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제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진산사건을 전후해 윤지충과 정약용이 처했던 중국과 조선의 상황과 자신들의 생각을 언급한 1.2차 사료의 분석을 통해 고찰했다. 이를 통해 제사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입장은 천(天)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자 했다. 즉 윤지충은 천주(天主)의 명령은 큰 부모의 명이며 동시에 교회의 명령으로 여겼기 때문에 천주교 제사 금령을 목숨을 걸고 지켰다. 한편 정약용에게 천명은 상제(上帝)의 명이었는데 상제의 명은 인간의 마음에 생기는 도덕을 행동으로 실행함 으로써 따르는 것이었고, 인간 도덕에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죽은 부모와 천에게 제사 드리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비록 공적으로 천주교를 포기하면서도 제사를 지냈다. 한국에서 제사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인이 되는 데 커다란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한국개신교는 제사에 관한 태도를 정하는 데 있어서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도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신학을 확립해 가는 가운데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茶山 丁若鏞(1762~1836)이 살았던 19세기 초 조선후기 사회는 깊게 병들어 있었다. 이 시기에 다산은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되어 있 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살려 낼 방안을 찾기 위해 힘을 다하 였다. 특히 다산은 당시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학문풍토와 아동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였고, 그것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개조하고 참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먼저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의 발단과 전개과정에 대해 논의한 다음, 개선의 이유 와 목표에 대해 조명하였다. 이어서 조선후기 아동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다산의 비판과 다산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에 대해 논의하였다. 특히 다산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에 대해서는 다산의 아동교육 관련 저술을 인 성교육․문자교육․지식확충․언어교육의 네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의 특징을 찾 아 다산의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즉 인성교육 분야에서는 ‘文心을 키워주고 慧竇를 열어주는 교육방법’을, 문자교육 분야에서는 ‘觸類旁通의 교육방 법과 字書를 통한 개별 字義 교육방법’을 지식확충 분야에서는 ‘一以貫之를 위한 一以串之식 교육방법’을, 언어교육 분야에서는 ‘改非矯俗식 교육방법’을 특징으로 잡았다. 그리고 맺음말에서는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의 의의에 대해 언급하였다.
The aims of this study are to examine the lifetime and educational thought of Dasan Jeong Yak-Yong and to find the significance of meeting and Dasan's educational spirit. Dasan was born on June 16, 1762 and died on February 22, 1836. In general, his lifetime is divided into four periods : ①learning stage(1-28age), ②public service stage(28-39age), ③exile stage(40-57age), ④emancipation stage(57-75age). He systematized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practical scienc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 ideal image of a man to Dasan is a shepherd, who not only keeps his duties of magistrate but also is well qualified as a governor with learning and virtue, and as a teacher to lead people. Therefore, a shepherd is a practician having the whole personality of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The spirit of governor based on practice of the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should not be looked down on as the old, and its spirit and lesson should not be overlooked in modern education. Dasan emphasized here and now and service to humanity. His aim was to educate a person to be a good father, mother, son, daughter, friend, and citizen. He believed that every person should strive for the continual development of self until excellence is achieved. The seven principles of teaching and learning which Dasan executed are as follows : ①step by step, ② major, ③fitting, ④practice, ⑤discussion, ⑥collaboration, and ⑦creative activity. It is sincerely hoped that this study on Dasan's Educational Thought will be contributed as a stepping stone of some help to those scholars and students who are interested in new teacher-education of the 21st century.
본고는 조선의 경학사에 일획을 그은 君王인 정조와 신하인 정약용의 학문적 만남을 詩經講義라는 텍스트를 통하여 조망한 논문이다. 이들의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통상의 經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군왕이 자신의 의도로 선택한 인재와 질의응답을 통하여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확장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우선 전통적 帝王敎育의 유형으로 정도전 · 권근 · 이황 · 이율곡 등의 사례를 들어 조선시대 경연이 추구하였던 이상적 교육상을 알아보고, 이것에 대응하는 역대 왕들의 경연 참석 상황을 살펴보았다. 정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말하면 好學의 學者적 君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조의 유교적 이상정치와 현실의 실현이라는 점점에 정약용을 비롯한 초계문신이 위치한다. 초계문신 뿐 만 아니라, 정조의 정치적 학운 활동에는 학파 • 지역 · 신분 의 차를 초월하여 다양한 유자가 참여한다. 이러한 열린 학문 활동은 곧 당시 사회의 개방성에의 지향을 엿보게 함과 동시에 보편 문화의 성숙을 알려준다. 『시경강의』를 통하여 살펴본 두 사람의 기본적 경학관은 상당히 유사하다 양쪽 다 주자의 경학적 업적을 존중하지만, 논리상 부합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회의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조는 정약용만큼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조의 개방적 경학관에 힘입어 주자를 극복하는 정약용의 독창적 견해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이러한 脫朱子의 경학관은 정조시대의 새로운 학 풍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시경강의』의 내용분석을 통하여 정치와 사회에 관한 두 사람의 견해 를 알아보았다. 특히 ‘賢人 ’에 있어서 정조가 유교의 전통적 賢人觀을 견지하고 있음에 비하여, 정약용은 어느 분야에서냐 기능이든 학문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매진하여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그를 현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고착화된 신분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安民’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 사람 모두 유사한 시각을 노정한다. 安民의 기본조건으로 治者계층의 德化를 중요시한다. 堯舜의 至治를 정치의 이상형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治者는 古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想定한다. 이러한 본고의 고찰을 통하여 정조와 정약용과 갇은 군신 간의 학문적 활동은 글자그대로 敎學相長적인 만남이며, 조선경학의 실학시대를 만개 시킨 動力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