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섬 지역의 전통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부안군 위도면 진리 소재의 원당과 당숲을 대상으로 문화적 및 식물생태적 현황을 분석하고 당숲의 생태적 및 문화적 보전방안을 제안하기 위해 수행되 었다. 팔작지붕 형태의 원당은 잘 보존되어 있으나 당제(당굿)은 10여 년 전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진 리 원당의 주변에는 약 8,000㎡규모의 숲이 형성되어 있으며, 숲에는 모두 58분류군의 관속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특히 진리 당숲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센달 나무 등이 상층 수관을 형성하는 상록활엽수림이다. 당숲은 크게 후박나무-팽나무군락, 붉가시나무 -후박나무군락, 곰솔-아까시나무군락의 3개 대표군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교목층과 관목층에는 후박나무‧동백나무‧식나무가 우점하고 당숲에는 39그루의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위도 진리 당숲의 생태적 및 전통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활용을 위해 당숲의 문화재 지정, 진리 원당제의 복원, 상록활엽수림의 관리, 노거수의 관리 및 덩굴류 제거, 지속적인 모니터링, 지속가능한 체험활 동 활성화 등이 요구된다.
본 논문은 조선시대 오대산에 설치된 왕실원당을 중심으로 조선 왕실의 오 대산 신앙을 고찰한 연구이다. 조선시대 오대산에는 태종대부터 고종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왕실의 원당과 원불이 조성되었다. 태종대 태상왕 이성계의 사자암 중수, 세종대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월정사 중창, 세조대 세조의 상원사 중창, 의숙공주의 원불 조성, 상의조씨의 영감암 중창, 선조대 영감사의 실록수호사찰 지정, 인조대 소현세 자를 위한 제석천상 중수, 고종대 국태민안을 발원하는 불상의 이운 등이 이어 졌다. 오대산에 설치된 왕실원당의 성격은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대산에 대한 조선 왕실의 깊은 신앙심이 원당 설치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명산에 기도처를 세우고 국가의 안녕을 발원하던 오랜 전통은 불교의 유입 이후 보살상주 신앙으로 변화하였고, 이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 왕실은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발원 하는 기도처를 오대산에 지속적으로 설치하였다. 둘째, 천재지변을 극복하기 위한 기도처가 계속 이어졌다는 점이다. 고대부터 국가에 천재지변이 발생하거나 왕실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산천단묘에서 제사를 지내던 전통은 불교의 유입 이후 대부분 사찰로 흡수되었다. 특히 오대산과 금강산, 태백산과 같은 명산들은 국가 주도의 소재법석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명소였다. 셋째, 요절하거나 병든 왕실구성원을 위로하기 위한 원당과 원불이 계속 조 성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중기 이후 대부분의 왕실의례가 유교식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차원의 추천불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특히 젊 은 나이에 요절하거나 안타까운 사연으로 사망한 왕실구성원을 위한 원당은 조선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오대산은 신라시대에는 문수보살의 상주처로,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비보사 찰로 숭앙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대표적인 기도처로 유지되었다. 조선 왕실은 고대부터 이어진 오대산 신앙을 계승하여 왕조가 지속되는 내내 국가 와 왕실의 안녕을 발원하는 기도처를 운영하였다.
흡혈성 등에류(Diptera: Tabanidae)는 대형가축인 소, 말, 사슴 등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한국마사회 경기도 원당 경마교육원(36.3ha, 70필 사육)의 흡혈성 등에 방제를 위해 2008년 5월 7일에 마방주변과 초지에 20개의 포집트랩을 설치하였고, 6~9월까지 4개월 동안 총 3회에 걸쳐 포집된 등에류를 조사하였다. 총 18종 2,184개체가 포집되었으며 그 중 흡혈성 등에는 10종 1,692개체였고 비흡혈성 등에는 8종 492개체로 조사되었다. 흡혈성 등에의 월별 포집수는 6월에 9종 1,364개체, 7월에 8종 382개체였다. 월별 우점종은 6월에 얼룩털등에(Tabanus griseinus) 482개체(35.3%), 북방등에(Haematopota tamerlani) 416개체(30.5%)이었으며, 7월에는 북방등에 140개체(42.7%), 얼룩털등에 89개체(27.1%)였다. 트랩의 설치 장소에 따라 포집된 흡혈성 등에는 마방주변이 총 574개체(평균 34.5개체/트랩)이었고, 초지는 총 1,118개체(평균 153개체/트랩)가 포집되었다.
Near the Capital Seoul in 19th century, a special architectural form was created by the Buddhist monks who were related with Royal families. Their temples, so called 'won-dang', were constructed as supplicating places for their patrons' happiness and heavenly bliss. Among buildings of a Won-dang temple, 'Great Hall', which was accepted as a new building type, was the most important, the earliest constructed, and the biggest one. This boiling type contained the complex functions of small chaples, living rooms of monks, kitchen and dining, and pilotied pavillions. This Great Hall was located at the front of Won-dang temples, the main worship halls were at the behind. The type of Won-dang was needed for the high female who were its powerful patrons, and was oliginated from the small Buddhist temples in rural areas. And the type was able to be domiciled itself at the Capital areas because of the existing architectural fondness of the regional architects and the patrons in high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