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유럽 식민주의 영향으로 형성된 아프리카 교육체계를 분석하고, 사교육에 대한 수요 발생 과정을 분석하고 자 하였다. 우리나라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교육 지원을 한국의 개발경험 공유라는 기저를 근간 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특히, COVID-19 펜데믹으로 인해 교육산업이 변화하고 에듀테크 산업이 성장하면서 교육에 대 한 지속적인 발전과 양질의 교육 욕구는 사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교 육변화 이해는 아프리카 교육지원과 교육산업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아프리카 대륙의 교육변화 를 체계적 문헌연구 방법으로 통해 분석하여 고찰하였다. 한국의 사교육은 입시제도에 대응하는 처방적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사교육은 교육의 질 저하로 인한 보완적 차원에서 발생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교육체계는 교육의 보편성과 형평성을 추구하고 있으나, 교육의 수월성을 지향하는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반적인 교육의 효율성과 양질의 교육 접근성 향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하와이는 깨끗한 휴양지와 현대적 경관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관광지로 써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이끌어왔다. 이뿐 아니라 19세기 중반 이 후 사탕수수 산업의 호황으로 가속화되어온 세계 여러 지역으로부터의 하와이로의 노동이주 물결은 동서문명 조우의 공간이자 다문화주의의 중 심지로서의 발전을 추동케 했다. 이처럼 하와이는 주민들의 상대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환대정신과 하와이 관광 산업의 중심축을 구 성하는 환대산업과 더불어 하와이 특유의 문화다양성이 잘 어우러져 세 계적인 환대도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 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하와 이의 관광·다문화를 중심으로 한 환대성의 이면에 교묘한 군사주의와 식 민주의로 대변되는 적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미국은 1893년 하와이를 점령하였으며, 1941년 진주만 피습 이후 이 사 건을 하와이 역사의 중추적 내러티브로 재구성하며 진주만, 특히 USS Arizona 기념관이 하와이의 주력 관광상품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 이면에 은폐된 미국의 군사주의와 원주민의 주권 상실의 역사를 교묘하게 감추어왔다. 또한 본 연구는 하와이를 표상하는 다문화주의의 배경을 환태평양 지역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고찰하였다. 하와이 왕국을 전복시킨 미국 본토에서 넘어온 백인들은 하와이 사탕수 수 산업을 장악하였고, 이에 따라 값싼 아시아계 노동이민자들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다문화주의를 의도적으로 전파한 정착형 식민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British colonial policies have led to stratified societies all over the world and America is no exception. But America is unique in transiting to an equal society and constructing the legal framework to achieve a fair society, even though not completely successful. What distinguishes America from other British colonies is the tradition of rule of law. Perhaps this tradition is also the most priceless heritage that the Britain left for America. Currently, racial discrimination and racial equality protests spread across America. This book provides valuable insights for understanding the divided America.
This paper argues that what Van Vollenhoven did in dealing with adat law was in fact part and parcel of the colonial policy to exploit the colony for the benefit of the Dutch and had nothing to do with being‘ a good Samaritan’by saving‘ the other’ legal culture. What he did also was mainly triggered by what I refer to as cultural anxiety. His campaign to promote adat law was intensified by his fear of the rise of Islamic identity that would be used as a rebellious ideology by the people of Indonesia to fight against the Dutch. Furthermore, I argue that Van Vollenhoven’s intellectual background, heavily influenced by European legal romanticism, had intensified his advocacy to promote adat law in Indonesia.
This research aims to look at and resolve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an issue that sits at the core of the conflict over history in East Asia,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s of denial that inevitably intervenes in the phase of stagnant purging of the past. To this end, first of all, it is necessary to presuppose the recognition that th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is not a narrow Korea-Japan relations issue but one related to responsibility for colonial rule and to shared transitional justice in East Asia. Second, based on such presupposition, I introduce some of the debates and arguments within civil society in regard to the historiography of The Comfort Women of the Empire, as an example that shows the dilemma of historical self-reflection in East Asia. Third, I critically review the problems of the historiography of The Comfort Women of the Empire, positioned largely within historical revisionism in East Asia, from the standpoint of Stanley Cohen’s theory on denial. Fourth, I extrapolate theoretical and practical tasks implied by the foregoing discussion, from the perspective of possibility of historical dialogue in East Asia.
As a conclusion, this paper seeks to reflect on the fact that the issue of denial, which emerged as a social fact during the process of debating on history in East Asia, raised the need for intellectuals of our time to sincerely self-reflect upon responsibilities of the academia. In other words, there is a need to fundamentally reflect upon the social sphere in which historiography and representations take place―in short, upon the transitive dimension of intellectual activity where historical knowledge competes and commun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