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성 질산 노출에 대한 향어의 독성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96시간 동안 0, 4, 20, 100, 500 및 2,500 mg NO3 -/L의 수인성 질산에 노출을 실시하였다. 질산 96시간 급성 노출에 의한 향 어의 반수치사농도(LC50)는 1,433.54 mg NO3 -/L로 나타났다. 혈액학적 성상을 통해 수인성 질 산 노출이 향어에게 미치는 생리학적 변화를 평가하였으며, RBC count는 유의적인 감소를 나 타내었다(p < 0.05). 혈장 무기성분을 통해 수인성 질산 노출에 따른 향어의 이온 조절 능력 변화를 평가하였으며, 혈장 무기성분에서 calcium과 magnesium은 유의적으로 감소하였다(p < 0.05). 혈장 유기성분을 통해 수인성 질산 노출로 인한 향어의 건강도와 스트레스 상태를 평 가하였으며, 혈장 유기성분인 glucose는 유의적인 증가를 나타내었다(p < 0.05). 혈장 효소성분 을 통해 수인성 질산 노출로 인한 간 손상도 및 효소 활성의 변화를 평가하였으며, 혈장 효소 성분인 AST, ALT 및 ALP는 높은 수준의 수인성 질산 노출에서 유의적으로 감소하였다(p < 0.05). 본 연구의 결과는 C. carpio nudus에 대한 수인성 질산 노출이 생존율, 혈액학적 성상 및 혈장성분에 독성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Categorizing dialect and the phonetic notation (《方言類釋》) written in 1778 is a specialized dictionary which collected and recorded Chinese language vocabulary in the middle of Qing dynasty. As far as stylistic rules and layout is concerned, Chinese character was the main index and their pronunciations of Mongolia, Manchu, Japan, and Korean were recorded in Korean alphabet spelling. Xu Mingying (徐命膺) and Hong Mingfu (洪命福), who accepted the king's command, wrote the book so as to easily communicate with Japan and China. Chinese language had been changing. On the contrary, North Korean language conserved a lot of ancient Chinese words leading to a lot of problem communication with the Chinese. This is the reason why two authors had to accept the king’s command to finish the book. The book included abundant Chinese vocabulary also with "Chinese dialect" from Guangzhou, Guangdong province, Shanxi Fen states and southern Jiangsu, Hunan Changsha. These materials are the most valuable complement for the research on the history of modern Chinese history. At the same time those exterior material can also be added by Chinese scholars in the Qing dynasty for enriching interior dictionaries. At the same time, the dialect also provided such clues that are vocabulary rooted in powerful dialect.
朝鮮時代(1392~1896年)의 漢語 教科書인《翻譯老乞大朴通事》를 대상로 이미 허다한 學者들이 研究를 하였다. 게다가 巨大한 成果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研究가 不足한 면이 存在한다. 첫째는 研究가 表面的이고 主觀적이라서 어떤 歷史적 文獻의 연구는 歷史와 一致하지 않는다. 둘째는 어떤 硏究는 他人의 檢證하지 못한 論點을 定論으로 여겼다. 旣存의 定論을 유지하기 위해서 文獻 가운데 자기 구미에 맞는 개별적 구절만 따내고 심지어 억지로 들여 맞추기 위해서 文獻의 原文을 任意로 修改하기도 한다. 《翻譯老乞大朴通事》를 예로 들면 許多한 사람들의 硏究는 오른쪽 음을 대상로 삼은 것이다. 그것은 어떤 학자가 오른쪽 음이 當時(16世紀初)의 現實語音을 반영했고 왼쪽 음은《洪武正韻譯訓》에 음이라서 現實音하고 매우 큰 差異가 있다는 定論을 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觀點을 檢討할 必要가 있는데, 學界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그 觀點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론삼아 여기고 있는 것이다.
《翻譯老乞大朴通事》中에는 漢字마다 아래에 두 개 音을 달았다. 그중에 左側音은 申叔舟(1417~1475年)등이 司譯院에 학생들을 위해서 王命에 따라서 編纂된 중국어를 배우는 見本이다. (“所習漢音字樣” 即“增進諺文洪武正韻”) 崔世珍은 當局에 “事大主義” 외교적 國策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를 존경스럽게 左側에 모시고 임시로 目的語로 여겼다. 그 중에 右側音은 崔世珍(1468~1542年)이 創製한 “漢訓諺字”이며 意思疏通이 可能하지만 그 음은 中國音과 유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韓中 中間言語를 創製한 것이다.
崔世珍은 당분간 中國語를 배우는 見本으로 여긴 左側音에 實際로 存在하는 非現實音을 揭示하고 그를 “漢訓諺字”로 反譯했다. 前者는《凡例》이고,後者는《翻譯老乞大朴通事》中에 “漢訓諺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