 희망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하기방은 이 때 이 혁명의 戰場에서 이전의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사상으로 시를 쓰며 삶을 추구하였던 인물이다. 작가가 이전에 쓴 『預言』에서는 주로 개인·애정·몽상 등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이는 작가의 복잡한 심사와 주위 환경 등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사상의 변화로, 문예관은 바뀌게 되었고, 이에 과거의 삶과 사상과는 결별을 하고 혁명으로 접근해 갔다. 그 접근의 결과물이 『夜歌』의 창작이다. 작가는 시에서 새로운 생활과 광명을 찬미하고 침략자를 규탄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갈망하였다. 물론 이전의 자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지식인의 나약한 모습과 방황의 흔적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시가를 가지고 민족 해방전쟁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실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문예가 현실사회에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인식했던 작가가 “사람이라면 맹목적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그렇게 살 수도 없으며,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함께,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 오늘의 『夜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