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define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vegetarianism by tracing the changes in the core motives revealed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vegetarian movement that started in the West. We further explore and compare the limitations of the vegetarian movement conceived in the West with the essential values, ‘How can Korean vegetarian culture gain the upper hand?’. Our results indicate that the sequential changes of the motives inherent to the flow of the modern vegetarian movement were <religious-philosophy>, <political-society>, and <healthy-nutrition>. This settled the transition from ‘vegetarianism as an ideological form’ to ‘vegetarianism as a lifestyle’, making it a more becoming way of life. However, along with the spread of ‘vegetarian lifestyle as a form of life’, commercial vegetarianism, which overshadows the essential value of vegetarianism, continued to flourish due to the modern capitalist industrial system. To curb commercialization, the necessity arose to establish a new vegetarian diet with a propensity towards an ‘ecological-environmental point of view’. Thus, in order to establish the term and concept of a vegetarian diet for Korean vegetarian characteristics, we propose the formation of a vegetarian term and concept suitable for the Korean vegetarian culture.
문경 고모산성은 이른 시기 신라 석축 산성의 대표적 사례로서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1) 고모산성은 5세기 말 신라가 변경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에 축조한 산 성이다. 2) 이 성은 호측현(虎側縣, 경덕왕 때 虎溪縣으로 개명)이라는 군현(郡縣)으로 발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성 내부와 아래의 공간이 모두 활용되었을 것이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성 내부의 공간이 중요하게 관리되었으며, 다만 성 아래의 읍치(邑治)는 공간이 협소하여 점 차 견탄(犬灘) 남쪽으로 이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계현은 결국 주현(主縣)이 되지 못하고 문경현(聞慶縣)의 직촌(直村)이 되었다. 그렇지만 호계현에 있었던 유곡역(幽谷驛)은 찰방 역(察訪驛)으로서 주변 교통로를 관할하는 역할을 하였다. 3) 고모산성은 조선 전기에 하나 의 고성(古城)으로 남게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그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어 그 후 2차례 이상 수축(修築)되었고 조선 말에 이르러 실제 진수(鎭守)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또 의병 (義兵)들이 성을 지키고 실제로 전투를 치른 사례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선후기 영남이 배출한 대표적 무장 한범석(韓範錫)의 교지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검토한 것이다. 한범석은 남명학파의 핵심이자 학문의 전통이 깊었던 청주한씨 조은가문(釣隱家門)에서 태어났으나 무과로 발신하여 영조대에는 병사(兵使)에까지 오른 현달한 무장이었다. 그가 남긴 교지류는 무과합격증인 홍패(紅牌), 인사 발령 교지를 비롯하여 유서(諭書)·유지(有旨)·녹패(祿牌)·사급기(賜給記) 등 총 50점에 이른다. 인사 발령 교지의 경우, 현전하는 무신 관련 교지 중에서는 자료적 밀집성이 매우 높아 무신의 관직생활을 추적·복원할 수 있는 사료적 장점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서는 내용상 ‘밀부유서(密符諭書)’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특정 관직의 경우 한범석의 유서가 유일한 것이 있어 고문서의 새로운 발굴과 집적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주목되었다. 특히 영조가 한범석에게 활과 화살 등 전투 장비를 하사한 사급기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희귀본으로 파악되는 바, 조선시대 고문서의 활용, 사급기(賜給記)의 형질(形質)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명되었다. 이 연구는 한범석이라는 특정 인물이 남긴 교지류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사례 연구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이런 연구가 축적될 때 고문서의 사료적 가치와 활용에 대한 이해도 더욱 신장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