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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장현광 성리설이 지닌 성향은 이이 지지, 퇴·율의 절충, 이황 친화, 독자적 성취 등의 순서로 다양하게 평가되어 왔다. 최근 이이 친화적인 인물임을 주장하는 연구가 나와 그 동안 간과되었던 장현광 성리학의 한 측면을 자세하고도 설득력 있게 조명하였다. 그러나 논자는 이것이 장현광 학설의 일면일 뿐, 모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理發 개념에 부여한 의미가 이이의 것과 다르다. 그는 이이가 소홀하게 여긴 理의 필연적 작용력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런 경향은 오히려 이황 이 지향한 정신에 가깝다. 본고는 장현광이 중시한 理의 특성인 ‘필연’ 의 의미를 규명하고, 선악의 문제와 인간 심정의 해석에 이것을 적용하 여 일관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선배학자들인 이황과 이이의 이론을 절충하여 자기만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성해내었는데, 이이 의 학설을 지지하였다기보다는 이황의 이론을 수정 보완한 것에 가깝 다고 판단된다.
        2.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2012년 7월까지 남명 조식의 철학사상을 연구한 업적들을 회고한 글이다. 다섯 분야로 나누어 논의의 흐름을 살펴보았는데, 실천유학성에 대한 논의, 남명 성리학의 속성에 대한 논의, 탈유학성의 논의, 공부론의 특징에 관한 논의, 이기론적 성향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남명의 유학이 실천유학이자 脫이론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남명학의 특징을 비교라는 방법에 의하여 탐구한다. 비교 대상으로 삼아진 이들은 이황과 주희였다. 비교를 통해 남명만이 가지는 특성이 많이 드러났으나, 지나치게 차이성을 강조하고자 한 경우 상식에서 벗어난 무리한 주장들을 내놓아 남명학 이해를 오히려 저해한다. 이에 필자는 저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남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별화와 함께 동일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함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남명학이 동아시아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는 남명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함을 주장하였다.
        3.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鄭載圭는 奇正鎭의 학문을 영남에 전한 학자이다. 기정진의 문집 간행과 추모 문자를 제작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그는 스승에 대한 비난에 대응하 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는 스승의 학설에 田愚의 비판이 있자 師說을 변호하면 서 자신의 성리학을 체계화한다. 지향해야 할 가치의 폭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主理의 논리로 그 가치를 정당화하는 것이 그가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성리학이 었는데, 理의 主宰·인물성동이론·本心論 등을 통해 주리의 논리를 전개한다. 정 재규의 성리학을 규명하는 본 연구는 그의 학설의 모태가 된 기정진의 성리학, 기정진의 학설에 체계적인 비판을 가한 전우의 성리 이론을 먼저 살핀다. 이를 바탕으로 정재규 성리학의 역할과 성격을 이해하여 보았다. 마지막으로 기정진 과 정재규의 주리론과 전우의 주기론이 갖는 학술적 의미를 조명해 보았다. 그 결과 정재규의 성리학은 한말 주리론의 삼대가인 기정진, 李恒老, 李震相의 학 문과 정신적으로 상통하는 것이었고, 또한 율곡학파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왔던 주기론의 장점을 버리지 않고 주리의 학문과 결합시킨 학문이었다.
        4.
        200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鄭琢은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이자 관료였다. 그는 이황에게서 心學의 요체를 배워 스승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던 조선 유학의 心學化 현상 의 한 가운데에서 활동하였다. 조식으로부터는 壁立千仞의 기상을 배워 불굴의 절의를 실천하였다. 그의 정신 세계의 원천은 유학의 경전이었고, 그 중에서도 󰡔소학󰡕, 󰡔대학󰡕, 󰡔중용󰡕을 가장 중시하였다. 내용적으로는 경-중용-절의의 세 요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하나의 체계를 구성한다. 중용과 절의를 최 선의 가치로 본 유가의 철학에 세계와 인간의 신성함에 대한 성찰을 더하면서, 수양에 의한 인격화 및 사회적 확산을 도모하는 도정에 나타난 것이 정탁의 학 문이다. 그의 시대의 사림파들은 도덕으로부터 독립된 利害의 세계를 허용하는 대신 의리론에 입각하여 이해의 세계를 재해석하고, 이해 타산이 아닌 순수한 도덕 감정에 의해, 私心없는 도덕성에 의해 영위되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것 은 일상의 세계를 이상적 도덕 관념과 실천으로 엄밀하게 통제하여 감을 뜻한 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心性論과 理氣論을 검토하고 그로부터 추출된 진리 를 修養論에 의하여 體化하고자 한 것이 이 시대 학자들의 학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의 영향 하에서 도덕적 관념을 일상화하고,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신 성화하는 정탁의 생각은 도덕적 근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좁은 시각이다. 정주학적 세계관과 윤리관의 착근과 순수성에의 몰입은 이념의 경색화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전기 관학파가 의리와 함께 실리 를 함께 중시하다가 이해의 함정에 빠졌다면, 사림파는 도의의 순정성을 중시 함으로써 일상에 대한 탄력적 대응 능력을 상실하였다. 정탁은 정주학이 이 두 모습을 모두 드러내던 시기에 활동한 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