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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읍성은 조선시대 500여 년간 각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다수가 해체․철거되었다. 이미 많은 읍성이 사라졌지만,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토성으로 처음 축조되어 조선시대 연산군 6년(1500)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던 언양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남천(현재의 태화강)의 제방 축조를 위하여 동남쪽 일부 성벽이 훼철된 것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비교적 양호한 보존상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특히 언양읍성의 남문지는 2002년 도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수행되었고, 근현대기의 건물 아래에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잔존하고 있던 남문지의 전체적인 구조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원형 복원의 가능성이 그 어느 부분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상징성이나 파급효과, 역사․교육적 활용도 및 도시경관 개선,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재고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문에 대한 건축적인 측면에서의 고증작업이나 복원적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었다. 본 연구는 언양읍성의 정문이었던 남문(영화루)에 대한 복원적 연구를 진행하여 지금까지 연구가 미진하였던 언양읍성의 문루건축의 건축적 특성을 규명함으로써 복원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 조선시대 조영되었던 언양읍성 남문 일곽은 전면에 반원형의 옹성을 두른 개거식의 성문이었으며, 그 문루인 영화루는 중층(2층) 5량가구에 초익공을 둔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600원
        2.
        2011.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언양읍성 북문주변 성곽정비사업 일환으로 발굴조사한 지역에서 체성, 북문지와 옹성 1개소, 치성 2개소, 성 외측에 전체적으로 조성된 해자, 수혈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북문지와 옹성의 구조, 체성부와 치성의 축조방법, 규모 등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특히 체성의 축조방법에 있어서 내벽의 경우 계단식 축조수법이 아닌 내탁부와 성 안쪽과 내벽 내탁부를 구분하는 경계석열이 확인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해자의 평면형태, 규모, 내부시설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한 체성, 치성, 옹성과의 축조에 있어서 선후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즉 체성과 치성은 동시기에 축조되었으며, 북문지의 옹성은 체성보다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북서쪽 모서리에서 암거시설 형태의 입수구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해자와 만나는 구상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입지조건, 내부시설 등으로 볼 때 해자쪽으로 물을 공급하는 용도의 구로 생각된다. 언양읍성은 문헌에서 확인된 읍성(석성)의 축조시기(1500년)와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자기류, 기와류)의 편년을 비교해 볼 때 연대가 비교적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북문주변 성곽 정비복원 시에 문헌자료와 함께 고고학 자료를 검토, 보완하여 정확한 정비복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5,500원
        3.
        200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