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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4

        1.
        2021.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로마제국 2~3세기에 발생한 대규모 전염병을 겪는 초대교회와 한국전쟁이라는 위기를 겪은 한국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전도의 방향과 목적을 정립해갔는지 살펴본다. 각각 사회적 질서의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그들은 불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과 전파 그리고 교회의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전도의 차원에서 조명한다.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한국사회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마주하는 어려움을 역사의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써, 전도의 기회를 모색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위기가 아닌, 복음전파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 내부의 결속과 회복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여 교회가 사회에서도 유익함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 중심의 전도가 아닌 삶 중심의 전도를 모색해야 한다. 더 나아가 변화된 코로나 이후의 환경에서 전도의 새로운 영역과 방법에 대하여 도전해야 한다. 폐쇄적인 종교모임이 아닌, 개방적인 네트워크 중심의 신앙공동체로 성장하여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형편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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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소고는 초대교회의 성직제, 과부에 관한 연구논문이다. 본고는 여성성직제, 과부에 대한 초대교회의 자료들을 많이 소개하고 과부였던 여성들의 활동과 당시 교회에 미쳤던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과부’는 단순히 남편을 잃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서가 아니라 교회여성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사역에 참여하고 헌신할 수 있었던 통로가 된 직제이었다. 이는 제도적 교회가 인정한 성직이었으며 여성들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고 환자나 가난한 자들을 심방하고 구제했으며 교회의 형편에 따라 예전에 참여하여 사제처럼 감독을 돕기도 했다. 그들은 그 인품과 영성, 그리고 섬김의 모델로 존경받았다. 성경과 (특히 목회서신), 속사도시대 문서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 그리고 여러 교회규정집들에서 과부직제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초창기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과부들의 위상과 사역은 나름대로 존중되었고 공동체 회원들의 역할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차츰 교회가 제도적으로 모양을 갖추면서 과부들의 사역이 축소되었고 그 의미도 희미해졌다. 제도적 교회는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리더십에서 소외시키고 그들의 사역을 축소시켰다. 교회규정집들이 제시하는 과부 직제의 의미와 사역의 범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더욱이 과부를 비유하는 ‘하나님의 제단’의 의미도 후대에 갈수록 그 뜻과 상징이 왜곡 되게 나타난다. 처음 기도로 공동체를 중보하는 의미로 헌신과 희생, 성결로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지만 여성을 가사울타리 안에 가두는 도구로 제단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사역을 공공연히 폄하시키는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제단은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여성들은 집안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과부직제의 무게를 격하시켰다. 그러나 교회 규정집에 끝이지 않고 여성의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항목이 나타나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이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었었음을 암묵적으로 말해준다고 봐야 한다. 본 소고는 제도적 교회에서 성직을 맡아 봉사하고 현신했던 여성들의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여 기독교 역사를 균형 있게 펼쳐가는 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3.
        201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And whosoever shall give to drink unto one of these little ones a cup of cold water only in the name of a disciple, verily I say unto you he shall in no wise lose his reward.”(Mt. 10:42) With this saying the local followers were ordered to submit to the authority of itinerant missionaries and to support them. However, when the local congregation formed itself and grew up, they needed the resident leaders. There arose competitions and conflicts between the resident leaders and the itinerant missionaries. Thus the missionaries transferred gradually from the itinerant life to the resident one. Then the house community became the center of mission and meeting, which was supported materially by the patron. However, the house community with patrons disappeared gradually, because it could not overcome the problem of difference among member’s social status. Therefore the Christian congregation should solve the economic problem, without patrons, with the egalitarian spirit and the brethren love. The early Christians who knew the Judaic custom of offerings offered the donations for the church. The donations and the immovables which the members offered formed the church property. Notwithstanding Jesus’ critics of the wealth, the early church gathered the property for the solution of the economic problem. The early church could not furnish her preachers with the nourishment regularly. But as the Christian believers increased and the church grew up, professional ministers were needed. “For the workman is worthy of his meat”: Jesus intended this saying originally for his itinerant disciples, but the history proved that this was said for church ministers. It is a invariable truth that the change of the life conditions brings about that of the economic life. In the situation of itinerant life Jesus criticized the wealth (to say more exactly, the dependence on the wealth). But thereafter his disciples gave up the itinerant life for the resident life. By the above research I intended to show that a new possibility of the economic life had beginned. The choice of the resident life led to a new economic life, so that the church developed in the other direction than Jesus intended originally. This is the teaching which the history gave to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