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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건운동은 신앙의 실천운동이다. 이 운동은 당시의 시대사조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교회의 갱신과 사회의 개혁을 이끌어냈다. 스페너가 시작한 경건운동은 프랑케가 이어받으면서 크게 성장한다. 그는 경건운동을 성경말씀을 기초로 하여 전개하였다. 그는 절제되고 경건한 삶을 살면서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에 힘을 썼다. 그리고 교육받은 자들이 사회에 서 경건운동을 실현해 주기를 바랐다. 프랑케의 초기 선교는 성경말씀 을 실천함으로써 보여주는 존재의 선교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경건 운동 실천의지와 이타성은 할레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사회참여 선교로 발전한다. 그리고 덴막-할레선교회가 설립되면서 최초의 개신교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본 연구는 프랑케의 경건운동이 할레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진행되어 사회참여적 선교로 발전해 나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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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일 경건주의는 그 시기나 활동영역이 넓고 포괄적이어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18세 기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도전과 급격한 사회변화 가운데서 성경에 기반을 둔 기독교와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 논문은 할레 경건주의의 성경해석학을 다룬다. 할레대학은 보편 해석학과 신학적 해석학이 다양한 학자들의 사상과 논쟁을 거쳐 이후 18세기에 해석학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해석사의 관점에서 할레대학은 과도기신학-신신학(Neologie)-신학적 합리 주의의 제단계를 밟았다. 이런 출발점에 할레대학의 설립자인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의 성서해석을 위한 논문들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기에 이를 중심으로 논문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결론적으로 다양한 개념과 사상들이 난무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적인 논리정연성이 계승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해석학의 새로운 구상은 전통적인 개신교 성경원리가 문화적으로 변화된 기본조건에 부합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 다. 그래서 경건주의적인 신앙심의 개혁과 대학의 철학적인 합리주의 또는 근대의 역사적인 인식의 기원은 서로 다른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와 세계 속에서 정당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3.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독일 루터교 경건주의 운동의 한 정점을 이루었던 할레 경건 주의의 주도자인 A. H. 프랑케가 자신이 속해 있던 당시의 루터교회 타락의 원인과 목회자의 경건에 대한 생각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회심 체험으로 신앙의 확실성을 획득한 후 이전과 달리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 있는 신앙, 실천적이고 열매 맺는 신앙과 신학을 추구했다. 그는 ‘교리의 개혁’을 넘어 ‘삶의 개혁’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교조적인 법정적 칭의론에 안주하던 정통주의자들로부터 오해 받고 공격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러한 정통주의자들의 무능과 허위와 위선의 모습 속에서 마태복음 7:15-23에 나오는 거짓 예언자의 모습을 보았고, 이 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는 교회 타락의 주된 원인은 거짓 예언자(목회자)들이 득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거짓 목회자들은 영적인 상태나 경건의 실천에 장애가 있는데, 그 장애의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것을 참된 신앙과 경건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 A. H. 프랑케의 독특한 관점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A. H. 프랑케가 수행한 개신교 자체에 대한 이러한 통렬한 자기반성은 비록 콘텍스트가 다르긴 하지만 한국 개신교회가 개혁을 논할 때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4.
        2015.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프랑케는 “살아 움직이는 신앙”이라는 경건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교육과 선교에 힘썼다. 시작은 방임되고 있는 하층민들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고아원 설립부터였다. 방임된 아이들은 종교적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한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케의 사고는 후대 19세기 부흥 운동가들이 아이들의 올바른 기독교적 양육을 통해 부모들의 신앙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더불어 미래의 신실한 기독교인을 양성하고자 교육 개혁 운동을 진행 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또한 프랑케의 개혁은 단순히 학교를 새로 짓고 아이들을 성서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교육학적 발전을 도모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교육 목적과 수단 그리고 여러 가지 교수법 등 올바른 학교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학문적 체계들을 수용하였으며 자신의 생각들을 실현시킬 기관들을 설립하고 그를 통해 많은 긍정적 영향들을 끼쳤다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학교 의무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 인해 후대 의무 교육 법제정에 영향을 준 점과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학교 교육에 접목시킴으로 인해 직업학교 설립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