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was conducted to examine the physicochemical properties and consumer acceptability of commercial Gangjeong. The samples used in this study were nine different Gang-jeong as commercial products. To accomplish this research, the physicochemical properties of nine samples, including moisture, crude lipid, sugar contents, acid value, color values, and texture, were measured. In addition, consumer panels evaluated the overall acceptability, appearance, flavor, sweetness, and texture of samples using a 9-point Likert type scale as well as the perceived intensities of sweetness and rancid odor by a 9-point Just-About-Right (JAR) scale. All data were statistically analyzed using One-way ANOVA, Principle Component Analysis, Hierarchical Cluster Analysis, and Pearson's Correlation Analysis. All physicochemical properties were significantly different among the samples (p<0.001). Analyses of consumer acceptability and JAR ratings of the nine samples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s (p<0.001).
본고는 寒岡 鄭逑(1543~1620)의 학문경향과 정주학의 수용양상을 조명해 본 것이다. 한강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영남사림의 대 표적 인물이다. 그는 타고난 자질과 家學으로 내려오는 학문적 전통을 계승한 바탕위에 당대의 큰 스승을 찾아뵙고 그들의 학문적 장처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를테면, 한훤당 김굉필의 正學과 남명 조식의 正論과 퇴계 이황의 진실한 도 [的旨]를 받아들여 이후 당대의 독특한 학문경향을 형성하였다. 그의 학문경향은 下學重視의 경향과 博學의 추구이다. 하학중시의 경향은 일 상생활의 기본예절을 실천하는 하학공부를 통해 天理인 上達로 나아가는 학문 차서를 강조하는 학문관점이고, 박학의 추구는 학문의 규모와 범위가 宏博하다 는 것인데, 그만큼 현실의 쓰임에 대비하는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 다. 나아가 이 같은 학문경향은 당대의 학문풍조에 대한 경종과 반성적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한강은 20세 전반에 자신의 학문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 것은 과거의 길을 단념하고 求道의 자세로 정주가 남긴 성리학에 종사하는 것 이었다. 그가 남긴 정주학과 관련한 편찬저술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리이론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심성함양이나 내면의 수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다른 하나는 편찬저술이 자기 학설을 내세우는 저서의 형태라기보다는 경전 중 에 학문의 요점을 발췌, 요약하고 간간히 자신의 설을 붙이는 ‘編N’이나 ‘集N’ 의 저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정자와 주자, 퇴계의 편찬저술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한강의 수양론은 퇴계와 남명의 수양론의 장점을 취하여 ‘敬’과 ‘義’를 다 같이 중시하는 ‘敬義夾持’의 수양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정이천과 주자, 그리고 퇴계로 내려오는 수양론의 학문적 전통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점이 한강 수양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조선의 경학사에 일획을 그은 君王인 정조와 신하인 정약용의 학문적 만남을 詩經講義라는 텍스트를 통하여 조망한 논문이다. 이들의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통상의 經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군왕이 자신의 의도로 선택한 인재와 질의응답을 통하여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확장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우선 전통적 帝王敎育의 유형으로 정도전 · 권근 · 이황 · 이율곡 등의 사례를 들어 조선시대 경연이 추구하였던 이상적 교육상을 알아보고, 이것에 대응하는 역대 왕들의 경연 참석 상황을 살펴보았다. 정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말하면 好學의 學者적 君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조의 유교적 이상정치와 현실의 실현이라는 점점에 정약용을 비롯한 초계문신이 위치한다. 초계문신 뿐 만 아니라, 정조의 정치적 학운 활동에는 학파 • 지역 · 신분 의 차를 초월하여 다양한 유자가 참여한다. 이러한 열린 학문 활동은 곧 당시 사회의 개방성에의 지향을 엿보게 함과 동시에 보편 문화의 성숙을 알려준다. 『시경강의』를 통하여 살펴본 두 사람의 기본적 경학관은 상당히 유사하다 양쪽 다 주자의 경학적 업적을 존중하지만, 논리상 부합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회의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조는 정약용만큼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조의 개방적 경학관에 힘입어 주자를 극복하는 정약용의 독창적 견해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이러한 脫朱子의 경학관은 정조시대의 새로운 학 풍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시경강의』의 내용분석을 통하여 정치와 사회에 관한 두 사람의 견해 를 알아보았다. 특히 ‘賢人 ’에 있어서 정조가 유교의 전통적 賢人觀을 견지하고 있음에 비하여, 정약용은 어느 분야에서냐 기능이든 학문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매진하여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그를 현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고착화된 신분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安民’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 사람 모두 유사한 시각을 노정한다. 安民의 기본조건으로 治者계층의 德化를 중요시한다. 堯舜의 至治를 정치의 이상형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治者는 古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想定한다. 이러한 본고의 고찰을 통하여 정조와 정약용과 갇은 군신 간의 학문적 활동은 글자그대로 敎學相長적인 만남이며, 조선경학의 실학시대를 만개 시킨 動力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