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investigated the interrelations among acculturative stress, recognition, preference and eating frequency of Korean traditional food by Chinese students in Korea. The acculturative stress score was 3.06±0.32, ‘homesickness’ score was the highest (3.92±0.62) and ‘guiltscore’ score was the lowest (2.28±1.04). The rate of preferred for Korean food was low (20.5%). The places for eating Korean food were ‘restaurant’ (49.6%) and ‘school cafeteria’ (41.1%). The cooking experience regarding Korean food was 45.0% and they had cooked ‘Bulgogi’ (26.7%) and ‘Bibimbap’ (21.9%). The recognition score for Korean traditional food was 0.70±0.27. The preference score for Korean traditional food was 3.14±0.54, and the favorite foods were ‘Galbi’ and ‘Galbitang’ while ‘Ggakdugi’ was the lowest. The eating frequency for Korean traditional food was 2.15±0.82, and ‘Baechukimchi’ and ‘Bibimbap’ were comparatively high. The acculturative stress showed no correlation with the recognition, preference and eating frequency of Korean traditional food. The recognition of Korean traditional food correlated positively with the eating frequency (r=0.175, p<0.05). The preference of Korean traditional food had a significant effect on eating frequency (r=0.274, p<0.001), and the highest positive correlation was shown in ‘Ddeokbokki’ (r=0.470). The explanation power (R2) of recognition and preference on eating frequency was 0.098. This study showed the interrelations among recognition, preference, and eating frequency of Korean traditional food except for acculturative stress.
이 글은 조선 중기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하학론(下學論)’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남명 조식은 당대 퇴계 등 다른 유학자들에 비해 ‘하학 (下學)’을 강조했다. 그는 하학이 유학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런 측 면에서 하학을 경시했던 당시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남명 의 ‘하학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유학에 있어 하학이 가지는 위치를 먼저 검토했다. ‘하학’은 유학을 도가나 불가 등 다른 사상과 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선진 유학에서부터 이어져온 중요한 전통이다. 많은 유학자들이 유학 의 본질은 하학에 있다고 보았으며, 하학(下學)의 대상인 현실세계를 떠나지 않 았다. 유학자들은 세속에서 상달하고 도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그 속에서 상 달의 성스러움을 실현하려고 했다. 불교나 도교는 상달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유학과 비슷하지만, 하학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하학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학은 정치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하학은 유학자를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며, 하학의 세계에 대한 걱정 은 바로 유학의 우환의식(憂患意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유학의 하학전통을 잘 이해한 사람이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이다. 남명 에게 ‘하학’은 단순한 공부상의 절차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그의 사상에 있어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남명에게 현실을 떠난 학 문은 실(實)이 아닌 헛됨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유학의 경세(經世)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남명사상의 특징 중 하나인 실천성과 경세성 등을 이런 ‘유학의 하학전통’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남명의 하학론을 단순한 학 문적 단계로서가 아니라 유학의 주요한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의사상(敬義思想)이나 출처관(出處觀) 등 남명의 주요 사상에 있어서도 그의 하학론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고, 그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본고는 소눌 노상직의 학문이 영남유학의 전통 속에서 어떠한 측면을 계승하 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노상직은 이황과 조식을 함께 높이면서도, 정구의 실용주의적 노선을 더욱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 자 正脈이 이황에게 이어진다고 하면서, 정구와 허목 등을 통해 허전에게까지 그 맥이 전해진다고 보았다. 이는 근기 남인의 학문을 계승한 것이지만, 그 스 스로가 허전의 제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로 학통이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노상직에게 있어 하나의 자부심으로 작용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고, 여타 영남 좌우도의 선비들을 폭넓게 교유하면서 사상사적 진폭 을 넓혀나가기도 했다. 노상직의 학문은 ‘수양론에 바탕한 실용학풍’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당을 건 립하고 수양론에 입각하여 강학활동을 전개하면서 저술과 출판사업을 벌였던 것은 이 같은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된다. 특히 근기 남인의 실 학연원을 튼실히 하면서 자암서당을 중심으로 학도들을 기르며 이들에게서 미 래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점, 다양한 저술과 출판을 통해 전통문화를 정리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했던 점은 모두 위기적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키우기 위한 것 이었다. 이 같은 측면에서 그의 실용학풍은 결국 구국의 의미도 동시에 지닌다 고 하겠다. 소눌학은 무엇보다 江岸學的 特性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협의적 개념으로 16세기 이후 낙동강 연안의 유학사상을 의미하는 강안학은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으나 정구의 한강학이 담지하고 있는 실용주의적 경향은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강안학은 강좌지역의 퇴계학과 강우지역의 남명학을 넘나들며 새로 운 학문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선두에 한강학이 있고 그 마지 막에 소눌학이 있었다. 따라서 강안학은 퇴계학과 남명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 면서 또한 이를 당대의 환경 속에서 응용하려는 학문의 실용성을 충실히 담보 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